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성장하는 관계 - 예술가와 콜렉터
며칠 전 친구와 코엑스에서 열린 2019 한국국제아트페어(줄여서 키아프 kiaf)를 즐기고 왔다. 미술을 좋아하는 이들이 국내에서 즐길 수 있는 큰 행사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VIP제외. 입장료만 내면 평소에는 그 고고함과 거리상의 이유로 찾아가기 부담스러운 갤러리들의 문턱을 쉽게 넘어 현재 핫한 미술작품들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기에 매년 시간을 내 방문하는 중이다. 운동화 끈을 질끈 매여 묶고 가방에는 물 한병을 넣고 열심히 돌아다녀도 하루에 다 보기 힘들정도로 많은 그림들이 걸려있다.
그 중에서 특히 끌리는 작품들, 좋아하는 작가님의 작품 앞에서는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비싸서 사지는 못하고 아쉽게 발만 동동거리다 시간 맞춰 뒤늦게 발걸음을 돌렸다. 올해 듣고 싶은 토크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내가 기다리던 토크 세션은 <세션 2. 예술가와 함께 살며, 예술작품과 함께 공존한다.> 였다. 발표자는 아트컬렉터이자 요코하마 예술디자인대학 교수인 미야츠 다이스케씨와 아티스트 정연두씨 두 분이다. 사실 이 두 분의 관계에 대해서는 미야츠 다이스케씨의 책 <월급쟁이, 컬렉터 되다>를 통해 대충은 알고 있었다. 미야츠씨와 정연두 작가는 오래전에 정연두 작가의 작품에 미야츠씨가 참여하게 되면서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그가 자신만의 집을 설치하기로 결정했을 때 정연두 작가의 ‘보라매 댄스홀’을 벽지로 이용하는 등 특별한 인연을 이어왔다고 한다.
사실 그림은 사고 싶은데 사실 그림 잘 모르겠고, 비싸고, 고작 월급쟁이인 주제에 그림 사는 일이 사치 아닌가란 마음이 들 때쯤에 이 책을 만났다. 제목부터 월급쟁이인 나를 확 끌어당기는 자극적인 책이었다. 책의 저자이자 오늘의 강연자인 미야츠 다이스케씨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단지 그림이 좋다는 이유로 다른 곳의 지출을 최소화하여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그림을 기꺼이 샀고 그런 삶을 반복하였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사기 위해 모든 지출을 아끼고 가족들의 반대에도 카드를 긁는 대단한 용기를 선보인 용사님을 꼭 실물로 뵙고 싶었달까.
어느 순간 그는 그냥 일반 직장인에서 유명 예술 컬렉터이자 예술대학 교수까지 되었으니 과정과 결과 모두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웠다. 그는 단순히 벽에 거는 그림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상작품, 설치작품 보증서 등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수집하는데 무엇보다도 단 한 번도 자신이 산 작품을 팔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책을 통해서 정연두 작가님도 작가님이지만 미야츠씨를 한 번 꼭 만나고 싶었는데 마침 토크세션 시간이 맞아서 다행이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세션에서는 좀 더 자세한 두 분 사이의 에피소드와 작품활동 중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볼 수 있었다.
두 분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어렵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고, 자신이 힘들 때 지지해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정연두 작가는 미야츠씨의 지원을 받아서 2002년 동경 이스탄불 비엔날레 출품작 ‘Bewithed’와 2009년 요코하마국제영상제에 작품을 출품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야쓰씨는 자신이 선택한 작가들이 가치를 인정받아갈수록 컬렉터로써 자신도 성장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였다. 두 분다 쉽지 않은 조건에서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가난한 예술가와 평범한 직장인에서 서로 믿고 지지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넓혀온 것이다. 두 분이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지만 어떤 우정보다도 굉장히 끈끈하게 이어져있다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이 둘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뭐든 함께해야 더 잘 되는 법이다.
컬렉터로써의 조언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냥 질러라’가 답이었다. 너무 유쾌한 답변이었다. 사실 강연 내내 그 유쾌함에 매료되었었다. 아이 같은 유쾌한 기분 좋음으로 즐겁게 그림을 사셨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 싶은 건 그냥 사셨다는 대답. 간단하지만 실천하기 쉬운 일은 아닌데 역시 긍정적인 사람은 어떻게든 잘된다는 게 나만의 결론이다.
미야츠씨의 안목처럼 나도 안목이 생기려면 아직 한참은 남은 거 같다만 설령 내가 산 그림의 가격이 오르지 않더라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을 만나고 소유하는 기쁨을 누리며 살고 싶다. 결국 나는 이 말을 듣고 다시 고민 고민 끝에 갤러리로 돌아가 아주 작지만 맘에 쏙 드는, (다행이도) 내가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작품을 하나 집어 들었다. 집에 가지고 들어오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조언대로 그냥 지르기 잘한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