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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r 28. 2019

아빠살림왕이 되어보자

#프롤로그_집밥 먹이기_0

육아휴직을 한지 벌써 두어 달 남짓 지나갔다. 시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리 지나간다.

처음 첫 달은 이사와 짐 정리, 그리고 아이 둘과 엄마가 연이어 걸린 지독한 감기(아데노바이러스) 병수발로 보내고, 두 번째 달은 엄마의 복직과 적응, 그리고 아빠의 적응 시간으로 똥 쌀 시간도 없이 지나가고 있다.



아빠의 적응

사실 원래 집안일의 많은 부분(요리, 청소 등)을 내가 도맡아 해왔었고, 유연근무로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하며 아이들도 많이 봐왔던 지라, 휴직 후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는 것은 크게 힘들일이 없을 줄 알았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몇몇 힘들고 멘탈 털리는 일상의 예를 들어보자면,

오전의 가장 큰 행사는 와이프가 출근하고 난 뒤 두 아이를 씻기고 옷 입혀서 등원시키는 일. 그런데 여기에 항상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는데,


그건 바로 '똥'이다.

아이 둘 다 아침을 먹고 나면 항상 큰 일들을 보시는데, 아직 17개월밖에 안 되는 둘째는 아침에 두 번씩도 일을 보신다. 신발 다 신기고 나가려는 찰나 쿰쿰한 냄새가 나서 다시 화장실로 데려가야 하는 건 예사고, 기저귀 밖으로 세어 나오고, 자기 옷에 묻고 내 옷에 묻고 화장실에 묻고  등에 묻고 여기저기 묻고 똥칠갑이다. 어떤 때는 보면 정말 이게 17개월 아이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양이.....벽에 똥칠한다는 말이 이런 말이구나 싶다. 아이에게서 인생을 배운다.



그리고 오후의 큰 일과는 당연히 아이들의 하원이다.

3-4시쯤 하원을 시켜 엄마가 퇴근하고 오기까지 38개월, 17개월 두 아이를 돌봐야 한다. 당연히 아이만 보는 게 다가 아니다. 육아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육아와 동시에 밥을 해야 한다.

밥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울까, 밥은 밥솥이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맨밥에 물만 말아먹을 수 없으니 애들과 함께 먹을 반찬도 해야 하고 국도 하나 끓임 좋다. 뭐 이것도 그냥 그럭저럭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 하나가 더 있다. 육아를 동시에 해야 한다. 이 쥐방울들은 단 5분도 혼자 있지 않고 잠시만 내가 없어졌다 하면 주방에 와서 날 찾는다.

주방에 그냥 와있냐고? 당연히 아니다. 싱크대를 열어 냄비란 냄비는 다 꺼내고 빈 반찬통은 화장실까지 갖다 놓는다. 키친타월은 주방에 카페트처럼 깔려있고, 또 콩콩이는 왜 꼭  그 위에서 자야 하는지. 빨아서 걸어둔 행주는 여기저기서 춤을 추고 있고, 조리대 위에 손이 닿는 모든 물건은 손에 쥐어야 하는데, 손이 안 닿으면 까치발을 들고 난리도 쳐보고 어찌어찌하다가 자기도 꼴에 호모사피엔스라고 이제 의자까지 가져와서 끌어다 내린다.

그래도 나는 이 와중에 나는 밥을 한다. 차라리 포탄 떨어지는 참호 속에서 밥을 하지, 이것이 바로 육아다.


하루의 두어가지 큰 행사만 슬쩍 말한 것인데 아마 엄마들이 보면 '뭐 대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난 아직 적응기간이라 그런지 육아휴직 후 체중은 최근 10년 중 최저치를 찍고, 일 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하던 감기는 격주로 걸려 콧물을 달고 사는 중이다. 그래, 적응기간이니까, 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리라 믿고 또 믿는다.


최근 아빠들의 육아휴직 비율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나도 그래도 아빠 휴직이 가능한(눈치 덜 보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직장에 다니는 큰 행운을 얻어 이렇게 휴직을 해서 애들을 보고 있지만, 한 일 년 편하게 쉬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애들을 본다면 천만의 말씀되겠다.

회사에서 부장님 몰래 인터넷 하던 시절이 사실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땐 눈시울이 살짝 적셔진다.



그래도 가족을 돌보는 기쁨의 순간이 느껴질 땐,

피로가 싹 가셔지고 눈이 맑아지는 경험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직장생활과는 다른 보람이 있다. 애들 등원시키고 깨끗하게 청소한 거실이 반짝반짝 햇볕을 받고 있을 때, 어린이집에 픽업가면 아빠를 부르면서 미친 듯이 질주해 올 때, 내가 해 준 된장찌개를 가족들이 맛있게 먹을 때, 애들이 8시에 눕자마자 잘 때 등등 힘이 나는 순간순간이 있다. 다들 그런 순간들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것 아닐까 싶다. 나도 그렇게 키워졌을 테고.




이왕 하는 거 잘해보자  

날씨(특히 공기)좋은 날은 밖에서 실컷 뛰어놀게 해 주고, 잘 먹이는 것. 더욱이 두 아이 모두 아토피(지금은 많이 호전되었지만)가 있는 우리 집은 먹는 거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피곤하다는 핑계로 외식을 많이 했었더랬다. 산해진미는 못해먹더라도 건강하고 맛있는 집밥을 많이 먹여야겠다는 의무감이 제일 크다.



아침에 갈아 마시는 과채주스


꼬막 간장 비빔밥


어느 날 저녁,  힘 빠짝 준 연어구이와 샐러드 #와인안주


잘 먹을 때가 제일 예쁘다


잘 먹을 때가 제일 예쁜데 우리 애는 왜 잘 안 먹을까?

어느 유명한 요리 블로그엔가, 책엔가 답이 쓰여 있었다. "맛이 없어서 안 먹는다. 맛있으면 먹는다"

저 말을 보고 살짝 기분이 안 좋기도 하고 회의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요리사도 아니고 매번 어떻게 맛있는 걸 해줄까. 어떻게 사 먹는 것처럼 해줄까. 조미료 팍팍 쳐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결국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맛있게 해 주면 먹지 말라고 뜯어말려도 더 달라고 난리다. 어쩌면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대충 먹이면서 잘 안 먹는다고 애만 채근한 게 아닐까 하는 반성이 밀려왔다.

이제 휴직 중이니 그런 핑곗거리마저 사라졌다.



1일 1 집밥, 1주 1 특식

그래서 적어도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제철 채소로 만든 반찬 한두 가지 또는 따뜻한 국과 함께 집밥을 먹이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집에서 가족들_엄마 아빠도 반주와 함께_이 모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식사를 하자라는 쉬운 듯 어려운듯한 과제를  실천해보기로 했다.  

아직도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하는 두 아이와 우아한(은커녕 제대로 씹어 먹기라도 하면 다행) 저녁식사는 기대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대충 먹인다는 죄책감은 들지 말아야지. 그럼 이 휴직에 절반은 성공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아직도 많이 남은_그렇지만 순삭 되어 버릴 듯한_이 육아휴직 동안 육아와 살림에 대해 아빠는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그 모험담(?)을 조금씩 써나가 보자.

지금까지 두어 달 짧게 경험해 본 결과는,

#출근하고싶다 #회사가제일편하다 #부장님이그리워요

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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