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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튼 Jan 13. 2019

그건 쫌 그렇지

컵 속의 벌레



실내카페 - 


머그잔 둘이 놓여진 카페 테이블에 여자1여자2가 마주 앉아 있다.


여자1    야. 식당인데 니 물컵에 벌레가 빠졌어. 그럼 어떡할꺼야.

여자2    왜. 니 잔에 벌레 있어?

여자1    아니.


여자2는 자기 머그잔 속을 내려 본다.

잔속엔 커피만 담겼을 뿐, 티끌 없이 깨끗하다.


여자2    벌레가 있으면... 종업원 분한테 컵을 바꿔달라 해야지. (사이) 이거 심리테스트야?

여자1    아니~ 물어보는거야.


여자2는 다시 자기 머그잔을 내려보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여자1    내 전남친은 있잖아, 그런 거 있으면 꼭 종업원부터 식당 주인까지 다 불러서 엄청 지랄을 했어. 애가 작은 것 하나 그냥 넘어갈 줄을 몰라. 같이 있으면 숨 막히는 스타일. 뭔지 알어?

여자2    그랬구나.

여자1    심각했지. (사이) 거기서 음식값 얘기까지 나왔으면 내가 걜 안 만났을 거야. 근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 하여튼 애는 착했어.

여자2    어. 사람이 지랄은 좀 해도 착할 수는 있지.

여자1    사진 보여줄까?


여자1이 테이블 위로 휴대폰을 올려놓고 전남친 사진을 찾는다.

여자2가 고개를 빼고 여자1의 휴대폰을 내려본다.

전남친의 사진들. 혼자 찍은 셀카, 친구들과 찍은 사진, 길거리에서 찍은 사진 등등...


여자1    니가 보기엔 어떤 거 같애?

여자2    아니 뭐... 글쎄... 잘 모르겠네.

여자1    성격이 좀 그렇지 않아? 남자애가 좀 대충대충 그런 매력이 있어야지. 그런 게 없잖아.

여자2    다 각자 성향이 있으니까...

여자1    얘한테 어제 새벽에 연락이 왔다?

여자2    진짜?

여자1    어. 술을 많이 먹었더만. 목소리 들으면 알잖아. 얘가 뭐라 그랬냐면... (사이) 요즘 내 생각이 많이 난대는 거야. 그러면서 보고 싶다고...

여자   그래서. 보기로 했어?

여자1    지가 지금 서울인데, 새벽 첫차로 KTX 타고 부산으로 오겠대. 나보러. 근데 나는 거따대고 술깨고 다시 얘기하자, 그러고 끊었어. (웃음) 그리곤 아직까지 연락이 없네? 대박이지?


여자1이 자기 핸드폰 액정을 켠다.

액정의 시간은 오후 4시 정각이다.


여자1    내가 먼저 하는 건 쫌 그렇지?

여자2    그치. 쫌 그렇지.


여자1은 커피 한 모금 마시더니,


여자1    왜?


여자2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여자1을 본다.


여자2    (웃으며) 뭘 왜야. 진짜 술 취해서 전화한 걸 수도 있잖아.


여자1은 두 다리를 쭉 뻗으며 의자에 완전히 몸을 기댄다.


여자1    그렇네... 그러면 쫌 그렇겠네.

여자2    쫌이 아니라 많이 그렇지.


여자2가 커피를 마시려고 테이블 위의 머그잔으로 손을 뻗는다.

여자1은 다시 핸드폰 액정을 켜고 화면을 본다.

액정의 시간이 마침 그 때 4시 정각에서 4시 1분으로 넘어간다.


여자1    XXX.


여자1이 욕을 내뱉는 순간 여자2는 웃음이 터져서 마시던 커피를 흘린다.

여자2는 터진 웃음을 참으려 애쓰며, 냅킨으로 테이블 주변과 자기 옷에 튄 커피 자국을 수습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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