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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herazade Dec 14. 2020

'사랑하는 것'을 만드는 일이 왜 두려워졌을까?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신경전의 시작은 '바람소리'였다.

몽골을 제 집 드나들듯 드나들며 늘 몽골 유목민에 대한 다큐를 만들어 유럽에 팔고 싶다고 말하던 S피디였다. 그와 함께 하는 한 프로그램에서 그는 많은 것을 작가인 내 의견대로 따랐지만 어찌나 세게 몰아치는지 거친 잡음처럼 귓가를 괴롭히던 바람소리만은 절대 빼고 싶지 않다고 버텼다.

멀리 몽골의 북서부, 러시아와 국경이 맞닿아있는 겨울의 알타이. 넓게 펼쳐진 사막과 바위, 야생동물, 그리고 유목민. 그 외에는 살아있는 것이 없는 이 곳에서의 정체성은 바로 그 바람소리라고 했다.


그와 많은 프로그램을 하면서 나는 화면 속에서만 수없이 몽골을 만났다. 어쩔 땐 여름 아름다운 홉스골 호수이기도 했고 어떨 땐 회색 빛깔 도시, 울란바트로였다가 최근엔 척박하다는 표현만으로는 그 황량함을 설명할 수 없는 알타이였다.


피디이긴 하지만 표현력이 부족한 그는 몽골 초원에 대한 자신의 무조건적인 이끌림을  설명하지 못해  ' 나는 아무래도 전생에 유목민이었던  같아' 라고 이야기하곤 했지만 가끔 같이 맥주라도 같이 마실 때면 아무 걸리는 것 없이 평원을 불어오는 거친 바람, 강인하고 투박한 유목민들, 우연히 마주친 야생 늑대, 게르안 양고기 냄새 같은 것들을 나에게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화면으로 만난 알타이와 몽골은 마치 세피아톤의 밋밋한 풍경사진과도 같아서 나는 그가 그처럼 몰입하는 이유를, 떠나온지 몇 달이면 다시 그곳을 그리워하는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그런데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읽고 나니  밋밋한 풍경사진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색깔이 덧입혀지는 것과 같이 그간 내가 화면 안에서만 보아왔던 알타이의 풍경들이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참 독특한 책이었다. 저자의 말대로 여행기라기엔 너무 모자라거나 넘쳤는데 묘하게 빨려들어갔다. 아름다운 책이었다. 3주간 독일 사람들과 함께 멀리 알타이의 한 유목민 사회에 머물렀던 이야기는 여러가지로 내 마음 속 뭔가를 건드렸다.



길이나 지도 낯선나라, 인상 깊고 아름다운 풍광, 새로운 문물 혹은 새로운 자신,
두근거림이나 자유 혹은 모험이나 떠남 대게는 돈을 지불함으로써 현대인이얻게
되는 어떤 종의 비일상적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단지 지극히 개인적이고 정적인 꿈, 고통의 또 다른 이름으로서의 꿈, 혹은 정체불명의 그리움,
슬픔과 체염으로 가득찬 발자국 혹은 그런 감정의 순간에 우리를 사로잡는
은밀하고도 슬픈 몽환  

그가 말한 여행은 정의 자체만으로도 뭔가 신비롭고 또 슬펐는데

거기에 머물며 그가 느낀 '절대적 고독'에 과한 부분을 읽다가는 정말로 그 알타이로 떠나고 싶어지기도 했다.


이 책에는 여행에 그와 동행했던 오스트리아 여인 '마리아'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마리아는 늘 유목민 남자와 결혼해 알타이에 정착하는 것이 꿈일만큼 이곳을 사랑하는 여인이다. 가난한 학생이지만 1년간 돈을 모아 3주간 알타이에서 보내는 것이 그의 꿈이자 낙, 1년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그녀는 처음 알타이에서 돌아오고 난 뒤에는 다시 돌아가고 싶어 병이 날 지경이었지만 두번째 해에는 좀 달랐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생각만으로, 그리고 내가 그것을 방문할 기회가 남아있다는 기대만으로도 나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내 마음은 날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야

이 부분을 읽는데 마음이 좀 울컥했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사랑하는 것들을 놓쳐서, 그리고 가지지 못해서 너무 힘들었다. 그것이 사람이라면 같은 세상에 그가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어떤 경험이라면 다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 마리아 처럼 그것이 어떤 공간이라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 좋은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 요즘 그것이 무엇이든 '사랑하는 것'을 만드는 일이 두려워져 오랫동안 많은 것들에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


뭔가에 매혹당하는 것은 아름답고도 강렬하지만 또 거의 반드시 상실이 예정되어있기 때문에 슬픈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어떤 것에 , 어떤 사람에 , 어떤 일에 매혹당하지 않기 위해 늘 거리를 두고, 그 거리로 인해 스스로 힘들어하는 내가 놓은 덫에 내가 걸려 살아가는 그런 모양새였는지도 모르겠다고,,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인 저자는 그 강렬한 경험이후 다시 두번 정도 알타이를 찾아갔지만 그 어느 순간에도 처음과 같은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첫 여행을 다녀온 후 뭐에 홀린듯 써내려간 이 원고가 출판하지 않을 요량으로 다듬어지지 않고 책상 서랍속에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 글은 오롯이 그때만의 것이 될 수 있었다고도 했다.

잃는 것이 두렵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안전하게 매혹당하고 조심스럽게 사랑하는 방법이란 없다.
이제는 매혹당하는 일에, 사랑하는 것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도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책을 덮자, 가슴속에서 황량한 알타이의 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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