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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아티스트 Nov 17. 2019

그림 보러 다니다.



문득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나는 죽어서 뭐라도 하나 남길 수 있을까? 아니 생후에도 기억되는 이런 거창한 작품의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살아있는 지금 내 인생을 제대로 그리고나 있는 것일까 심란한 마음이 들끓었다. 반복되는 회사생활 어느덧 7년차 내 삶은 회의감으로 가득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부터 어느새 내 이름이 거의 사라졌다. 나는 그저 회사 내 정해진 직급으로 불린다. 가을 타는 것처럼 헛헛하다. 그래도 이 헛헛함을 애써 무시하고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먹고 살만은 하다. 절박할 일 하나 없는 나태한 내 삶에 채워지지 않는 답답함은 어느 정도 배가 불러 하는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사회생활 5년차 정도 되면 한번쯤 겪는다는 오춘기의 감정기복이려니 싶었는데 나는 유독 그런 마음이 그림 앞에서면 커져만 갔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긴 했다. 그러나 그 그림이란 게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예쁜 공책 디자인, 만화책, 애니메이션을 따라 그리는 정도였다. 대학에 와서도 미술을 전공한 적은 없다. 딱딱한 경제학 과목에 쾌감을 느끼는 학생이었고 감성보다는 이성적인 사고를 선호했다. 나에게 미술은 우연히 빠지게 된 장르인데 첫 계기는 당시에 사귀던 남자친구 덕분이다. 그의 선택으로 미술관 데이트라는 것을 하면서 미술의 세계에 아주 교양 있게 입문하게 된 것이다. 쾌적한 공간에서 적당한 시간을 보내며 사진도 찍고 커피도 마시는 미술관 데이트를 좋아하게 되었고 나는 그게 썩 마음에 들었다.       


두 번째 계기는 그 때쯤 내 미술 교양의 수준을 확 높여주는 미술 교양수업을 만난 일이다. 수강신청에 실패해서 듣게 된 거라고는 믿기기 않을 정도로 나는 그 당시 교수님과 서양미술사 개론에 흠뻑 취해버렸고 그 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짜리 교양수업을 1년간 듣고 나서야 마네와 모네를 구분할 줄 아는 나름 뿌듯한 수준이 되어 있었다. (그 전에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게 지식이 조금 찼다고 느끼자마자 근자감에 그림을 직접 보러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다보니 그 뒤로 유명한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찾아다니는 일이 즐거운 취미가 되어있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사실 그림의 세계는 배워도 끝이 없는 아리송한 분야다.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쌓기에 나의 하루하루가 바쁘고 먹고사니즘이 너무 버겁기 때문에 아직도 내 지식수준은 그 때 배웠던 대학 교양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의 일상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그림 보는 일을 즐기고 있다. 아직까지는 그 희미한 지식을 우려먹을 정도는 되었는데 동시대현대 작가들은 아는 게 하나 없어 그저 신기하게만 바라볼 뿐이다. 사는 건 바쁘지만 계속해서 낯설고 특이한 여러 작품들을 찾아보게 된다. 어느 날 내가 왜 이렇게 그림을 보러 다니지 생각해보니 매일 반복되는 생활 패턴 속에서 어느 샌가 ‘지겹다.’라는 말이 습관이 된 내 삶에서 소극적이나마나 작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우리 엄마가 집안일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지겹다는 말을 할 때마다 ‘지겨운데 왜 하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지겨워도 매일 같이 숙명처럼 해야 하는 일들이 있음을 몸소 알게 되었고 그런 작은 부담감으로부터 벗어나는데 그림 보는 일은 작은 해방구가 되어주었다. 잠시 나마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직장인 아무개가 아닌 새롭고 낯섦을 고민하는 예술가의 삶에 가까워 진 거 같은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어렵고 다 알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술가들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착각 속에 빠진다. 너는 어떻게 너만의 작품을 만들래? 너만의 색감은 뭐야? 어떤 재료를 사용할 건데? 아주 잠시나마 그림을 보는 시간만큼은 현실의 먹고사니즘과 별게로 내 삶을 고민하는 시간이 되어준다. 만약 그림을 보러 다니지 않았더라면 나는 고민 없는 삶을 살지도 모르겠다. 혼란스런 마음이 뒤섞이지만 계속 나에게 질문을 걸어주는 그림을 통해 나는 내 삶을 고민하는 아주 작은 시간을 가진다. 인생에 배움은 끝이 없고, 끝없는 고민의 연속이듯 계속 나도 그림을 보면서 답을 찾아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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