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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울 Sep 16. 2021

겁내지 않고 글 쓰는 법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글은 내 곁에 있을 테니까

초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은 내 그림을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OO이는 그림을 참 터프하게 그리네."


나는 '섬세함', '꼼꼼함'이라는 단어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힘을 빼고 물을 조절하며 그리는 수채화에서 있는 힘껏 힘을 주고 채색을 했다. 남들이 쓰지 않는 짙은 컬러를 어떠한 망설임과 두려움도 없이 썼다. 내 그림은 '잘 그린 그림'이 된 적은 없었다. 그래도 '개성 넘치는 그림' 정도는 됐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건 지금 하고 싶은 말은 내가 그다지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이런 내가 '그림'에 관한 책을 구매했다. 저자에 대한 막연한 믿음에서 출발한 소비였다. 이 책의 저자 '이연'이라는 사람이 쓴 책은 꼭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읽을만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연은 약 60만 구독자를 보유한 그림 유튜버이다. 그는 영상에서 분명 그림을 그리지만, 그림에 관해서만 말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림을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나 또한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그의 영상을 처음 접했으나, 구독하게 된 이유는 그가 나누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이연'의 유튜브 채널

그가 출간한 책도 마찬가지이다. 제목은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이지만 '그림' 대신 다른 단어를 집어넣어도 충분히 말이 된다. 그림과 조금 거리가 있는 나는 이 책을 '겁내지 않고 글 쓰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글쓰기란 참 이상하다. 글감이 막 떠오르다가도 막상 빈 화면을 보면 머리가 멍해진다. 술술 쓰고 뿌듯했던 글도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기의 힘을 믿는 나는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고 싶다. 이런 나의 바람을 투영하며 이 책을 읽어 나갔고, 꽤 많은 문장에 밑줄을 쳤다. 이 책의 목차와 내용을 빌려 '준비-관찰-쓰기-보여주기'의 순으로 내가 글을 대하는 마음을 풀어보려 한다.



준비 - 글쓰기와 친해지기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글쓰기는 초등학교 일 학년 때이다. 어쩌다 보니 지역 글쓰기 대회에 반 대표로 참가하게 되었는데,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주제 중 하나인 '생일'을 고르고, 친구 생일파티에 갔던 이야기를 썼다. 고민도 크게 하지 않고 즐거웠던 추억에 대해 쓱-쓱. 갑자기 주제를 주고 글을 쓰라니, 뭐 재밌네-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상을 받았다. 어리둥절했다.


4학년 때인가는 숙제로 독후감을 썼는데, 담임 선생님이 내 글을 다른 친구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렇게 제출한 독후감을 조금 수정하고, 조회 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낭독했다. 엄마는 내가 쓴 시를 보더니 표현력이 남다르고 했고, 6학년 담임 선생님은 내가 일기를 다채롭고 재밌게 쓴다고 하셨다. '뭐지? 나 글을 좀 쓰는 건가?'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으로 나름 글쓰기에 자부심을 가진 꼬맹이로 자랐다. 안타깝게도 중학교에 가자마자 현실을 마주해버리고 말았지만.



나는 나의 세계가 조금씩 넓어질 때마다 내가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것을 느껴왔다. 중학교만 가도 나보다 훨씬 글을 잘 쓰는 애들이 많았다. 나는 한 번도 대회 출전자로 뽑히지도, 상을 받지도 못했다. 잘한다고 하는 이가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입시나 친구관계 등 때문에 자연스레 멀어진 걸까. 그대로 글쓰기를 놓아 버렸다. 일기조차도 쓰지 않았고, 나름 좋아하던 책도 거의 읽지 않았다.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멋진 일은 대게 두려움을 동반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만큼 그 여정은 험난하다. 그럴 때는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내가 지금 굉장히 멋진 일을 하고 있구나. 이 사실을 계속 떠올려야 한다. 우리는 싸워보지도 않고 많은 일들을 포기한다.

이연 -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中

지금 돌아보면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한 그때의 내가 조금 밉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쓰지 그랬니. 아니면 부지런히 읽기라도 하지 그랬니. 다그치고 싶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이미 지나버렸는데.



그랬던 내가 '쓰는 ' 다시 알게  것은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다. 우연히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   글을 봤을 , 그때 글이 다시 쓰고 싶어졌다. 글로 자기 생각을 저렇게  표현하다니. 갑자기 사람이 달라 보이는  아닌가. 어릴 적에 글을 어떻게 썼는지는 전부 잊어버렸다. 무작정 블로그에 글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생각을 끄적였고, 글과 관련된 활동들에 지원했다. 세상에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는  이미 예전에 겪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다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결국  제자리라는 것도  알았다. 창피하더라도,  봐주겠더라도 꾸준히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글쓰기와 친해졌다. 이번에는 남들의 인정이 아니라 나의 의지로.


뭐든 잘하기 전엔 재미가 없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분명 흥미로 시작하겠지만 점점 높아지는 안목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당신의 손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중략) 잘하게 되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매일 하는 것. 스스로의 어설픔과 창피를 견디며 멋없는 노력을 반복해야 한다. 훌륭한 아티스트들 모두 이 과정을 거쳤다. 당신이 걷고 있는 그 흙길이 모든 예술가가 똑같이 걸어온 길임을 기억하라.

이연 -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中



관찰 - 글감을 건져 올리기 


아주 잠시 카피라이터를 희망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카피라이터라는 직업보다는 그들의 놀라운 관찰력에 감탄해서였다. 카피라이터의 에세이를 보면서 멋진 카피가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일상을 살더라도 그 안에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끄집어냈다. 글도 글이지만, 삶을 살아가는 태도나 주변을 바라보는 관점이 탁월했다.


그렇다. 글을  쓰려면  깊게 생각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관찰할  알아야 했다. 내가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사유한 것이  글이 된다. 그러면서 자기 주관이 생기고, 하루가 풍부해지고, 생각이 또렷해진다.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은   살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림은 정말 본 만큼만 그릴 수 있다. 그 이상 얻어걸려서 우연히 잘 그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말 정직하게 보고 느낀 만큼만 종이에 표현이 된다. 그래서 나는 그림이나 글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놀란다. 저 사람은 세상을 이 정도의 디테일로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이구나 싶기 때문이다.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는 사람이 그만의 창작을 한다.

이연 -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中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나서 글을 베이스로 하는 활동을 하며 억지로 쓰는 환경을 만들었다. 마감이 있었기 때문에 글을 써야만 했고, 소재가 필요했다. 감히 단언하건대, 글쓰기의 맛을 알아버리면 쉽게 놓기 힘들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글감을 찾았지만, 점점 자연스러운 행위가 됐다. 이전까지는 그냥 흘러버렸을 생각이더라도, 다시 붙잡아서 살을 붙이면 글감이 된다. 글감 레이더를 장착하니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내 주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이 글감이 될 씨앗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 터트리고 싶은 시점이 온다. 지금 이 생각을 글로 쓰면 더 정리가 잘 될 것 같은데, 뭔가 여기서 한끝 더 나아가고 싶은데. 당신의 글쓰기 세포가 꿈틀대는 순간이다.


그런 여러 감각들이 모여 순간이 될 때 우리는 기분 좋은 간지러움을 느낀다. 뭔가를 말하고, 노래하고 싶어 진다. 그것을 그저 한 번 긁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표현해 보는 것이다. 무엇이 말하고 싶은지, 왜 그 노래여야 하는지.

이연 -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中



쓰기 - 머리가 아닌 손을 움직이기


글을 쓰겠다 마음먹고, 소재도 찾았으면 이제 정말 '써야' 할 때이다. 머릿속으로만 이런저런 글을 써볼까- 하고 떠올릴 때는 아주 멋진 글 한 편이 뚝딱 완성된 것을 상상하지만, 그건 그저 상상일 뿐. 막상 새하얀 종이를 마주하면 숨이 턱턱 막힌다.


▲ 출처: MBC '아무튼 출근'

저자는 시작부터 완벽한 그림을 그리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초고는 빠르게, 깊게 고민하지 말고 쓰는 게 좋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려고 하면 시작하기 쉽지 않다. 큰 덩어리를 잡고 일단 글을 완성한 다음에 다시 찬찬히 보며 퇴고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비문을 바로잡거나 오탈자를 체크하는 것, 글맛을 더해줄 적절한 표현을 찾는 것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의 글을 적어본다.


디테일은 시작 단계에서 고려할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작은 것에 집착하면 완벽주의에 사로잡혀서 진전하기 어렵다. 실제로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긴 선으로 크게 덩어리를 잡고, 중간 길이의 선으로 다듬고, 짧은 선으로 묘사를 해서 디테일과 밀도를 높인다.

이연 -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中


허나 때로는 퇴고가 초고보다 어려울 때도 있다. 일단 휘갈겨서 쓰면   알았는데, 전부 엎어버리고 싶기도 하고. 내가 쓰는 글은   모양  꼴인지 울화통이 터지기도 한다. 남과 비교하지 말자고, 어차피  쓰는 사람은 차고 넘친다고 인정하긴 했지만, 밑바닥이 한없이 얕은 나에게 실망할 때도 적지 않다. 그럴 때면 글을 쓰는  싫었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글을 쓰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비교적 빠르게, 편하게 쓰는 사람이긴 하지만 디테일이 강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내가 느끼는 한계는 적은 독서량 혹은 경험의 부족함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타고나기를 감성보다는 이성이 강한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다.


개성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충분히 각자의 개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당신이 평범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자기 자신에게 씌우지 않기를 바란다. 평범한 사람은 없다.

이연 -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中


저자의 말처럼, 나의 글을 함부로 평범하기만 한 글이라고 칭하고 싶지 않다.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확실히 내가 잘하는 영역의 글쓰기도 있다. 나는 무언가를 요약하거나 방대한 정보를 갈무리하는 글에 강점을 보였고, 일단 글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남들보다 적었다.


글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이는 내가 ''이라는 콘텐츠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타일이란 사람마다 고유하므로 ' 글은 너무 단순해.', '나의 글은 섬세하지 못해'라고 미리 실망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내가    있는 글은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계속 쓰다 보면 나만의 스타일이 보였고,  그걸 원하는 방향으로 다듬어갈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안에는 나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보여주기 - 누군가에게 닿는 글쓰기


나는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글을 쓰긴 했지만, 어느 정도의 폐쇄성을 유지했다. 실제로 얼굴을 아는 지인들이 가장 많이 분포한 인스타그램에는 긴 글을 남기는 것을 꺼렸고, 그렇다고 마음먹고 개인 블로그를 확장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는 오히려 내 글을 숨겼다. 분명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을 썼지만, 적나라한 평가나 시선을 감당할 만큼의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한 번 당신의 그림을 남들에게 보여주자. 사람들이 당신의 그림 앞에 줄을 설까?
줄을 서는지 안 서는 지보다 그걸 확인해 볼 수 있는 용기가 더 중요하다. 아무도 줄을 서지 않았을 때, 스스로 뭐가 문제인지 되짚어 보며 다시 그림을 그리고 한 번 더 보여줄 수 있는 마음의 맷집이 당신에게는 있는가?

이연 -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中


용기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의 자리에 머무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금씩 맷집을 기르는 훈련을 해보려고 한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나에겐 나름의 용기이다. 안전지대 밖으로 한 발을 내디디며,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 준비를 해본다.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고민하기도 하고, 때로는 따끔한 피드백을 받기도 하면서.


당신이 그저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만족한다면 남들에게 그림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나를 설명하길 기대한다면, 그림을 보여주고 공언해라.

이연 -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中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


나름 긴 페이지를 할애하며 '글을 대하는 마음'을 서술해 보았다. 내가 글쓰기에 이렇게나 진심이었다니,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글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도, 대단한 작가가 되겠다는 포부도 없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위한 일련의 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글쓰기는 나를 조금  나은 사람으로 살아갈 힘을 준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도 나누며 살고 싶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안에서만 부유하던 이야기를 조금씩 세상 밖으로 꺼내보려 한다. 아마  과정은 신이 나고 뿌듯하면서도, 괴롭고 막막하겠지? 그래도   덕분에 겁이 나더라도 다시 글을 쓰는 법을 알게 됐다. 글이라는 친구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곁에 있을 테니까.



혹시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은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고맙다. 당신 같은 사람 덕분에 내가 계속 글을 쓴다. 무언가를 잘하고 싶은데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책장을 덮고 나서 아주 조금 더 용감해진 나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뭐든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림도 다시 그려볼까?

아니, 일단 글부터 잘 써보자.




* 2021년 4월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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