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커트 Jun 10. 2021

지상에서 영원으로

셰익스피어 '햄릿'

 ‘To be, or not to be’ 로 시작되는 3막 1장 햄릿의 독백은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하고 자주 인용되는 구절일 것이다. 이 구절의 핵심은 be라는 단순하고 흔한 동사 안에 햄릿 일생의 가장 큰 고민이 집약되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독백에서 그는 'to suffer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견뎌내는 것)'과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And by opposing end them(무기를 들고 험한 바다에서 싸우다 끝장을 내는 것)' 사이에서 고민한다. 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삼촌을 용서하느냐, 혹은 그에게 복수하느냐에 대한 고민이다. 그는 균형감을 중요히 여기는 인물이나,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은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균형이나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는 용서와 복수 둘 중 하나만을 반드시 택해야 하며 선택의 순간 그의 삶 전체가 결정지어진다. 복수를 택한다면 햄릿의 삶은 운명에 맞서 싸우는 그리스 영웅의 삶이, 용서를 택한다면 신에게 복종하고 구도자로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삶이 된다. 이는 아버지의 복수라는 개인적 차원의 일이, 유럽인들의 정신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가지 가치, 즉 고전적 가치와 기독교적 가치 사이에서의 고민이라는 보편적 차원의 일로 확장되고 있는 지점이다. 따라서 이 독백은 햄릿의 일생을 집약한 독백일 뿐 아니라 유럽인들 전체의 내면에서 충돌하는 두 가지 가치를 집약하고 있는 독백이다.


 중세와 이별한 르네상스 시대 유럽인들은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정신으로 되돌아가고자 하였다. 그들은 신을 이해하려 했던 중세인들과 달리 인간의 존엄성과 능력, 개성을 중요시하고 연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서 유럽인들이 그들의 정신의 근간이었던 기독교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셰익스피어만 하더라도, 고향 마을 Startford와 가까운 Coventry에서 중세의 기적극(mystery play)을 관람하며 성장했다고 사료된다. 지금까지도 고전적 가치와 기독교적 가치는 유럽인들의 정신세계에 혼재해 있으며 서로 조화를 이루거나 대립한다. 


이는 유럽인들만의 사안을 넘어 인류 보편의 사안으로 확장될 수 있다. 종교나 문화권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내면에 구도자와 영웅을 함께 품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이건 오직 현세의 일에 충실하여 세상을 설명하는 일에만 천착할 수도, 손에 잡히지 않는 초월적 존재만을 희구하며 살아갈 수도 없다. 그렇게 두 가지 가치는 서로 상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으나 햄릿의 상황에서는 다르다. 마치 눈앞의 현실이 전부인 것처럼 복수라는 명목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다. 하지만 삼촌이 아버지를 배신했으며 어머니는 삼촌과 결혼했다는 현실로부터 완전히 유리되어 영혼의 구원만을 추구할 수도 없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 혼재되어 있는 두 가지 가치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극을 이끌어 가는 햄릿의 고민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복수극으로부터 확장되어, 르네상스 유럽인들의 정신세계로, 더 나아가 보편 인류의 고민으로 확장되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햄릿이라는 극은 현세의 충실과 내세의 구원이란 양자택일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클로디우스로부터 비롯된 정치적인 부패와 이에 대한 비판, 인간 내면의 원색적인 욕망, 오필리아의 비극적 죽음이 보여주는 약자의 삶, 레어티즈의 허영심 등. 이와 같이 개인적, 사회적 차원을 넘나들며 이 극은 많은 수수께끼와 고민을 꺼내어 놓는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짊어진 햄릿의 실존적인 고민을 통해 극의 관람자는 다양한 사안들이 몇 번이고 확장되고 압축되는 것을 경험한다. 햄릿 개인의 감정과 고민은 인류 보편으로 확장되며, 극의 배경인 덴마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은 또 햄릿 개인의 고뇌로서 압축되고 있는 것이다.  


극은 다루고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쉽게 희망을 이야기하거나 정해져 있는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고통스럽게 고민하는 햄릿의 모습을 인류의 초상으로서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과 영화 <He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