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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크림 Mar 18. 2020

워너비

외적인 요소를 따지는 게 속물일까?

"이상형이 어떻게 돼?", "어떤 남자 스타일을 좋아해?" 이런 류의 질문을 들으면,

왜 원하는 스타일로 찾아줄거야?라고 되묻거나, 마음에 쏙 드는 스타일 이라고 대충 둘러댄다.

특히 아직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는 뭔가 어색하다. 내 본심을 드러내는 게 속물처럼 느껴진다.


조금 더 친해지고 나면 그때서야 좀 더 솔직하게 말한다.

하얗고, 청순하고 어딘지 귀여운데, 어딘지 청량한 분위기가 나는데, 뭔가 청순 섹시한 스타일!

눈빛이 따뜻하면 좋겠어. 상냥하면 좋겠어. 목소리가 부드러우면 좋겠어!


줄줄이 몇 시간이고 이상형에 대해 수다를 떨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너의 워너비는 뭐야?"라고

그 이상형의 대상이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나를 속물처럼 볼까봐 어색해지는 게 아니다.

나의 워너비처럼 내가 될 수 없을까봐 머쓱해서, 대충 둘러된다.

마치 그 사람들이 "니가 그렇게 될 수 있겠어?"라고 비웃지 않을까 싶어 스스로 자체 검열을 한다.



나의 워너비는 어떨까?

어떻게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요소, 정신적 워너비 같은 건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다.

속물처럼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외형적 요소보다 평가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확실히 외적인 요소를 말하는 게 더 힘들다.

이상형을 말해줄 때도, 외적인 조건을 말하는 게 더 어렵고 조심스럽다.

얼굴, 키, 몸매 등 눈에 보이는 이런 건 정말 친한 친구에게나 편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적인 것도 중요하고 내적인 것도 모두 각자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친한 사이에는, 내적인 건 눈에 안 보이잖아, 오히려 외적인 건 눈에 확 보이잖아.

믿을 건 얼굴 뿐이야. 라고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정말 농담일까? 사실 진담이 어느 정도 섞여있다. 어느 정도인지는 알려줄 수 없지만...)


왜 외적인 부분을 요구하고, 바라는 걸 속물이라고 느낄까?

다른 사람이 속물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속물스럽다고 검열하는 걸까?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외적인 요소를 원하는 걸 왜 남들이 비웃을 거라고 생각할까? (이건 나만 그런 걸지도..)



한달 전쯤 회사 동료 한 분에게 소개팅을 시켜주려다 그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친하다고 생각하니까 말해주는 거예요. 전 엄청 예쁜 여자 좋아합니다."


엄청 예쁜 여자?

그 당시엔 '여기서 엄청 예쁘다의 기준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머릿 속을 맴돌았지만...

돌아서서 생각해보니까, 저렇게 자신이 원하는 외적인 조건을 명확하게 말하는 건 쉬운 일일까?

친하다고 생각하니까라고 전제를 깔았지만, 사실 서로 안지 얼마 되지 않는 사이라

그 분이 나에게 이상형이 뭐냐고 물었으면 나는 "그냥 마음에 쏙 드는 스타일이요." 라고 둘러댔을 것이다.

오히려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 시원시원해서, 솔직해서 좋군! 이런 느낌?이 들었다.

분명 외적 요건을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속물처럼 느껴지는 시대는 이미 갔는데, 왜 여전히 외적인 조건을 말하는 게 쑥스러울까?


나는 내가 되고 싶다고, 내 워너비는 나야라고 당돌하게 말하는 itzy의 워너비를 들으며 들썩이다,

문득 나는 어떤 나를 원할까? 내 워너비의 조건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돋아났다.

그러다 전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3가지를 말해보라고 질문했던 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난 거기서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애매한 대답을 내어놓았다.

그 대답도 지인이 '나를 표현하는 단어 리스트'를 보여주며 이 중에 골라보라고 한 다음에야 겨우 고를 수 있었다.


내 워너비를 말하기 전에, 현 위치의 나 조차 규정하는 게 어려웠다.

내 입으로 내 매력을 말하라고 하는 건 수치플 수준이라 해야할 만큼 어딘지 모를 수치스러움도 느껴진다.

특히 내 입으로 나의 외적 매력을 말한다는 건 정말이나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다.


어제 저녁,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딴 짓을 하고 싶어지는 순간, 며칠 전 받았던 링크가 떠올랐다.

얼굴형부터, 눈동자까지 하나 하나 골라서 2D 이미지의 사람을 만들어내는 웹 사이트였다.


역시 딴짓하고 싶은 순간이면 뭐든 재밌는 법이다.

신중하게 하나씩 하나씩 선택해서 친구들과 공유하며 어떻냐고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직업 정신은 이럴 때만 발휘되는지, 소개팅 어플 만들때 이런 거로 미리 이상형을 설정해놓고, 이와 유사한 이미지를 분류해서 소개해줘도 좋겠다는 얘기를 하며 각자 만든 워너비 이미지상을 공유했다.


(좌) 내 워너비 상 (우) 내 워너비 이상형

약 6명의 사람들과 이미지를 공유했는데 그 중 나의 워너비상이 제일 심플했다.

모두 장난치듯 화려한 이미지를 선택한 반면, 나는 정말 엄청 진지하게 내가 되고 싶은 이미지상을 선택했던 것이다. 아마 그 안에서도 나는 내 워너비니까 최대한 내가 노력해서 닿을 수 있는 거리의 워너비를 그린 것이다. 얼마나 소심한가..?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딱 이런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린 이미지를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드는 것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 깔끔한 스타일, 내가 바라는 나의 워너비는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고, 내가 될 수 있는 나랑 가까운 이미지의 나를 원하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글은 안 쓰고 딴 짓을 하고 있을 때, 평소 너무 귀엽다고 생각하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애 문제였다. 한참 자기 좋다고 따라다녀서 마음을 열었더니 갑자기 맘을 싹 바꾼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기 이상형도 아니었는데, 자긴 생각도 안 해본 스타일인데... 너무 억울한 이야기였다...

데자뷰일까? 이건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였다. 몇 달 전 또 다른 지인이 겪었던 상황과 서사가 동일했다.

유행하는 장르인가 싶을 만큼 동일한 서사 구조였다. 인생이란...

이 서 사구조에서 특정 시점이 되면, 주인공은 내가 부족한가 하는 자책에 빠진다.

내가 모자르고, 부족해서, 내가 예쁘지 않아서... 내가 매력이 없어서... 라는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자존감이 바닥을 찍는 것이다. 이쯤이면 바닥이겠지 싶을 때 또 바닥을 더 찍게 되고 바닥까지 계속해서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것이다.

남자라고 다르겠는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감정을 느낄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제일 유용하게 쓰이는 건 정신승리다.(혹은 조상신이 도왔다고, 인연이 아니라 믿는 것이다.)


유용한 정신승리의 예

누군가에게 내가 부족하고, 예뻐보이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안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이 실제 좋아하게 되는 사람을 보게 되면, 아 저 사람은 저런 스타일을 예쁘다고 하는구나 싶어서 실망할 때가 있다. 내가 전혀 예쁘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을 보고 너무 예쁘다고 좋아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취향과 나의 취향이 달랐던 것이다. 결국 내 얼굴은 내 눈에, 그리고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눈에 예뻐보이면 그만이다. 어쨌든 그걸 보고 오히려 안도하면서, 내가 못생긴 게 아니라 저 사람 취향의 스타일로 생긴 게 아니구나, 내눈에 난 너무 예쁜데, 저 사람 눈에는 아니었나보네라며 스스로 정신승리를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또 다른 문제는 그 사람은 얼굴이 아니라 성격이나 가치관을 더 보면, 내 얼굴이 그 어떤 누구의 얼굴보다 예뻐도 성격이 별로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글을 읽다보면, 내가 얼마나 속물스럽게 외적인 요소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 이렇게 긴 글을 썼지만

이 글의 요지는 내가 외모지상주의까지는 아니어도, 외모를 무척이나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외모만 본다거나, 외모가 좋으면 괴팍하고 비인간적인 성격까지 다 이해한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외모가 별로라고 그 사람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외모라는 건 매우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내 눈엔 너무 예쁘게 느껴져도, 남의 눈에는 아닐 수 있다는 말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은,

내 눈엔 에쁘지 않아도 남의 눈에는 예뻐보일 수 있다는 거다.

애초에 전자, 내 눈에 너무 예쁘면 남의 시선이 뭐가 중요한가? 내 맘에 드는데...

그래서 중요한 게 자신의 워너비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이길 원하고, 나는 이런 이런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 스타일이 내 워너비라면, 상대가 나를 싫다고 해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미 나의 워너비는 나인데, 내가 나를 마음에 들어한다는데, 상대가 날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해서, 마음이 식었다해서, 나의 워너비인 내가 초라해보이겠는가? 전혀...


그럼 내 워너비가 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내 워너비를 정확하게 아는 게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 목표, 기준을 정확히 알아야 그 다음 스텝, 앞으로 내가 무슨 행동을 해야할지를 생각할 수 있다.

이건 코르셋을 조으자는 게 아니다.. 이건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춘, 공산품 코르셋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기준을 찾자는 이야기다.

바라는 게, 기준이라는 게 꼭 있어야하나요? 없어도 된다.

다만, 기준이 있다면 판단을 하는데 있어서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원하는, 스스로가 바라는 기준이 무엇인지 한 번은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취지로 쓰는 글이다.

이 기준이 꼭 외적인 게 아니어도 된다. 외적인 걸 중요시하는 사람이 있고, 내적인 걸 중요시하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둘 다 중요시하다 인연을 찾기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아주 예전에 기획해놓고 쓰지 않은 콘텐츠가 떠올랐다.

외적인 매력을 표현하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적어보려고 했었는데...

그게 벌써 1년전 이야기다^_^ (사는게 이유없이 바쁘다보니.. 글쓰는 게 게을러진다고 변명해보지만..부질없는 변명일 뿐...)



외적인 매력에 대한 정의를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해보고 싶다.

자신의 외적인 매력이 뭔지 찾아가면서, 사람들 앞에서 나는 이런 점에서 이게 내 매력이라고 생각해 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라고 이유를 둘러대보지만, 그냥 재밌을 거 같아서 글을 쓸 계획이다.

이러고 안 쓸 수도 있다..^_^ 사는게 계획대로 되면 인생에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목차]

단어의 사전적 정의

프롤로그

1. 예쁘다

- 예쁘다 vs 아름답다

- 예쁘다 vs 예쁘장하다

2. 사랑스럽다

- 사랑스럽다 vs 러블리

- 사랑스럽다 vs 귀엽다

3. 청순

- 청순 vs 청초 vs 청량

- 맑다

4. 보기 힘든 장르

- 관능미

- 처연미 (사연있어 보인다, 슬퍼보인다)

- 보호본능

5. 소모적 논쟁

- 분위기 vs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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