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행복이란? (2019)
행복이 무어냐니, 지금 시점에 내 행복을 정의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면서도 남을 누군가들에게 내 죽음의 어떤 예고라도 남길까 봐서. 그런 조바심을 해결하려 그 고민에 시간을 주기로 했다. 엊그제 저녁 친구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메시지로 마지막 질문을 받았거든요. 행복이란?
행복이요. 그거 무척 소중한 거죠.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까 너도 나도 행복, 행복, 하잖아요. 행복을 바라는 노래도 많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하잖아요. 행복을 말하는 책들도 많죠. 그것 참 소중한 것이겠지요, 아마도. 그러니까 내게도 행복이 무어냐 물어왔겠지. 나도 실은 많이 바라왔어요. 부모님이 행복하길, 동생들이 행복하길, 친구들이, 선생님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던 학우들이, 지하철 벽에 붙어 있던 불우한 이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바다 저편의 누군가와, 내가 행복하길.
그런데 그거, 그것 참 소중한 만큼 내가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니에요? 마치 소중한 누군가의 행복을 내가 빼앗기라도 한 것일까 봐. 내가 가지면 안 되지. 나보다 더 소중한 네가, 그리고 이름 모를 당신과, 생사를 겨루고 있는 불우한 이웃, 그 아기가. 내게 조금이라도 행복이 남았다면 부디 가져가 줘. 부디 가져가서 행복하게 살아줘. 세상엔 남는 행복은 없어요. 당신은 행복했음 하는데, 그랬음 하는데. 행복은 꿈속으로 날아가 버렸고, 은하수 너머로 뛰쳐나가 소멸되어 버렸어요. 내게 내가 모르는 남은 것이 있다면 네가 좀 가져가. 네가 행복했음 하거든.
아기들은 저마다 엄마 뱃속의 꿈에서 행복을 떼어다 안고 태어나 하나둘 잃으며 시간을 보내요. 사람들이 내 주위에 둘러앉아 저마다의 불행을 이야기해요. 가만 듣고 있자니 나는 마음이 너무도 아파서 제발 이것 좀 가져가, 다 가져가, 하고 이것저것 꺼내어주어도 다음날이 되면 다시 또 울며 나를 찾아와요. 어쩌지, 그게 내가 가진 전부였는데. 더 줄 게 없어서 미안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어서. 더는 힘들어하는 걸 보고만 있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 그래서 미안해. 가진 게 그것밖에 없었어서 미안해. 쥐똥만큼은 나도 태어나며 엄마의 꿈속에서 훔쳐온 행복이 남아있을지도 몰라요. 그거 너 가져. 싸우지 말고 사람들이랑 사이좋게 나눠 가져. 아아, 난 이런 말을 차마 입 밖으로 아직 꺼내진 못 하겠어서 이내 입을 다물겠지요. 잘 모르겠어, 너무 어려운 질문이야, 하고. 아니, 알아. 행복 그거 불행을 만드는 놈이잖아. 아니, 잘 모르겠어. 노트에 빼곡히 행복, 행복, 행복, 적어둔 면을 한참이나 앉아서 쳐다만 봤어요. 남아있을 누군가에겐 그래도 희망을 두고 가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어떻게 희망을 만들까 고민해요. 암만 보아도 그냥 글자일 뿐인데 선분에 선분을 더한 새로운 선분들과 빈 공간이 남았을 뿐인데. 나의 행복은 무언지, 나에게 행복을 물어온 당신의 행복은 있는지, 행복을 이루고 있던 수백 개의 선분들이 겹치고 겹쳐서 머릿속에 까만 둥지를 틀어요. 거기서 또 까맣고 작은 벌레들이 우루루 떼를 지어 기어 나와요. 큰 고래를 겁주려는 작은 물고기 무리처럼 눈앞에 일렁일렁 피어오르다가 내 손에 달려들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손가락 하나가 잡아먹힌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요. 그러던 차에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실수로 놓친 볼펜이 툭 소리를 내니 사르르 사라져 버렸어요.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니겠나요.
이윽고 며칠 전 인터뷰를 했던 친구가 마지막 질문을 다시 던져 왔다. ‘그래서 행복이란?’ 나는 그 메시지가 온 걸 곧바로 알았으면서도 핸드폰을 뒤집어 두었다. 너한테 어쭙잖은 행복을 남기려 이야기를 지어내다가 문득 알아버렸어. 행복이 불행을 만들어 낸 게 맞더라. 실은 행복은 없어. 그건 사람들이 그럴싸하게 지어 놓은 주문일 뿐이었어.
무거운 소리를 태연히 해대면서 무서운 마음을 이 친구에게 전하고 싶진 않아서 적당한 말을 꾸며내려 했다. 적당히 그럴싸하고, 적당히 어려워서 적당히 알아듣곤 적당히 못 알아들을 말을 지어내려고. 그냥 그렇게 나중엔 그 친구가 자기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는 것도, 내가 어떤 답변을 보냈는지도 잊어버리게 되기를 바라고서. ‘행복‘만 한쪽 빼곡하게 흘려 써놓고는 한참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마음먹고 거짓말하는 건 꽤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적당히 꾸며내는 게 너무 어려웠다. 행복은 아무것도 아니야. 행복은 실은 불행이야, 이딴 소리만 맴돌았다.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연락이 다시 온 것이다. 나는 무언가 답변을 내놓고 싶었다. 내게 대답까지의 시간을 준 건 어떤 대답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거겠지. 네가 나에게 행복을 물어온 건 너도 어디에선가 너의 행복을 찾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라. 조금은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며 다시 노트를 바라보았다가 또 눈 둘 곳을 놓치고 허공을 보길 여러 번이었다.
행복한 게 실은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그게 어떤 느낌이지? 사람들은 어떤 때 행복하다는 말을 했었더라.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알았을 때 그게 뭐라고 배웠더라. 아무래도 나는 진심으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럼 비슷한 걸 생각해 볼게. 행복과 비슷할 것 같은 말들. 기쁨? 즐거움? 내가 언제 기뻐했더라. 내가 언제 즐거웠더라. 어느 때 큰 소리로 웃었더라.
어느 명절에 아빠가 내 손을 잡고 시골길을 산책하다가 풀잎 하나를 뜯어 풀피리 부는 법을 알려줬다. ‘풀에서 어떻게 소리가 나? 나도 알려줘! 나도 알려줘!’하고 아빠에게 매달려 방법을 전수받곤 연휴 내내 풀피리 부는 걸 연습했다. 몇 년쯤 지나 아직 나이가 어린 막냇동생의 작은 손을 잡고 시골길을 걷다가 개울가에 앉아 풀피리 부는 법을 알려줬다. 이거 봐, 소리가 나지? 개구리가 된 것 같지? 신기해하며 눈을 말똥거리는 어린애에게 풀잎을 쥐어주곤 이렇게 불어봐, 이렇게, 하며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빠한테 보여 주겠다며 할머니 댁 쪽으로 도로를 가로질러 덤벙덤벙 뛰어가는 동생의 짧은 발자국을 따라 나도 쪼르르 작은 걸음으로 뒤따라갔다.
어느 때 웃었던가,를 생각하니 끝도 없이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불과 며칠 전에도 친구와 통화를 하며 킥킥대며 웃었고 동생과 방 안에서 춤을 추며 박장대소를 했었고, 내게 행복을 물어왔던 이 친구가 들려주는 여행 얘기를 들으며 덩달아 신이 났었다. 아르바이트하는 곳의 나보다 한 살 많은 사장님의 시답잖은 농담에 잔뜩 시비를 걸고 호쾌하게 웃었던 내 웃음소리와 길을 거닐며 보았던 사이좋은 커플을 따라 웃음을 띄웠던 내 얼굴이 계속 교차되며 떠오르다 어지러이 상들이 겹쳐졌다. 그러다 다시 또 까만 둥지가 되었다. 허나 그 까맣고 우글대는 벌레들이 다시 기어 나오진 않았고 심장이 아주 빠르게 뛰는 것만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조금 뒤늦게서야 메시지를 읽고선 잘 모르겠다고, 너무 어렵다고 대충 얼버무려 대답했다. 뒤이어 다른 질문을 해왔지만 그 역시 깊게 생각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그냥 해버렸다. 조금 더 성의 있게 하고 싶었지만 머리가 너무 아파 관두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텅 빈 방 안이 조금 시끄러웠으면 해서 엉엉 울어버렸다.
어떡하지, 나 좋아하는 게 엄청 많았구나. 아직 좋아하는 게 많이 있었네. 미처 몰랐네, 미처 몰랐어. 어떡하지, 나는 곧 죽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하는데. 이제 정말 끝만 남았는데. 갑자기 무서워졌어. 유서를 쓰고 하나하나 준비하면서 그동안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는데 갑자기 무서워졌어. 나 좋아하는 게 엄청 많았구나, 내가 충분히 살 수 있을 만큼 아주 많더라. 행복이 불행을 만들어 낸 게 맞더라. 그럴싸한 주문이 맞았어. 나는 거기에 깜빡 속았어요. 행복해야지, 행복해야지, 하면 저절로 행복해지기라도 하는 줄 알았는가 봐. 행복해야지 노래를 부르다 보니 그냥 나한텐 행복이 아주 없는 줄로만 알고,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행복에 뭔가 특별한 것이라도 들어있는 줄만 알았던 가봐.
풀피리를 언제 마지막으로 불어봤더라. 지금 다시 그 엇비슷하게 생긴 풀잎을 따다 불면 똑같은 소리가 날까. 마치 개구리가 된 것 같았던 그 기분이 다시 또 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