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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Sep 13. 2022

로망은 파피요트에 있다

        신혼살림을 장만하면서 노래를 불렀던 주방가전은 오븐이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면서 웬 오븐? 싶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신혼살림에 끼워서 구매해야 했다. 신혼이야 말로 돈을 펑펑 써대는 시기이고, 이걸 놓치면 영영 우리 집 주방에서 오븐은 찾아보지 못할 테니까. 막상 오븐 오븐 입에 달고 살면서도 뭘 구매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는데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엄마가 에어프라이어라며 보내 준 제품은 오븐 기능을 포함한 아주 훌륭한 주방가전이었다. 딸의 요리 실력은 몰라도 요리에 대한 넘치는 열정만은 알아준 엄마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그렇게 우리 집 주방 한편에 자리한 오븐을 보면서 내가 떠올린 건 오로지 파피요트였다. 파피요트, 이름도 발랄한 그는 프랑스 음식이다. 유산지나 알루미늄 포일로 싸서 익히고 또 그 상태로 서빙하는 음식을 말한다. 파피요트를 처음 만난 건 지인의 SNS다. 이사 후 한창 집들이를 하던 그는 집들이 파티하는 사진을 자주 올렸는데, 그중에 파피요트가 있었다. 일단 비주얼부터 환상적이다. 레몬, 아스파라거스, 딜, 다양한 채소와 허브가 어우러져 핑크빛 연어살 위에 놓여있다. 녹은 버터에서 풍기는 고소한 향이 사진을 넘어서 풍겨오는 것 같다. 무엇보다 파티에 적격인 다채로운 컬러감이라니. 후에 생각해보니 파피요트에 그토록 끌린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당시엔 이유도 모르면서 홀린 듯이 파피요트를 검색해봤다. 


        배우자와 나의 가까운 친구 몇 명을 부르는 첫 집들이를 앞둔 날, 파피요트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배우자 J는 "파피요트가 뭐야?"라고 물었고, 나는 뭔가 대단한 것 마냥 아는 체하며 말했다.


"집들이 필수 메뉴지! 만들기도 간단하고 예쁘기까지 해."


        엄마가 보내 준 에어프라이어의 사은품인 레시피북에도 파피요트가 있었다. 그걸 토대로 재료를 준비했지만, 연어살은 흰살생선으로 변경했다. 내 로망 속 파피요트는 흰 살 생선에서 향긋한 연기가 폴폴 솟아나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파피요트에 꽂힌 뒤 여기저기 찾아보던 사진들 중 흰 살 생선 파피요트가 있었나 보다. 어찌 됐든, 구하기 어려운 허브인 딜을 제외하고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라 준비가 까다롭진 않았다.


파피요트 만드는 법

준비물: 흰 살 생선(냉동 대구를 사용함), 파프리카, 모시조개(바지락으로 대체), 아스파라거스, 레몬, 화이트 와인, 버터, 소금, 후추, 종이 포일, 오븐

조리 단계

1. 오븐 용기에 종이 포일을 깐다.

2. 포일 위에 생선, 파프리카, 아스파라거스, 레몬, 모시조개를 얹는다.

3. 그 위에 버터 조각을 얹고 화이트 와인을 몇 숟갈 뿌린다.

4. 종이 포일을 바구니 감싸듯 꽁꽁 싸맨다.

5. 200도 오븐에서 30분간 굽는다. 완성!



        솔직히 나에겐 난이도가 있던 음식이다. 하필 집 근처 마트에는 생물 생선이 없어 냉동 생선을 써야만 했고, 처음 만들어보는지라 '이만하면 됐나?' 싶은 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접을 하기 위해 정성껏, 열심히 만들었다. 아참, 파피요트를 만들면서 레시피북을 맹신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레시피북에는 200도 오븐에서 20분간 구우라고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20분으로는 생선이 설익었다. 고작 가열 시간 정도이긴 하지만 나름 나만의 방법이 생긴 것 같아 내심 뿌듯하다.




        파피요트에 왜 그렇게 끌렸는지 첫 집들이를 마치고 깨달았다. 파피요트는 내게 이를테면, 안정된 삶의 단면이다. 파피요트는 그 자체로 완성된 훌륭한 음식이다. 건강하고 맛있는 식재료와 조리 과정의 향기가 주방을 물들이는 음식. 무엇보다 파피요트를 만드는 데에는 오븐이 필요하다. 오븐을 갖추기 위해선 수납할 충분한 주방과 오븐을 사용해 요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 요리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


        사실 한식은 오븐을 이용해 조리할 만한 메뉴가 거의 없다. 최근에는 오븐을 활용한 다양한 요리가 있지만, 오븐보다 더 기동성 높고 간편한 에어프라이어가 있어 오븐의 필요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집에 있는 가전도 에어프라이어와 오븐 기능을 결합한 것이니까. 하지만 내게 언제나 오븐은 로망이었다.


        13세 시절 쿠키 만드는 것에 빠졌다. 같은 반에 친해진 친구의 취미가 쿠키 만들기였는데, 몇 번 같이 어울리다 보니 나도 그 재미에 빠졌다. 동네에서 가장 큰 아파트에 살던 친구의 집에는 커다란 오븐과 대구 방산시장에서 사 온 베이킹 재료가 가득했다. 베이킹 재료를 못 살만큼 형편이 어렵진 않았지만, 오븐은 다른 문제였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는 방의 사이즈를 키운 대신 거실이 없고 주방이 매우 좁은 구조였다. 모두 일을 해서 주방을 살피는 이가 없었기에 주방도 복잡했다. 가스레인지는 아래에 작게 미니 오븐(이라지만 기능은 생선 굽기 밖에 되지 못하는)이 있었는데, 그 정체불명의 작은 칸이 오븐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론 주야장천 그곳에 쿠키를 구워댔다. 유구한 요알못의 솜씨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쿠키는 온도 조절이 되지 않는 그 작은 미니 오븐 안에서 채 구워지기 전에 녹아버리거나, 혹은 새카만 재가 되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선 주방을 가득 매운 매캐한 냄새와 엉망이 된 싱크대를 보는 엄마의 심정이 지금은 십분 이해된다. 물론 내가 저지레 한 것은 내가 치웠지만, 그러면서도 철딱서니 없게 오븐 탓만 해댔다. 오븐이 있었으면 잘 구웠을 텐데, 나도 쿠키를 더 잘 굽고 싶은데. 설거지를 하면서 구시렁거리는 둘째 딸의 등을 보는 엄마는 얼마나 속이 시끄러웠을까. 오븐을 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오븐을 들인 뒤의 여유가 없었다는 걸 깨달을 지금, 문득 미안해진다. 혹시 엄마도 그걸 기억해서 오븐을 사준 걸까?


        그 기억 탓인지, 오븐으로 조리하는 아름답기까지 한 요리 파피 요트를 보는 순간 내외부의 모든 요건이 안정적이고 단단한 삶의 모습이 그려졌다. 크게 넓지 않아도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에서, 지인을 초대해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는 여유 있는 모습이.

  



        첫 집들이에서 파피요트 데뷔 이후, 모든 집들이마다 파피요트를 출전시키고 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실력이 쑥쑥 자라는 게 느껴진다. 처음엔 와인이 과했는지 국물이 흥건했지만, 지금은 딱 알맞게 '생선찜'처럼 포슬 한 정도다. 맛본 사람들을 모두 직접 만들었냐며 칭찬한다. 형편도 요리 실력도 시간이 지나면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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