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생활기(1): 직접 체험과 간접 체험의 차이
작년 한동안 블록체인 업계에 있다가 업계 밖에서 창업하기로 결심하기까지, 내 마음속에는 두 가지 큰 다짐이 자리 잡았다. 한 가지는 지금 당장 세상에서 의미를 가지는 프로덕트를 만들겠다는 것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글로벌로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다짐 속에서 부푼 마음을 안고 작년 9월부터 지금의 하이퍼하이어 대표인 다니엘 그리고 공동창업자인 코난과 함께 본격적으로 인도 HR 시장에 대한 리서치를 시작했다. 코난은 밸런스히어로에서 전략 매니저로서 일을 했었고, 다니엘도 인도인들과 함께 현지 리서치를 해본 경험이 있는 만큼, 시장에 대한 이해도는 빠르게 올라갔다. 실제로 인도에서 서비스를 런칭하고자 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딜을 진행하고 어느 정도 성과도 올린 만큼 일의 진행 속도도 빨랐다. 뭐, 이 정도면 인도 시장에 대해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1월 말 실제로 뱅갈루르에 와서 직접 HR 매니저, 기업 대표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크게 느낀 것은, 날카롭게 닦은 송곳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프로덕트가 실제로는 뭉뚝한 나사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의 생활은 매일매일이 깨달음, 논의, 변경 그리고 발전의 연속이었다.
흔히 세일즈를 위해 현지에 직접 와야 한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외에도 모든 부분에서 속도가 붙는다는 것을 느꼈다. 굳이 정량적으로 표현하자면, 인도에 오고 나서의 사업의 진행 속도가 한국에 있을 때에 비해 4~5배 정도 되는 것 같다.
핵심적인 비즈니스 모델 외에 인도에 와서 가장 크게 느끼고 개선한 부분은 신뢰도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인도 사회의 전반적인 신뢰 수준은 생각보다 훨씬 낮다. 낮은 신뢰 수준으로 인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살 때도 Cash on Delivery(물건을 받고 나서 현장에서 비용을 지불하는 것)가 일반적이다. 이는 B2B 세일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인도에 오기 전, 우리는 막연하게 '직접 만나서 프로덕트에 대해 설명하고, 프로덕트가 마음에 들면 사용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오고나서 느낀 인도의 세일즈 파이프라인은 이와는 매우 달랐다. 어떠한 솔루션을 기업에 팔고 싶으면, 직접 만나서 미팅을 하는 것은 그냥 기본에 불과했다. 솔루션이 마음에 들 경우, 고객사는 웹사이트 주소를 요청한다. 처음에는 그냥 막연히 '웹사이트를 둘러보려나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인도에서 회사 웹사이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고객사는 회사의 사업자 등록번호, 팀원 인적 사항뿐만 아니라, 사용 후기(Testimonial)가 진짜인지까지도 직접 사용 후기를 남긴 회사 담당자와 연락해서 확인한다. 이런 점들이 다 확인되어 믿을 수 있다고 판단되고 나서야, 데모 사용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렇게 신뢰도가 낮은 인도에서,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회사와 협력하여 레퍼런스를 쌓는 것이다. 이런 레퍼런스를 충분히 쌓았다면, 신뢰도 확인 과정이 간소화된다.
사실 이런 직접 체험과 간접 체험의 차이는 비단 사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생활 면에서도 한국에서 생각했던 인도와, 직접 경험한 인도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비록 가장 발전한 도시 중 하나이고, 그 도시에서도 일부에 불과하지만 .) 생각보다 좋았던 점도 있고, 나빴던 점도 있다. 정말 많지만 몇 가지를 나열하자면, 1) 교통 2) 안전 3) 물가 정도가 있겠다.
인도의 교통
인도에 오기 전, 인도의 교통 및 인프라 수준이 베트남의 호치민 혹은 다낭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름 깨끗한 인도와 교통량은 많지만 신호나 차선을 지키며 다니는 차들을 상상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비디오로 한 번 봐보자.
뱅갈루르 출퇴근 길의 전형적인 상황이다(사실 꼭 출퇴근 시간이 아니더라도 비슷하다). 교통 상황을 완전 잘 보여주는 것은 아니니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일단 뱅갈루르에 한해서는 차선을 지키는 행위를 본 적이 없다. 신호등도 거의 볼 수 없어서, 길 건너는 게 매우 힘들다. 이러한 교통 상황이기 때문에, 바쁜 시간 대에는 릭샤나 오토바이를 타고 요리조리 차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이 훨씬 빠르다.
또 동영상에선 차들이 멈춰있어서 경적 소리가 그다지 많이 들리진 않지만, 평소에는 정말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냥 옆의 차를 지나갈 땐 무조건 경적을 울린다고 보면 된다. '나 여기 있다. 서로 사고 내지 말자.' 정도의 의미로 이해된다. 차들 사이의 간격도 정말 가깝다. 한국에서는 싸우자는 건가 싶은 정도의 거리가, 인도에서는 일상이다.
재밌는 점은, 도로에 차가 없어도 별로 속도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버에 과속 금지 정책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새벽에 우버를 타도 우버 기사님이 60Km 이상을 밟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인도의 안전
인도에 오기 전 인도가 위험하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 만큼 안전에 관한 부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섣불리 얘기하기 조심스럽다. 그래서 인도 도시들에 국한해서 말하고자 한다.
인도인들은 사업을 할 때 하나같이, "Different State, Different Strategy"를 강조한다. 주마다 그리고 도시마다 정말 특성이 다르며, 다른 주는 문화적으로 거의 다른 나라라고 봐도 무방하다.
안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거주하고 있는 도시인 뱅갈루르는, 인도 현지 파트너의 말에 따르면 '오전 1시에 여성 혼자 다녀도 안전한 도시'다. 실제로 여기 계신 여성 분도 뱅갈루르는 안전하다고 말씀을 하셨다. 직접 경험해본 바로도 뱅갈루르는 안전하다. 이는 뱅갈루르의 교육 수준이 다른 곳에 비해 매우 높고, IT 허브라 외국인도 비교적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델리 지역도 비교적 안전하다.
하지만 인도의 분당쯤으로 볼 수 있는 델리 근처의 구르가온만 가도, 여성 운전자가 운전을 하고 있으면 술 취한 사람들이 와서 차를 두드리고 가는 행위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고 한다.
인도의 물가
일단 많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듯, 뱅갈루르의 물가는 전반적으로는 한국에 비해 매우 싸다.
사진을 정말 못 찍었지만, 로컬 식당에서 이 정도 음식을 시키면 8000원도 나오지 않는다. 우버의 경우엔, 한국에서는 4만 원 정도 나올 것이 여기서는 16,000 원 정도 나온다. 여기에 더해 릭샤를 타면, 우리나라에서 택시로 4,000원 정도 나올 거리가 1,000원도 채 나오지 않기도 한다. 또 Swiggy, Zomato 등 배달 음식 앱의 배달 팁은 320 원 정도에 불과하며, Converse에서 쇼핑해본 경험으로는 반 바지 두 벌, 신발 한 켤레, 양말 세 켤레를 샀는데 4만 원이 채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괜찮은 외국 요리점이나 미용실의 가격은 한국이랑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활하면서 필수적이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프리미엄이 많이 붙는 것 같다. 인도의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려면 약 25 불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며칠 전 델리로 출장을 갔었는데, 델리에서 느낀 물가는 또 달랐다. 현지 파트너들이 좋은 곳들만 데려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음식점의 음식 가격이 한국보다 오히려 비쌌던 것 같다. 체감 상으론 같은 등급의 뱅갈루르 음식점에 비해서는 많게는 3배 정도 비쌌다.
*너무 쓰고 싶은 것들이 많아 분량 조절에 실패한 것 같네요. 앞으로는 인도 스타트업 서비스 사용기, 인도 생활기, 스타트업을 하면서 느끼는 바 등 인도 및 스타트업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글의 방향 등에 대해 피드백을 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