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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커트 Jan 06. 2021

시선이라는 감옥

Katherine Mansfield <A Cup of Tea>

 A Cup of Tea의 주인공 로즈마리는 자선을 베풀기 위해 길에서 만난 가난한 소녀를 집에 데려온다. 그녀는 소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기보다는, 자신의 도덕적 허영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수단 정도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소녀와 자신 사이에는 좁혀질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소녀를 타자화하고 신기하게 여긴다. 그러나 로즈마리가 절대적인 것처럼 여겼던 자신과 소녀의 간극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단 사실이 남편 필립에 의해 드러난다. 이전까지 로즈마리는 자선을 베푸는 자신을 ‘주체’로, 소녀를 ‘대상(타자)’으로 여겼다. 그러나 필립은 소녀를 두고 불쌍하다거나 가난하다고 표현하지 않고, ‘astonishingly beautiful’이라고 표현한다. 남편의 말에 충격을 받은 로즈마리는 소녀를 돌려보내고 치장을 한 뒤 그에게 ‘am I pretty?’라고 질문한다. 철저히 타자화하고 불쌍히 여겼던 소녀를 마치 경쟁 상대처럼 여기는 모습이다. 필립의 대사는 무엇을 의미할까?


 필립이 소녀를 아름답다고 말하기 전에 소설에서는 세 번의 미추 판단이 내려진다. 우선 소설 첫 문장에서 서술자는 로즈마리가 아름답지 않다고 묘사한다. 서술자는 로즈마리를 자세히 뜯어보면 예쁜 구석도 있을 수 있으나, 사람을 조각조각 뜯어 분석하는 것은 잔인(cruel)하다고 밝힌다. 두 번째는 꽃을 고르던 로즈마리가 라일락이 형체가 없어서(shapeless) 사지 않겠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세 번째는 로즈마리가 예쁜 상자를 사고 싶어 했으나 가격 때문에 포기하는 장면이다. 아름다움을 판단하고 가치를 산정하는 것은 철저히 사람이 사물을 대하는 태도이며, 그렇기 때문에 서술자는 로즈마리라는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해 조각조각 나누어 분석하는 것이 잔인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립이 소녀를 두고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은 순수한 경탄이나 예찬이 아닌 평가에 불과하다. ‘am I pretty?’ 라는 대사를 통해 로즈마리 또한 그러한 평가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소녀와 로즈마리 사이에 존재했던 계급 격차나 다른 차이점은 지워지고 두 사람은 ‘여성’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인다. 꽃을 고르던 로즈마리였으나 필립 앞에서 꽃이 된 것이다. 



 필립의 대사 이전까지 로즈마리는 명백한 권력자로 그려진다. 소녀가 요구하지 않은 자선을 베풀고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며 소녀를 무시하는 모습을 통해, 이 소설은 부자라는 로즈마리의 경제적 계급이 어떻게 권력으로서 작용하는지 충실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성을 응시하고 평가하는 남성의 등장과 함께 그러한 권력은 순식간에 휴지 조각으로 변한다. 주체로서 권력을 누리고 심지어 남용하기까지 했던 로즈마리는 ‘대상’의 위치로 끌어내려져 남편에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애쓴다. 가게에서 로즈마리가 라일락과 상자를 보는 장면을 통해, 소설은 미추 판단이 선택이라는 행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곧 권력이다. 로즈마리의 선택에 라일락이나 상자는 항의할 수 없고, 로즈마리가 자선을 베풀기로 내린 선택에 소녀는 항의할 수 없었다. 이러한 권력을 최종적으로 쥐고 있는 것은 바로 필립이다. 그는 응시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며,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그가 소녀에게 마음이 기울어 그녀를 새 아내로 맞겠다고 선택한다면, 로즈마리는 그 선택에 항의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남성 권력은 여성을 통제한다. 로즈마리는 필립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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