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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ul 14. 2024

발리에서 오토바이가 내 아이폰을 갖고 튀었다

인도네시아 발리


7월 14일 일요일 오늘 낮 3시경 호텔 체크인을 하고 점심을 사 먹은 뒤 요가 클래스를 알아보러 요가 스튜디오를 향하고 있었다. 지도를 보며 찾는데 주변에 사람은 없었고 갑자기 오토바이가 다가오더니 그랩? 하고 그랩을 예약했냐고 물었다. 외국인은 아니고 인도네시아 사람이었고 젊었다. 종종 그랩기사를 사칭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들어서 아니라고 했고 오토바이는 부릉, 하며 내 핸드폰을 순식간에 낚아채서 달아났다. 나는 my phone! 하며 소리치며 달렸고, 주변에 있던 외국인들이 소리쳤지만 빠른 속도로 달아났고 멀리 신호 앞에서 내가 뛰다 놓치자 그 앞에 있던 인도네시아 오토바이 기사들이 울상을 한 나에게 무슨 일이냐 물었고, 그중 한 아저씨가 얼른 타라며 따라붙어 주었고, 다른 이들은 골목 cctv를 가리키며 저거 있으니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번호판이나 행색을 잘 못 봤고, 그나마 오토바이가 하얀색이던가 번호판이 하얀색이던가, 하는 것도 까먹었다. 무엇보다 배신감이 컸다. 자카르타도 그렇고 여기 발리 사람들은 전날 착하고 매장이든 관광지든 택시 기사든 사람들이 너무 좋다. 유럽도 아니고 이렇게 핸드폰을 낚아채 갈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자책감이 크게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안일하게 다녔을까? 그리고 굳이 왜 요가 클래스를 직접 걸어가서 알아보려 했을까. 아, 오늘 아침에 다른 지역에서 한 요가가 너무 좋았어서 이 지역에 와서도 하고 싶었다. 그래도 바로 내일처럼 도와준 현지인이 너무 고마웠다. 결국 오토바이를 놓쳤고, 폴리스에 데려다주겠다고 꽤 먼 길을 나를 태우고 달렸다. 그리고 가는 길에는 미리 경찰서에 전화도 해 주었다. 뒤에 타고 달리면서도 너무 놀란 가슴이  진정이 안되면서도 침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 정리해 보자. 천만다행인 것은 호텔 방에 아이패드가 있다. 그걸로 적어도 세상과 연결될 수는 있겠다. 그리고 내 아이폰 찾기를 해볼 수 있겠다. 그놈이 벌써부터 아이폰을 열어 금융에 접근하진 못할 테니 안심하자.


그렇게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한 20-30분을 달려 경찰서에 도착했고, 아저씨 경찰관 한 명이 앉아있었다. 같이 간 아저씨가 잃어버린 도로명과 위치를 설명해 준 게 너무 고마웠다. 그 경찰관은 내 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당연할 거다. 행정직원은 뭐 맨날 오는 손님들 기계적으로 처리해 주는 거고 나보다 더 심각한 피해가 더 많을 테니.  사실 핸드폰을 찾을 거란 기대는 적다. 중대 범죄도 아니고 그리고 4일 후에 한국에 돌아가는데 그걸 찾아서 갈 가능성이 았을까? 경찰관은 신고서를 작성하라고 주었는 데, 특이하게 종교를 쓰는 란이 있다. 그렇게 이름, 여권번호, 국적, 핸드폰 번호, 분실물(아이폰 13프로 블루 컬러)라고 적고 제출했다. 아이폰이 얼마예요? 경찰관이 그 거리까지 가게 된 경위와 함께 가격을 묻더니 보험 가입을 했냐고 물었다. “1000 달러요.” “미국 달러로?” “네” 여기선 호주 사람이 더 많아 호주 달러도 많이 쓰니까 미국 달러를 한 번 더 물어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진술서를 5줄 정도 타자를 치더니 인쇄하고 도장을 찍어주었다. 혹시 찾거나 하면 경찰관이 호텔로 찾으러 갈 것이라고 말하며 이제 가보라고 했다. 호텔명도 잘 생각이 안 난다고 하니 동행한 아저씨가 바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구글맵을 켜줬다.


그렇게 아저씨에게 사례를 할 테니 호텔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고, 아저씨는 뭐 당연히!라고 기꺼이 모든 일을 함께 도와주었다. 벌건 대낮에 핸드폰을 낚아챌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 순간의 그 장면이 계속 떠올라 심장이 뛰고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아저씨는 자기 번호도 흔쾌히 알려주었고, 한 시간 동안 나와 함께 해줬다. 현금이 많이 없어서 돌아갈 공항 차비도 필요했기에, 저번에 택시기사가 알려준 하루 일당 정도를 드렸다. “죄송해요 현금이 많이 없어서. 이 정도도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물었는데, 너무 적다고 생각은 안 한 눈치고 내일 혹시 경찰서 가야 하면 연락 달라고 했다.


호텔 앞에서 내린 뒤, 아까 맡겨 놓은 코인세탁을 찾으러 갔다. 빨래방을 찾다가 입구를 못 찾아서 두리번거리다 코인세탁이 눈에 들어왔는데 세탁, 건조 합쳐서 4500원 정도였고, 일하는 아줌마는 건조기로 자기가 옮겨줄 테니 한 시간 뒤에 찾으러 오라고 했다. 다 끝나면 왓츠앱으로 전화를 주기로 한 게 생각이 났는데 괜히 연락 안 된다고 내 빨래가 애물단지로 방치된 건 아니겠지, 하고 부랴부랴 갔다.  약간 중국인 외모의 영어를 잘하던 아줌마는 사라지고 중국인 외모의 영어를 잘하는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내 이름을 부르며 건조기를 가리켰는데 돌아가는 세탁기나 기다리는 손님이 없이 한가했다.  “늦게 와서 미안해요. 오는 길에 길에서 핸드폰을 도둑맞아서 경찰서 다녀오는 길이에요.” 그러자 그는 아직도 그때 생각에 충격에서 가시지 않은 나를 위로해 주었고, “객관적으로 인도네시아 경찰이 제가 있는 동안 일을 빨리빨리 해서 찾아주진 못하겠죠?”라고 물으니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호텔 로비에는 핸드폰을 도난당했는데 혹시 경찰이 오면 방문을 노크하든지 내가 없으면 쪽지를 붙여놔 달라고 말했다. 방에 들어와 세탁물 비닐봉지는 대충 방에 팽개치고 본격적으로 아이패드로 탐색하기 전에 옷을 후다닥 벗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아이패드를 서둘러 찾아 꺼냈다.

-자, 아이클라우드에 들어가니 내 사진은 3일 전까지 동기화되어 있다. 아쉽지만 그래도 sns에 업로드 한 사진이 있긴 하다. 다 안 날아간 게 어딘가.

-현금은 6만 원 정도 있다. 하나 체크카드를 쓰고 있는데 카카오뱅크에 있는 돈을 조금씩 옮겨 쓰고 있는데 아마 5만 원도 안 남았을 거다(지금 보니 4천원 남았다.) 그래도 비상용 신용카드가 있긴 하다. 비상용 신용카드는 애플 계정에 자동 결제로 되어있는데 도둑놈이 뭐 앱결제를 하진 않겠지? 정지하면 안 되니 정지는 하지 말자.

-내 아이폰은 열기만 하면 사진첩, 카톡이든 인스타 페이스북이든 추가 로그인이 필요 없는데 검은 시장에 내 폰을 털어 악용하게 될까? 사실 이게 젤 무섭다.

-메모가 동기화돼서 불러와진다. 내 온갖 비밀번호를 적어 놓은 메모를 영구 삭제한다.

-아이클라우드에서 사이렌 알림과 분실모드를 작동해 두었다. 그런데 아이폰이 인터넷이 켜지면 가능하다고 한다.

-미리 알림으로 한 시간마다 인도네시아어로 다음과 같은 알람이 뜨게 한다. “나는 경찰에 신고했고 골목 cctv에 잡혀서 넌 금방 잡힐 거다. 핸드폰을 경찰서로 가져가라.” “너는 감옥에 갈 것이다. 핸드폰을 경찰서로 가져가라”

-가족한테 연락하려는데 한 시간을 씨름해도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 어느 것 하나 핸드폰 번호 없이 로그인이 안된다. 인스타는 본인 인증으로 얼굴 동영상을 찍었는데 본인으로 인식이 안된다는 메일이 왔다. 페이스북은 옛날 네이트 계정과 대학교 계정으로 되어 있는데 네이트는 안 쓴 지 10년 넘어 비밀번호를 잊었고, 사이트에서 비밀번호 찾기를 누르면 그냥 메인 페이지만 도돌임표처럼 뜬다. 대학교 메일은 비번을 알아 희망을 가지고 들어갔는데 졸업생이라 못쓴다.

-하나은행에 돈을 넣어야 체크카드로 돈을 뽑는데 카카오뱅크는 카카오톡 로그인이 안돼서 안되고, 카카오 여행자 보험을 들었는데 안내문이 카카오톡으로 와서 핸드폰 도난이 보장된 걸로 가입했는지 원 알 수가 없다.


3시간 동안 위 상황에 봉착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사히 집에 돌아가는 일뿐. 아이패드에 알람 설정을 했다. 카카오톡, 인스타, 보험사에 메일을 보냈고 일요일이니 내일 연락 오는 걸 기다려야 할 듯하다. 돌아가는 날까지 바닷가는 갈 수 있을까. 모든 걸 내려놓고 포기하자 여행을 망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와이파이 밖에 되지 않으니 아이패드로 지도를 캡처하고, 해변에 가는 길을 대략 익혔다. 아이패드를 들고나가기엔 이것마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보수적인 마음이 든다. 휴, 그래도 호텔에 수영장이 있는 곳으로 예약해서 다행이다. 수영하면서 경찰 연락을 기다려야지.


아까 근처에 마트를 봐서 뭐라도 사 오자, 하고 나갔다. 망고 하나, 팩에 든 과일(파파야, 메론, 수박, 오렌지가 들어 있는데 메론은 맛이 안 들었다), 외국에만 파는 김치찌개 컵라면과 과자 한 봉지, 초콜릿 오트밀크를 샀다. 체크카드로 계산했는데 다행히 6천 원 정도는 긁혔다. 얼마 남았는지 모르겠다.


엄마에게 메일을 보냈지만 50대 평범한 아줌마들은 메일을 안 읽는다, 한국인이라도 만나서 카카오톡 연락을 취하리라 마음먹고 유튜브나 보면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동료 메일 주소가 떠올랐다. 우리는 사내 정보보안이 엄격해서 조금이라도 스팸스러우면 영구 삭제해 버리는 게 다들 몸에 뱄다. 스팸 메일 같지 않게 나인걸 알 수 있게 제목을 쓰고, 사정 설명을 한 뒤 엄마에게 하나은행 계좌로 돈 좀 넣어달라고 전달 부탁했다. 아, 과장님이 내일 휴가면 어떡하지, 한 명 더에게 보내자. 아이디가 특이했던 친한 과장에게 메일을 보내 내일 다른 과장이 휴가 중이면 대신 처리 좀 부탁한다고 내용을 복붙했다.


유튜브를 보는데 아이폰은 전문가도 열기 힘들고 최근에 업데이트가 돼서 도난기기 보호 기능이 추가되었다는 글을 봤다. 그래 적어도 내 정보는 보호되겠다. 어차피 새 폰을 사도 좋을 때인데 새 폰을 사지 뭐. 근데 번호는 그대로 사용 못하나. 번호 변경은 너무 번거롭다. 알뜰폰 통신사에도 도난당했는데 한국 가서 새 폰을 사면 번호 유지를 할 수 있겠냐고 메일을 보내 놓았다. 휴, 예기치 않은 큰 지출을 또 하겠다.  유일하게 브런치만 로그인이 된다. 이 글을 쓰는 중에 계속 도둑놈이 보라고 한 시간 단위로 미리알림을 설정한 것이 계속 뜬다.


카카오에서 받은 답변. 결국 쓰던 핸드폰을 도난당하면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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