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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y 02. 2021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Beauti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나의 삶은 어디쯤에 있을까.


2013년 개봉작, 2017년 재개봉을 할 정도로 수많은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인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사실, 포스터와 예고편만 보았을 땐 유치한 초능력물 정도로 생각했다. 영화 제목도 그렇듯 '상상은 현실로 바꾸는 뭐 그런 영화인가' 싶어 딱히 찾아보진 않은 그런 영화였다. 영화 마케팅 자체가 워낙 판타지스러워서 그런지 아마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듯했다. 우연한 기회로 다른 사람들과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 시놉시스를 읽고 나서야 내가 생각하는 그저 그런 영화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판타지라는 장르적 특성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드라마 장르에 조금 더 가까운 그런 영화였다. 2시간 정도 되는 러닝타임 동안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좋은 영화였다.




영화가 가져야 할 중요한 키포인트 중 하나는 도입부다. 도입부에서 관객에게 흥미를 심어주지 않으면, 관객은 영화에 쉽게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꽤나 흥미롭게 서두를 던진다. 바로 '상상'으로 말이다. 상상이라는 도구를 활용한다는 건, 영화에서 치트키 같은 느낌에 가깝다. 장르적 한계를 벗어나 어디 방식으로든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상상이라는 키워드를 남발하는 순간 영화가 유치해지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제를 설명하기 위한 미장센으로 등장하게 된다. 어색하지 않게 표현해내는 감독의 의도가 정확히 맞아떨어짐으로써, 관객에게 주제의식을 극대화하는 듯하다. 오프닝에서 뿜어내는 화려한 액션씬들로 관객의 마음을 빼앗는 것도 덤으로 말이다. 상상이라는 도구를 과감하고 즐겁게 사용한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영화의 스토리 또한 전반적으로 흥미롭다. 회사 인수를 통해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 남자가 마지막 일을 해내기 위해 떠난다는 내용뿐이지만, 여기에 '라이프'라는 실존했던 잡지사와 '필름 원화 관리자'라는 색다른 직업을 덧붙여 관객의 궁금함을 한 층 더 끌어낸다. 더군다나, 사건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극 내에서 주요 사건이 되는 인물 둘, 필름을 전달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주요 인물의 관계를 대사 몇 마디로 정리함으로서, 둘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으로 좁혀낸다. 이처럼, 백스토리를 위한 장치로 영화 전반부의 대부분을 대사와 장면으로 대체하는데 이 과정이 '생략'이라기보다 '최소화'에 가까운 듯하다. 아마 관객에게 현실감을 심어주면서, 동시에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몰입감을 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앞서 말했듯 주인공의 회사와 직업이다. 주인공의 직업은 라이프사의 필름 원화 관리사로 잡지에 실릴 실 사진들을 관리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라이프라는 잡지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라이프의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라이프라고 하면 사진 중심의 획기적인 보도를 통해 시사, 정치, 대중문화 등 다양한 방면의 기록을 남긴 유명 잡지사이다. 그에 비해 주인공은, 꽉 막혀있는 창고와 같은 공간에서 보잘것없는 취급을 받고 일을 한다. 마치 회사에 당연하게 있는 부품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의 삶은 비관적이진 않다. 대놓고 말하자면, 이 시대 모든 직장인들처럼 지나치게 평범해 보일 정도로 말이다. 때문에 회사가 가진 슬로건과 회사의 배경과 주인공의 모습이 극적이게 대조된다. 역사의 흐름에 가장 큰 흔적을 남긴 직장에서 자신의 인생의 멋진 순간을 상상으로만 남기는 주인공이라 흥미롭지 않은가.




영화 자체적으로 장면 연출이나 음악 효과들이 모두 적절하게 잘 녹아들었다고 생각한다. 긴박한 순간에는 다급한 카메라 연출을, 여유로운 장면에서는 풀샷과 롱테이크를 적절하게 사용하며 관객을 잘 밀고 당기는 듯했다. 지루할 듯 하지만, 지루하지 않도록 보이기 위해 연출하려는 감독의 노력이 대부분의 관객에게 느껴진 듯하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영화가 가진 매력을 배경으로 꼽았으니 말이다. 북유럽의 여유롭고도 낭만적인 풍경들, 이러한 장면들은 비단 영화를 예쁘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이 떠나기 전과 떠난 후의 풍경 모두 똑같이 넓은 컷들로 연출했지만, 현실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무거운 감정, 그리고 떠난 곳에서 느끼는 여유롭고도 광활한 감정을 세밀하게 잘 대조시켰다. 특히 후반부에 갈수록 들리는 음악소리는 극의 감정을 한 층 더 끌어올리는 큰 역할을 했다.




현실을 상상만으로 표현하던 주인공은 결말로 갈수록 더 이상 상상하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인 이유가 여기 있다. 지루하고 반복되던 현실을 떠나온 삶에서야 주인공은 상상처럼 살아간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며, 화산 폭발에서 도망치고, 바다 한가운데에서 죽을뻔한 위기들을 넘기며 말이다.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지점들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선이다. 주인공이 상상하던 순간과, 상상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이 명확하게 그어진다. 어느 순간, 상상과 현실의 대립이 무너지면서 월터(벤 스틸러 분)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절묘한 순간에 관객을 동기화시킨다. 내 꿈처럼 간절히 바랬던 순간이 영화의 주인공을 통해 발현된다. 앞선 스토리 구성을 통해 이뤄낸 마지막 장면들이 그저 멋있다고 느껴지기보다, 보람차다고 느껴지는 이유를 잘 표현해낸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무책임한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삶의 메시지를 던져주기 위해서 관객을 억지로 이해시키려고 하는 영화들 말이다. 관객에게도 주어진 현실의 삶이 있는데 막상 '오늘을 살아라! 떠나라!'하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무책임한 메시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으로 비평받을지 모른다. '결국 월터는 너무 낭만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 거 아닌가'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무책임하다는 이야기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월터가 떠나게 된 계기는 결국 업무의 연장선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단순한 장치로 동기를 풀어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동기였다. 영화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무모한 도전이나 단순히 지루한 삶에서 벗어나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그리고 어떤 일련의 과정들로 선택을 해가는 것이 아니라 자주적인 선택을 통해 그 과정을 만들어가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영화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결국 '스스로 선택하는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닮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순간을 꿈꾸고 상상한다. 성공이 될 수도 있고, 화려한 삶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우리네 삶은 그런 상상과 가까이 맞닿아져있지 않다. 결국, 이뤄지지 않음을 알기에 상상만으로 현실의 불안을 떨처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 상상만으로 보낸 순간 때문에 우리가 가진 현실의 삶을 얼마나 잊고 살았던 걸까. 상상하고 꿈을 꾸는 사이에도 현실을 흐르고, 현실 속에서도 소중한 순간은 갑작스레 찾아오기 마련이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에 내가 떠날 기회를 여럿 놓쳤던 것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슬픔 중 하나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순간에는 셔터를 누르지 않고, 그 순간에 머무르길 원했던 숀 오코넬(숀 펜 분)처럼 살아갈 순 없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낭만적인 것 같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살 말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무언가 주저하고 있고, 선택을 미루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생각보다 무거웠지만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킬링타임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깔끔하고 담백한 영화였다. 생각보다 무거운 삶의 메시지를 가볍게 풀어내어 관객에게 무작정 자신의 삶을 찾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월터 또한 한순간 삶이 뒤바뀐 사람처럼 변하지 않았듯이 말이다. 어쩌면, 뻔하고 뻔한 그저 그런 영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영화가 그렇듯 언제 어느 순간마다 보느냐에 따라 영화를 보는 시선이 뒤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영화였다. 현실에 지쳐 고달픈 당신에게, 월터가 묻는다. 상상과 현실 사이 경계선에서 당신은 어디쯤에 있냐고 말이다. 추신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경계선을 넘어온 세대라면 이 영화가 반가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출처 :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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