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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Jun 13. 2021

<크루엘라>

I'm Brilliant, bad and a little bit mad.


우리가 빌런에게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디즈니식 빌런의 재해석.


2019년, 2020년 디즈니의 실사화 영화들이 줄줄이 실망감을 선사한 가운데 캐릭터 설정만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영화가 개봉했다. 주인공은 바로 <크루엘라>다. '101마리의 달마시안' 작품 속 빌런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단독 영화라니 배경과 향수만으로도 매력을 뽐내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원작에서 꽤 벗어난 스핀 오프 작품이지만 예고편이나 시놉시스로 보았을 때 배경이나 스토리 자체가 탄탄해 보여 주말을 기다리며 드디어 영화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는 연출의 연속이었다. 연출, 색감, 효과, 음악 모든 것이 영화와 찰떡같이 맞아떨어졌다. 우리는 왜 빌런에 열광하고, 영화계는 빌런에 초점을 맞추는가. 악당일수록 섹시하기 때문일까. 사실, 빌런이라 부르기도 어려울 만큼 매력적인 <크루엘라>, 디즈니식 실사화 영화의 새로운 전성기에 가깝다. 




략하게 스토리를 읊어보자면 대충 복수극 정도가 될 수 있겠다. 근데 이제 출생의 비밀을 곁들인. 대부분의 디즈니 영화가 그렇듯 스토리는 굉장히 간단하다. 기승전결과 권선징악이 이토록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건 이 영화가 디즈니라는 제작사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알고 있으며, 남녀노소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내용 말이다. 물론, 디즈니는 이것만으로 영화를 끝내지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면 인물 특유의 내적 성장과 감정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영화 <크루엘라> 속 크루엘라(엠마 스톤 분)도 마찬가지다. 멀리서 보면 그저 복수에 미친 한 여자지만, 가까이서 살펴보면 과거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슬픔과 비극을 승화시키는 인물상을 볼 수 있다. 때문에, 나는 디즈니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누구를 데려가도 이야기할 수 있으며, 가볍게 또 진지하게 감상평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전 작품인 <알라딘>처럼 말이다. 영화 속 전체적인 디자인이 굉장히 잘 꾸며져 있고, 색감이나 연출 효과도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굉장히 큰 편이다. 특히, 70년대 패션이라는 소재를 배경으로 사용하면서 70년대를 대표하는 재즈음악이나 다양한 요소들이 적절히 잘 어우러졌다고 생각한다. 하나, 영화 자체의 음악을 만들어내기보다 70년대 히트곡들을 OST로 다수 삽입했다는 점에서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디즈니식 특유의 반짝반짝한 음악들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스토리 전개의 루즈함을 최소화해 관객과의 밀당도 적당히 잘 맞췄고, 인물이 가진 특유의 매력과 배경도 복잡하지 않게 잘 풀어내었으며, '패션업계'라는 소재를 활용해 자연스러운 경쟁구도와 갈등해결을 이뤄낸 점 또한 신선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만, 원작과의 괴리감은 생각보다 큰 편이다. 이 부분에서 평론가와 관객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듯하다.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크루엘라'가 가진 캐릭터성은 모피를 위해서 불법적인 일들을 저지르는 악당스러운 면모가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하나 영화는 괴팍하고, 성질 드러운 크루엘라가 아닌 어딘지 응원하고 싶어지는 짜릿한 매력을 가진 인물상에 조금 더 가까운 듯하다. 때문에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 중 가장 공감이 가는 평가는 주인공이 과연 '빌런'으로서의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간다는 것이었다. 불행한 과거에서 일어나 복수를 성공한다는 설정으로 봤을 때, 빌런보다는 히어로에 조금 더 가깝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작부인(엠마 톰슨 분)이라는 다른 빌런의 존재감이 워낙 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크루엘라의 악스러운 면모가 조금 가려지는 듯하다. 때문에 원작을 생각하고 본다면 단독 빌런 물이라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디즈니 특성상 담배나 살생, 폭력 등 어떠한 해악적인 요소들을 배제해야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스핀 오프 작품에서 탄생한 안티 히어로 정도로 평가하고 싶다.




우리는 왜 빌런이라는 소재에 열광하고, 공감하게 되는 걸까. DC코믹스의 스핀 오프 작품이었던 <조커>의 조커 또한 강렬한 빌런 중에 한 명이었지만 <크루엘라>속 크루엘라와는 조금 다른 양상의 빌런 상을 보인다. '조커'라는 빌런은 바닥으로 추락하는 과정을 통해 설득력 있는 악으로 각성했다면, '크루엘라'는 바닥에서 정상을 향해 달려와 마침내 복수를 성공시키며 악으로 각성하기 때문이다. (사실, 크루엘라는 앞서 말했듯 악이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하지만 말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빌런이라는 소재가 주는 매력은 사회구조 억압에서 해방되어 이뤄내는 계급 반전의 의미가 가장 크지 않나 싶다. 인물 개인의 시련과 고뇌를 통해 마침내 자유로운 어떤 한 존재가 되었을 때, 우리는 빌런을 따라 통쾌해 하며 탄성을 내지른다. 현대사회에서 빌런이 응원받는 이유는 이 공감의 힘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마치 '당장 나 대신에 그 나쁜 일을 저질러줘!' 하고 외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대부분의 빌런들은 대게 섹시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섹슈얼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특유의 반전적 사고와,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부정적인 면모는 우리가 응당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죄책감을 응원하게 되며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쾌감을 선물한다. 영화 속에서도 그렇다. 살인이 아니더라도, 한 사람을 정상에서 바닥으로 끌어내리며 오는 쾌감을 대리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인물을 추락시키고 싶은 짜릿한 욕망 말이다.




<크루엘라>는 이러한 욕망을 겉으로 잘 드러낸다. 자신에게 배신감을 준 인물을, 끝내 추락시킨 뒤 자신 스스로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며 짜릿한 복수극의 엔딩을 고한다. 어떠한 도덕적인 이유가 되었든 간에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부정적인 감정 또한 멈추지 않는다. 하나, 자칫 이러한 전개는 관객에게 도리어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아마 빌런보다 더 빌런 같은 악의 인물을 남작 부인으로 설정한 게 아닐까 싶다. 빌런을 퇴치하는 빌런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흥미로운 전개다. 이뿐만이 아니라 조연 인물들과의 극적인 인물 구도를 통해 빌런에게 설득력을 더한다. 조연들은 조력자가 되었다가, 갈등이 되었다가, 다시 해결점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과정들은 단순히 악역으로 전락하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가 악역에게 빠질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준다. 마치, 영화 속 빌런을 돕는 조력자들이 되도록 말이다. 




빼먹을 뻔했는데 두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는 꼭 말하고 싶다. 엠마 스톤과 엠마 톰슨 두 배우의 인물 구도와 연기력이 영화를 압도할 정도로 강렬하다. 특히 엠마 스톤 배우의 변화하는 모습은 영화의 컷신마다 잘 드러나는데, 순한 면모를 가진 인물에서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기까지,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리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장면마다 정말 진심으로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패션이나 화장 모두, 기존 크루엘라를 잊게 할 만큼 강렬하게 느껴졌다. 이를 받아내는 엠마 톰슨의 우아하고도 싸늘한 면모는 이 둘의 케미를 환상적으로 이뤄낸다. 두 배우 인생 배역을 맡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찰떡같이 소화해냈다. 평론가와 관객들 모두 이 점에서는 공감하는 듯하다. 재밌는 점 중 하나는 영화에 등장한 강아지들 중 '버디'가 실제 유기견이라는 점인데, 엠마 스톤이 연기를 잘한다고 정말 극찬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강렬한 장면들이 머릿속에 꽤 많이 남는다. 현란한 느낌이 강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엔터테인먼트적인 성격이 굉장히 돋보인다. 아쉬운 건 너무 현란하다는 점. 박자를 빠르게 두면서 전체적으로 내용을 다양하게 구성하려고 한 노력은 보이나, 주요 기점이 될 수도 있을만한 장면들이 눈에 잠깐 남고 사라진다는 것이 아쉽다. 개인적으로 눈이 즐거운 영화도 좋지만, 크루엘라 같이 인물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주가 되는 경우 화려한 영상미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부연적인 면모도 보여줬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주인공 본연의 과정이 중요한데, 크루엘라 속 주인공이 될 만한 계기들은 지나치게 생략되어 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영화를 전반적인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고, 흥미롭게 만들어야 했어야 했기 때문에 이해는 하지만 서사적인 면모가 꽤 많이 생략된 것은 정말 아쉽다. 속편이 나올 것 같은 뉘앙스가 있긴 하나, 영화 하나로도 스토리가 탄탄하게 구성되고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대하긴 어려울 듯하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사실 단순하다. 과거로부터의 상처를 벗어나 해방을 통해, 진정한 자기 면모를 드러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크루엘라가 '에스텔라'라는 인물에 갇혀 '친절하게' 행동해야만 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사이코가 되지 않기 위해, 어머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게 아니면 진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끝내 진실을 알고 난 뒤에 결국 크루엘라는 에스텔라의 죽음을 선고하며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간다. 답답한 에스텔라의 가면을 벗고 크루엘라가 되었을 때 그녀의 표정과 행동은 더 자유롭고 세련되어 보인다. 우리는 종종 어떤 이의 인정을 받기 위해, 혹은 사회적 구조 때문에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곤 한다. 마치, 밋밋한 색깔로 자신의 머리를 염색해야 했던 에스텔라처럼 말이다. 하나, 어떤 순간에는 크루엘라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해방시킬 줄 알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 순간에 오는 용기는 단순한 용기를 넘어, 타인에게 광기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자신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낀다면, 타인에게서 더 이상 구애받을 필요는 없어질 것이다. (메시지보다는 단순한 복수극에 가깝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그렇다.)




개인적으로 디즈니 실사화 영화 중 최고라는 평을 하고 싶다. 디자인 요소나 연출적 요소가 워낙 화려해서 눈을 따로 둘 틈이 없었으며, 빌런으로 각성하게 되는 스토리조차도 내게는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세련된 연출과 두 배우의 인물 구도와 연기력이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멋진 영화였다. 사실 오락적인 요소가 가득했기 때문에 영화를 본 다기보다 화려한 화보집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뭐 어떤가 싶을 정도로 마음에 딱 들어맞았다. 기존 원작의 오마주에서 벗어난 확장된 세계관이 궁금하나, 더 이상의 속편은 없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코시국에 극장가 활력을 불어넣은 <크루엘라>, 귓속에서 자꾸 '아니타~달링~' 대사가 맴도는 것 같다. 참고로 엔딩 크레딧 끝나면 쿠키 영상과 더불어 '사지 말고 입양해 달라'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끝까지 놓치지 않고 그 문구까지 읽고 나오시길 바라본다.




사진 출처 : <Cruellal> St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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