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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장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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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크림 Mar 16. 2020

[도장깨기] 자아성찰편

나를 찾아서 : 쑥과 마늘 그리고 재택근무

단군신화 속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100일간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진정으로 기도하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곰과 호랑이는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는다.


곰은 잡식성 동물이지만, 슬프게도 호랑이는 육식이다.

이 게임은 애초에 승자가 정해진 게임이었다.

호랑이는 생존을 위해 동굴을 뛰쳐나갔고, 곰은 삼칠일(21일)을 지나 인간이 되었다.


그런데 분명 100일이라고 했는데 왜 21일이에요?

여기서 100일은, 계속이란 의미였다. 애초에 정확한 기한을 정해주지 않않기에,

끝을 알 수 없는 날들을 버텨야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짓눌려 호랑이는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만약 21일만 버티면 된다고 말해줬으면 호랑이와 곰 모두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따져보면 치사한 이야기지만, 어쨌든, 그렇게 곰은 인간이 되었고, 호랑이는 호랑이로 남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흔히 쑥과 마늘을 보면, 먹고 인간이 되라는 표현을 쓸 때가 간혹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본의 아니게 회사가 장기 재택원격근무를 시행하게 되었고, 덕분에 나는...

2020년 2월 25일 오프를 포함해, 2020년 3월 16일 현재 기준 정확히 21일간의 칩거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21일간 곰이 동굴에서 생활한 것처럼, 나 역시 집 밖을 나가지 않은 채 21일 간의 동굴 생활을 하고 있다.


육식주의자인 나는, 고기를 위해 마늘을 열심히 먹고 있었고,

회사에서 1kg를 사서 반띵한 쑥가루로 쑥라떼까지 만들어 먹고 있기에...

정말 인간이 되기 위한 21일을 겪은 것이다. (체험 중...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실 쑥과 마늘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게 아니라면서 이미지는 왜 넣는 거죠?


정말 중요한 건 동굴이다.

재택을 하기 전 나의 삶을 돌아보면,

평소 나의 관심과 시선, 나의 시간들은 모두 외부로 향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그 사람의 이야기 혹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바깥을 돌아다녔다.

외부에서 에너지와 시간을 쏟고 오면 나를 돌아볼 여유같은 건 가질 수 없었다.

그런 내가 21일간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 나만의 동굴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얼떨결에 난 인간이 되기 위한 시간의 동굴에 들어간 게 되었다.

덕분에 나의 관심과 시간이 나에게 쏠리는 경험을 한 것이다.

내가 언제 나에게 이렇게 집중한 적,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사람들은 너무 쉽게 남 이야기를 한다.

어쩌면 그건 자기방어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우린 너무 쉽게 남의 이야기를 하고, 남의 단점을 찾는다.

그건 아마 우리가 타인을 보고, 타인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에게 관심이 많다. 그 관심을 자기 자신어게 돌리는건 매우 골치 아픈 일이기에..관심을 외부로 돌린다.


나를 돌아보고, 나에게 집중하면 내가 알면서도 모른척 외면하던 나의 감정, 나쁜 습관이나 문제점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을 발견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남의 얘기를 한다.

내가 책임질게 없기 때문에 그저 잘못을 발견하고, 비판하고 돌아서면 되니까.

하지만 이게 자신의 일이 되면 비판하고 끝이 아니라 이를 고쳐야하는 노력이 따라야한다. 그래서 우린 애써 자신에 대한 관심을 타인에게 돌린다. 그저 보고 이야기만 하는 건 너무 쉬우니까.


코로나19로 인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던 시간들이 모두 증발해버리면서, 그 시간들을 오롯이 나에 대한 생각하는데 쓰고 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돌아보지 않았던 나 자신에 대해서 되돌아볼 수 있는 아주 긴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21일만에 곰이 인간이 되듯, 칩거 21일이 된 오늘,

나의 칩거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아주 사소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도중 머리에 뭔가 스파크가 튀었다. 마치 어떤 지표를 발견한 기분이다. 그리고 이걸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생각했을 때 바로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하지 않을 걸 알기에

2018년 이후 쓰지 않던 브런치를 2020년에 다시 들어왔고, 이름부터 바꿨다.

좀 더 쿨해져야겠단 생각에 이름도 쿨피스로 바꿨다.

쿨하게 평온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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