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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크림 Mar 12. 2018

향수를 뿌리지 않는 여자는 미래가 없다고?

그건 니 생각이지...

01 향수를 뿌리지 않는 여자는 미래가 없다고?


"향수를 뿌리지 않는 여자는 미래가 없다."라... 참 여러모로 공격받기 좋은 말이다.[1]

단호한 문장은 늘 누군가에게 공격받기 쉽다. 평화를 사랑하는 나는 무언가를 단정짓는 걸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러다보니 간혹 회색분자, 팔랑귀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내 성향을 '황희 정승스럽다'라고 포장하곤 한다.


어쨌든, "향수를 뿌리지 않는 여자는 미래가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코코 샤넬이다. 유명인사가 되면 똥을 싸도 박수갈채를 받을거라고 말했던, 앤디워홀의 말처럼, 논리적 사고 과정을 1도 거치지 않은 듯한 저 말은, 단지 코코 샤넬이 한 말이라는 이유만으로(!) 명언처럼 떠받들여지곤 한다.

만약 내가 저런 이야기를 했다면, 맹비난을 들었겠지...아.. 나에겐 맹비난을 할 사람들도 없구나...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샤넬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 여자는 미래가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향수에 대한 취향이 확고했다. 그녀는 1921년, 천재 조향사 어네스트 보를 설득해, 그와 함께 - 향수에 관심없는 이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있는 - 샤넬 no.5를 런칭한다. 이름이 샤넬 no.5가 된 건, 런칭 날짜가 5월 5일이기 때문이라는 설과 어네스트 보가 샤넬에게 여러개의 향수 샘플을 보여주었는데, 그 중 5번째 향수가 샤넬의 마음에 들어 지금의 no.5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샤넬 no.5

내일 모레 100살이 되는 샤넬  no.5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향수 중 하나라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no.5가 세기를 넘나들며, 사랑을 받고 있던 말던, 오늘의 주제는, '정말 향수를 뿌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는가?'이다. 정답은 당연히 NO다. (다 알고 있었겠지...)


향수 하나 뿌린다고 갑자기 요정 대모가 나타나고, 운명의 연인을 만나고 하는 일은 없다. 향수를 뿌린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장미빛 미래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회색빛인건 당연히 아니다.


미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부모도, 형제 자매도, 친구도 그 누구도 나의 미래를 만들어줄 수 없다. 남이 만든 미래는 다른 사람의 미래이지, 내 미래가 아니다. 가족도 만들어주지 못하는 미래를 향수가 어떻게 만들어주겠는가? 미래는 당신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당신의 선택과 열정 그리고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단 하나의 가능성이고, 무수히 많은 선택지 중 당신이 고른 현실, 그게 당신의 미래이다. 



그러면, 나는 왜 향수에 대해 글을 쓰는 걸까?

나는 향수가 어떤 이의 미래를 결정할 정도의 힘은 없지만, 향수 나름대로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라! 이 얼마나 황희정승스러운 마인드인가... (향수가 미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면서 무슨 힘이 있다는 거죠? 이러고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 무플 보다는 악플이라도 있는게 더 좋다고 하니까...)


우연히 길을 가다가 엄청 좋은 향을 맡고 기분 좋아질 때가 있지 않은가?

예를 들면, 지나가다 빵집에서 나는 갓 구운 빵 냄새 -빵냄새 향수같은 건 없다. 하지만 만약 그런 향수가 있다면, 가끔 방에 뿌려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직 시중에 나와있지는 않은 것 같다-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가? 예가 너무 부실하지만, 어쨌든 누구나 한 번쯤 길을 가다 어떤 향을 맡고 뒤돌아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어! 저 사람 무슨 향수 뿌리지, 향 진짜 좋네..'라고 생각하지만, 용기가 없어 '무슨 향수 쓰세요?'라고 묻지 못할 때가 있지 않은가? 이젠 부실한 걸 넘어 너무 주관적이기 까지한 예시같지만, 누구든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곱씹어보면 한 번쯤은 향에 대한 기억이 있지 않을까? 물론, 너무 향이 독해 머리가 아파, 무슨 향수를 쓰는 거야 대체!!! 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더 많을 지도 모르지만...


다 읽으면 인내심이 200% 증가한다는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향기가 가진 힘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마르셀은 마들렌 향(사실 이것도 빵냄새...)을 맡고 어릴적 먹었던 마들렌을 떠올리며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게 된다. 이처럼 후각적 자극을 통해 특정한 기억이나 감정을 불러오는 것을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 '프루스트 현상(Proust phenomenon)'이라고 부른다.


이는 후각 세포가 오감 중 유일하게 대뇌변연계를 통해 연상학습과 감정을 담당하는 해마와 편도체에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오감 중 유일하게 후각만 이렇게 발달했을까?

포유류에게 있어 후각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포유류는 대체로 야행성이었다. 이는 공룡과 함께 공존하던 시대가 있기 때문인데, 공룡의 눈을 피해 밤에만 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 야행성이라 시력이 덜 발달했던 면도 있다. 후에 공룡이 사라지고난 후 인간들은 낮에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시력이 발달하고, 시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다른 포유류에 비해 후각 기능이 많이 떨어지게 된다... - 오감 중 어둠 속에서 멀리 떨어진 무언가를 판단할 수 있는 감각은 후각 뿐이다. - 귀도 있지 않나요?라고 묻는다면, 멀리 떨어져 다가오는 무언가가 사자인지 사슴인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건 역시 후각뿐이다. - 그래서 후각은 다른 감각에 비해 더 본능적이고, 생존과 직결되어 발달했다. 이러한 후각 세포가 발달한 부분인 변연계는 기억과 감정을 혼합하여, 훨씬 더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기억이나 감정을 불러오게 만든다. 냄새를 맡는 즉시, 사자에 대한 기억이나 공포심 같은 감정이 떠올라야 재빠르게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감각과 달리 다른 감각 기관과 달리 후각만이 유일하게 감정과 추억을 동시에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굉장한 효과인가? 향만 맡아도 무언가가 떠오르게 한다는 것이! 이게 향수가 가진 힘이 아닐까?

이를 잘 활용했던 스타도 있었다.


마릴린 먼로와 샤넬 no.5


마릴린 먼로는 한 인터뷰에서, 잠 잘 때 무엇을 입고 자느냐는 질문에 "샤넬 no.5"라고 말했다.[2]

백치미의 아이콘으로 유명하지만, 실상 마릴린 먼로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대중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자신을 관능적이고 섹시한 샤넬 no.5와 결부시켜버렸다.

사람들은 샤넬 no.5의 향을 맡을 때마다, 마릴린 먼로가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위해 향수를 뿌려야하는가?

그럼, 좋은 냄새가 나지만 기분 나쁜 기억만 줬던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비슷한 냄새만 맡아도 기분 나빠지는 것 아닌가요?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향수 나름의 힘이 있다고는 했지, 긍정적인 힘이 있다고 한 적은 없지 않은가?) 이래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인가보다. (마음씨를 착하게 써서, 남에게 좋은 감정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좋은 감정을 가지게 했으면, 향기가 나지 않더라도 문득문득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떠올라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데 남이 나를 떠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건 그 사람의 영역인데...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다는 건 유쾌한 일일 수도 있고, 그닥 관심밖의 일이 될 수도 있다. 누가 날 떠올리건 말건, 내가 그 사람에게 호감이 있지 않은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가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좋은 일일 수도 있고, 나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가끔 그 사람 기억에 영원히 남고 싶다거나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을 때가 있다. 그럴때는 향수의 힘을 빌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럼 내가 누군가의 기억에 남기위해서 향수를 써야한다는 건가요? 꼭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야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것 까지 생각하면서 살기에 생각보다 인생은 짧고, 해야할 일은 많다.
그러면 나는 왜 향수를 쓰는 걸까? 향수는 기억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감정도 자극한다. 그래서 향수는 사람의 기분을 좌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좋은 감정이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향을 맡으면, 그 감정이나 기억이 떠올라 좋은 기분을 유도할 수 있다. 우울한 날에 상큼한 시트러스 향을, 지치고 힘들 때는 포근한 파우더리한 향을, 답답하고 짜증날 때는 시원한 아쿠아계열 향을 맡는 상상을 해보아라. 향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전환되는 걸 느낄 수 있다. 결국 향수는 사용하는 사람, 나를 위해 뿌리는 것이다. 내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 내가 맡기 위해서.


자신에게서 어떤 향이 났으면 좋겠는가?

내가 뿌린 향수를 제일 많이 맡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남들이 좋아할만한 향이나 유행하는 향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향, 언제 맡아도 지겹지 않을 만큼 마음에 드는 향, 나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향을 찾는 것, 그게 향수를 좋아하게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





[1] "향수를 뿌리지 않는 여자는 미래가 없다"라는 말은, 시인 폴 발레리가 했던 말이다.

('향기가 없는 여자에게는 미래가 없다.'라고 좀 더 순화되어 폴 발레리 명언으로 회자되곤 한다.)

코코 샤넬은 향수가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패션 중 하나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이 문장을 종종 인용하였다고 한다.


[2] "What do you wear to bed? A pajama top? The bottoms of the pajamas? A nightgown?" So I said, "CHANEL N°5", because it's the truth. And yet, I don't want to say, 'nude', But it's the truth! (1960년 파리에서 했던 인터뷰 중, 이제는 전설로 남은 1952년의 인터뷰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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