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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Aug 02. 2021

<패밀리 맨>

La la la la means, I Love You.


크리스마스 캐럴을 눈으로 본다면.


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가끔, 오래된 명화들이 생각나곤 한다. 예전에 보았지만 장면만 문득 떠오르고 영화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명화들. 그중 하나가 바로 <패밀리 맨>이었다. 언뜻 KBS 명화극장 같은 프로그램에서 한 번쯤 틀어봐 주었을 법한데, 아무래도 명화의 인기가 옛날 같지 않다 보니 기억에서 완전히 깜깜무소식으로 잊히고 말았다. 그래도 기억나는 장면이 딱 하나 있었다. TV를 보고 있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멍한 표정과 티비 속 OST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스토리나 흐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언젠가 때가 되면 보고야 말겠다고 다짐한 영화 중 하나였는데, 겨울밤에 혼자 보겠다고 다짐한 것도 잠시 잊고 꽤 우울한 날에 영화를 틀었었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여러 영화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앞으로 이 영화가 기억나지 않을까 싶었다.




'하루아침에 다른 삶을 살게 된다면' 이게 바로 이 영화의 시작점이다. 유능한 비즈니스맨으로 일하던 잭(니콜라스 케이지 분)은 크리스마스에 우연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하루아침에 첫사랑 케이트(테아 레오니 분)와의 결혼 생활로 돌아가, 비즈니스맨이 아닌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로 삶을 살게 된다는 꽤나 유치하고 뻔한 내용의 영화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지만, 당시에는 가족이라는 틀을 소재로 활용해 꽤나 큰 인기를 누렸던 것 같다. 지금에서도 명작의 반열에 이 영화가 종종 언급되는 것을 보면, 영화 자체의 시놉시스와 흐름이 꽤나 흥미롭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지금에서야, 타임워프라는 소재 자체는 지나치게 뻔하지만, 내가 살 수 있을지도 몰랐던 어떤 평행세계의 '나'로 살게 된다는 건 생각보다 익숙지 않은 전개이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점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이 시대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했듯 '성공한 비즈니스맨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없다' 개념은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클리셰 중 하나이다. 가족 영화 특유의 부산물인지, 당시 2000년대 버블이 잔뜩 낀 경기 호황의 반론인지 알 순 없지만, 지금으로써는 감히 납득하기 어려운 전개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힘으로 성공을 일군 누군가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고 살아가야 한다는 게 어쩌면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런 것들에 치중해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망치기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전체적인 흐름을 읽었으면 한다. 물론, '열등감의 말로'라는 다른 이의 의견에 대해서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성공에 대한 확신 사이 사회 전반적으로 깔려있던 불안감이 영화사에 투영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게 영화를 보기에 편하지 않을까 싶은 심정이다. 정 불편하다면 보기를 강요하진 않겠지만, 당시 시대상과 사회 흐름을 읽고 돌아와 본다면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래된 명화는 보는 것을 넘어 맡는 것, 냄새를 가지고 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명화를 보다 보면 그때의 향수에 괜히 마음이 들썩이게 된다. 이 영화는 어쩌면, 미래에 볼 사람들을 위해 의도적으로 여러 장치들을 배경으로 사용한 게 아닐까 싶다. 영화의 배경은 2000년대 크리스마스, 눈 오는 풍경의 크리스마스라니. 뉴욕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센트럴 파크의 눈 쌓인 풍경을 떠올릴 수 있듯, 그때 당시의 향수를 자극하는데 이만한 소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해외 영화이다 보니 국내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을 수 있겠지만 크리스마스를 연례행사 중 단연 소중하게 여기는 서양인들에게는 이만한 향수가 없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해외 평론 사이트의 리뷰를 보면 '과거의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크리스마스, 올드팝, 올드카 등 꽤나 낯설고 촌스러운 소재들이 가득한 영화이지만 괜히 마음이 편해지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눈을 떴는데 하루아침에 내 삶이 뒤바뀌어 있다면 나는 맨 처음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더군다나 몇십층짜리 오피스텔에 살던 내가, 허름한 시골집에서 눈을 뜨게 된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나 싶다. 아마 대부분 영화 속 주인공과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스토리 전개가 빠른 만큼, 영화 속 주인공에게 몰입되는 순간 또한 촉박하다. 당황스러운 발걸음의 흐름을 따라가며 관객은 불편함과 함께 공존하게 된다. 초반부 영화는 당혹스러운 주인공의 감정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연출해낸 것도 의도적인 게 아닐까 싶었다. 다급하고 불편한 감정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관객이 같은 상황에 처하도록 유도해 영화 속 인물에게 이입될 수 있도록 연출한 듯하다. 물론 관객에게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 후반부의 극적인 상황을 부각해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쩐지 지지직거리는 빛바랜 화면으로 이 영화를 봐야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야 영화가 정말 가깝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영화가 가진 매력은 '올드함'에 있다. 수많은 2000년대 영화가 그러했듯 이 영화 또한 옛날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빈티지한 매력이 돋보인다. 물론 이런 매력만이 가득한 영화는 아니다. 시대상이 그러했듯 지극히 남성주의적, 가부장적인 전개의 흐름이 보이고 자본주의적 냉담이 영화 전반에 가득 흐른다. 물론 영화의 극적인 연출을 위했다고는 하지만, 서사 자체의 불편함을 완전히 배재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냈으며 테아 레오니와 아역배우의 순박한 대사들은 영화의 담점들을 감싸주기에 충분하다. 스토리의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인물들의 흐름이 자연스러워, 그리 어렵지도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도 큰 매력 중 하나이다.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도란도란 앉아 볼 수 있는 영화가 남아있지 않는 현대 영화판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잭이 티비를 틀어, 조용히 홈비디오를 볼 때 왠지 애틋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를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며 보았던 많은 장면 중에 이 장면이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데, 상황을 연출한 감독과 배우의 재량이 컸을 수도 있겠지만 음악이 나오는 잠깐 동안의 여백이 영화에서 벗어나, 주인공이 앉아있는 소파로 관객을 불러낸 게 아닐까 싶다. 잭이 티비를 보면서 했던 생각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 순간에 만큼은 지금의 삶에 만족했던 걸까, 아니면 그때서야 비로소 행복의 개념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한 걸까. 보는 이에 따라 어떻게 생각할지는 다르지만 잭이 겪어보지 못한 순간에 대한 행복한 회한을 겪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진다.




'I Choose Us', 한마디뿐이지만 여러 가지 메시지가 담겨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기본적으로 가족 영화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부와 가족애 사이의 중요도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 세상에 막대한 부가 변할지는 몰라도, 가족에 대한 사랑과 깊은 믿음에 대해서는 변하지 않는다고. 가족이 주는 행복과 즐거움은 그 어떤 것도 비견될 수 없다고. 물론 지금에서야 보면 시대착오적인 메시지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생각이 가능했던 2000년대 초반 까지였다고는 하나, 워커홀릭들이 즐비했던 당시 시대를 생각해보면 아버지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이런 영화가 탄생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같은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마지막 애니(매캔지 베카 분)가 아빠를 꼭 끌어안고선 '돌아올 줄 알았어요'라는 대사를 뱉을 때 영화를 보던 많은 아버지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마음에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가족에 대한 소중함만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겨울 멜로 영화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정의를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떤 것을 희생할 수 있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함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낭만적이고도 순수하게 잘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특히 후반부에 들려오는 'La La La Means Love You'를 부르는 잭의 모습은 그립고도 애틋한 두 가지의 모습을 솔직하게 잘 드러냈던 것 같다. 이 장면이 없었다면 잭이 가족의 삶을 각성하는 일도, 관객에게 그럴싸한 동기부여를 납득시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가장 설레던 때를 비추어 음악으로 현재를 환기시키는 연출은 영화사에 다시 보기 어려운 명장면이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 멋지고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지만, 애석하게도 사랑은 가장 어설프고 모자란 순간에 빛을 발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실현시킬 때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눈 깜짝할 새 그때는 떠나고 만다. 때문에 사랑에 한해 많은 사람들이 후회를 남발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영화 속 잭은 우연한 행운을 통해 다시 그때를 만끽할 수 있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당신에게 그때는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지금 뿐이다. 타임워프를 통해 돌아갈 수 있는 기적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삶은 꿈에 맡기기로 하고 지금. 지금 사랑을 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나 홀로 집에>를 떠올렸겠지만, 나는 <패밀리 맨>을 떠올릴 것 같다' 어디서 보았던 것 같은 한줄평이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우선순위란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위치에서 나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내가 가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히 드러나는 영화를 오랜만에 봐서인지 몰라도, 감동적인 영화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흔한 클리셰 일지 모르지만, 오래된 명화가 가진 클리셰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마지막, 잭과 케이트가 나누는 대화를 상상할 순 없지만 이해하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에 때가 되면 가족과 함께, 혹은 결혼을 앞둔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다. 그리 거창한 계기가 아니라도 겨울에 눈이 오면 다시 보고 싶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사진 출처 : <The Family Man>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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