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습의 이면 - 마리오 오디세이의 무아(無我)
갑자기 닌텐도 스위치가 너무 사고 싶었다. 너무 게임을 하고 싶었다. 성인이 된 후 게임이라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육성 게임을 스마트폰으로 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콘솔 게임이 너무 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바로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와일드>때문이었다. 내가 <젤다의 전설>이라는 게임 하나 때문에 거금을 들여 게임기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젤다의 전설>의 평가 때문이었다. 작년 한 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게임이라 불려지고,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인생 게임이라고 불리는 것을 보고 나의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다. 98년에 출시한 <젤다의 전설 - 시간의 오카리나>가 부동의 평가 1위 게임이었지만 <브레스 오브 와일드>의 등장 이후로 1위가 바꼈다니. 결국 선물로 닌텐도 스위치와 <브레스 오브 와일드>를 받고 내 인생을 말 그대로 현망진창이 되었다. 논문학기가 시작할 때쯤 게임을 시작했는데, 논문을 쓰다가도 슬그머니 닌텐도 스위치를 가방에서 꺼내 도서관을 빠져나와 게임을 한창 하다가 다시 책상 앞에 앉았으니 말이다.
당신의 마리오는 어떠냐고 물었으면서, 뜬금없이 <젤다의 전설> 이야기를 하는 이런 서두 없는 글을 쓴 이유가 있다. 사실 나는 <젤다의 전설>에 대한 큰 추억은 없다. <젤다의 전설>은 내 어린 시절까지 현망진창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나의 어린시절 현망진창으로 만들었던 건 바로 <마리오>다. 작년 한 해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와일드>가 1위를 거머쥔 게임이었다면, 그 뒤를 쫓는 건 바로 <마리오 오디세이>였다. <젤다의 전설>로 이미 현생을 망치고 온 나로선, <마리오 오디세이>는 어린 시절에 많이 했던 그런 시시한 게임 중 하나였다. 아직도 쿠파는 피치공주를 납치하고 아직도 마리오는 쿠파를 쫓는단 말인가. 단 한줄로 설명되는 이 스토리 라인은 <마리오 오디세이>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게임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젤다의 전설>에 비해 조금은 유치한 게임이었다.
<마리오 오디세이>는 현재의 내 인생을 망치지 않았다. 인생은 망치는 대신 남은 시간에 하면 딱 좋은 게임이었다. 늦은 밤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각자의 일을 하는 날이었다. 엄마는 TV를 보고 있으며, 아빠는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껴서 닌텐도 스위치를 켜 <마리오 오디세이>를 했다. 어린 시절 나와 함께 마리오를 하던 아빠는 <마리오>가 이렇게 변했냐 물었고, 나는 달라진 <마리오 오디세이>에 대해 설명했다. "여전히 마리오는 피치 공주를 납치한 쿠파를 찾아 모험을 하고 있다. 그래도 새로운 마리오에는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다." 바로 캡처라는 기능이다. 나는 아빠에게 캡처라는 기능에 대해 설명했다. <마리오 오디세이>에는 '캐피'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한다. 캐피는 마리오가 항상 쓰고 다니던 모자에 생명을 부여한 캐릭터였다. 마리오가 모자인 캐피를 던져 다른 생명체에 모자를 씌우게 되면 마리오는 그 생명체가 된다. 예를 들어 마리오가 캐피를 개구리에게 던져 모자를 씌우면 마리오는 개구리가 된다. 마리오는 모자를 던지며 '나는 너가 되고 너는 내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무아(無我)다. 무아(無我)는 불교의 근본 교리다. 만물에는 고정된 실체로서 '나'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너가 될 수도 너는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깨달음을 얻은자가 바로 흔히 말하는 '해탈'한 자이다. <마리오 오디세이>는 무아를 실현하고 해탈한 게임이었다.
무아의 캡처. 가만 보니 <마리오 오디세이>를 비롯한 마리오 시리즈는 폭력적이지 않다. 갑자기 무인도에 떨어져 살아 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총으로 쏴야하는 게임과는 다르다. 쿠파를 비롯한 다양한 적을 물리치는 방법은 밟아서 피하거나 혹은 적이 되어보는 것이다. 비폭력 게임의 정점을 만든 캡처의 기능은 마지막 보스인 쿠파에게도 적용된다. 마리오는 피치 공주를 납치한 쿠파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잠시 기절(!)한 쿠파에게 모자를 던진다. 마리오는 쿠파가 된다. 쿠파는 마리오가 된다. 그 순간 마리오 시리즈 속 쿠파의 이미지가 주마등처럼 쏟아져 나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비트(bit)로 만들어진 초창기 쿠파부터 3D가 된 현재의 쿠파까지. 마리오가 쿠파가 되는 순간 비로소 나는 생각한다. 나는 한 번이라도 쿠파를 이해 해본적 있는가! 쿠파는 왜 피치 공주를 납치하면서까지 피치 공주와 결혼을 하려고 하는가!
<마리오 오디세이>는 과거의 마리오 시리즈를 이어 간다. 게임 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예전 시리즈와 성격을 이어가고, 비트(bit)로 만들어진 초창기 마리오가 나오는 플레이까지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여전히 쿠파는 여전히 피치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피치 공주를 납치한다. <마리오 오디세이>도 <젤다의 전설>처럼 과거의 시리즈가 쌓아놓은 공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새로운 시리즈는 과거의 시리즈를 발판 삼아 각자의 새로운 공을 다시 쌓는다. <젤다의 전설>은 새로운 게임의 형식으로 새로운 시리즈를 이어간다. 하지만 <마리오 오디세이>는 답습한다. 과거를 잊지못하고 자신의 과거를 계속 인용한다. 여전히 쿠파는 나쁜놈이고 마리오는 나쁜놈인 쿠파를 쫓는 그런 유치한 답습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인 '캡처'로 무아의 상태에 이르러 해탈한 마리오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마리오는 어떤가요?"
나의 마리오는 유치하다. 유치해도 마리오는 나의 과거를 불러낸다. 단순히 어린시절 마리오를 했던 추억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다. 그 추억의 이면, 그 시절의 이면을 생각하게끔 만든다. 현재가 되서야만이 볼 수 있는 이면. 바로 무아의 캡처를 통해서 말이다. "어렸을 땐 <톰과 제리>에서 톰이 제일 나쁜놈인 줄 알았는데, 커서 보니 제리가 제일 나쁘더라"라는 말처럼. 내가 마리오가 되고, 마리오는 쿠파가 되고, 나도 쿠파가 되어보면서, <마리오 오디세이>는 유치한 답습을 통해 새로운 이면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