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제 Oct 20. 2024

완벽한 준비는 환상

예능 PD 입봉일기 #6


링크드인에 업로드 중인 예능 피디 입봉일기를 브런치에도 옮겨볼까 합니다.

대단한 성과가 나서 올리는 입봉일기면 좋겠지만 아직 과정 중에 있어요.

뿌듯한 감정 49, 두려운 감정 51 로 분투하는 햇병아리 리더의 생각 흐름을 보고

공감하거나 위로받을 팀장님들, 대표님들, 그리고 직장인 분들이 브런치에도 많을 것 같아서요.

*** 사진은 AI 로 작업합니다.




단 한 줄만 지키면 됩니다. 구성에서도 촬영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붙잡고 가야 할 단 한 줄의 아이디어만 있으면 아무리 흔들려도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이 명확하고, 그것을 모든 제반 상황이 받쳐주면 “한 줄”쯤이야 만들기도 쉽고 지키기도 어렵지 않죠. 하지만 제작진이 원하는 그림에 회사의 니즈, 출연자의 캐릭터와 상황, 제작비를 대는 주체의 요청 등이 하나 둘 들어가다 보면 상당히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공이 많은 배 같다고나 할까요?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촬영 직전까지 “한 줄”이 흔들리니 혼이 나갈 것 같았습니다. 촬영 바로 전날 구성이 바뀌고 제목이 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막상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되니 극도로 예민해지더라고요. 한숨도 못 자고 출발했지만 별로 졸리지도 않았습니다. 촬영 스팟을 답사하며 바꾸고, 세팅을 하면서 배우고, 한 구다리씩 촬영을 하면서 느끼는 2박 3일이, 마치 일주일은 된 것 같아요.


첫 촬영 후 리뷰를 해보고서야, 출연자와 밥을 한 끼 먹으며 개선점을 찾고 나서야, 두 번째 촬영 구성을 한참 다듬고서야 이 “한 줄”이 명확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적잖이 민망한 제게, CP 처럼 저희를 봐주시는 선배가 말하더라고요. 그러려고 첫 촬영을 하는 거라고. 이제부터 바꿔나가도 충분하다고.


“한 줄”을 찾으려 했지만 자꾸 이리저리 부유하는 것 같던 구성 기간이었습니다. 온갖 장르의 영상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빈 틈을 찾으려 노력했는데. 어렴풋하게나마 구성을 갖추고 첫 촬영을 떠 보니, 백날 회의실에 앉아 “세상에 없는 특별한 한 줄”을 짜내던 때보다 훨씬 빠르게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어설프더라도 일단 부딪치는 사람의 성장 그래프가 더 가파르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로 경험하고 나니, 다음 촬영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끊임없이 “한 줄”을 지키고 또 수정해 나가는 시간이 되길, 만든 방송이 제 손을 떠나가는 순간까지 계속 부딪치며 개선해 나갈 수 있길, 두 번째 촬영 전날인 오늘, 조용히 빌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즐겁게 일하면 바보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