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장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 / 편혜영, 김애란, 손보미, 이장욱, 황정은, 정지돈, 강화길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문학동네에서 주관하는 젊은작가상은 2010년부터 시작된 상이다. 벌써 12년이 되어가는 상으로 젊은작가상이란 이름에 걸맞게 등단 십 년 이내의 작가들만이 시상대에 오를 수 있다. 이번에 읽은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의 저자 이름을 보면 한국문학을 읽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들을 모아놓은 것만 같다. 이제는 원숙한 중견 작가라고 불리는 편혜영, 김애란, 손보미, 이장욱, 그리고 젊은 작가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황정은, 정지돈, 강화길까지. 이처럼 젊은작가상은 그 당시의 많은 "젊은 작가"들을 문단에 알렸다. 1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자인 김중혁, SF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SF 문학을 순문학 문단 내로 본격적으로 끌고 들어온 배명훈, 특이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이 깃든 문장과 문체를 가진 김사과, 그 외에도 정용준, 박솔뫼, 조해진, 최은영, 김금희, 백수린, 장강명, 임현, 박상영 등등......(작가 순서는 수상 연도에 따라서 나열했다.) 이렇듯 젊은작가상은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알리며 한국 문학의 트렌드를 이끌어왔다. 그중에서도 핵심이 될 만한 일곱 편의 수상작을 모아놓은 책이 바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이다.
일곱 편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 손보미의 <폭우>, 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 황정은의 <상류엔 맹금류>,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 그리고 강화길의 <호수-다른 사람>. 일곱 편 모두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탁월하다고 생각했던 작품을 꼽으라면 <물속 골리앗>과 <폭우>를 꼽겠다.
<물속 골리앗>의 장점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뻔뻔하고도 기묘하게 현실 속에 녹여내는 실력과 역시 김애란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문장에 있다. 이 소설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어느 순간 판타지와 상상 속으로 훌쩍 넘어간다.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어서 읽는 내내 지구 어딘가에서는 실제로 4층짜리 아파트가 물에 잠겨서 문짝을 뜯어 뗏목처럼 타고 흙탕물 위를 떠다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와중에 주인공과 어머니의 관계에 대한 묘사, 그리고 물이라는 소재로 만들어내는 글의 분위기도 놓치지 않았다. 그런 장점들을 제외하더라도 나는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단 한 문장 때문에 이 소설을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어둠 한가운데서 알전구를 씹어 먹는 기분이었다." 이 문장 하나가 나를 잡고 놔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의 감정을 오롯이 감각하며 내가 그 인물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일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물속 골리앗>은 내게 어둠 한가운데서 알전구를 씹어먹는 기분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었고 그것만으로도 이 단편은 내 최애 단편 목록에 올라가게 되었다.
<폭우>는 손보미의 최대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 소설이다. 그것은 바로 분위기다. 레이먼드 카버나 앨리스 먼로 등의 작품을 읽어 본 독자라면 그 분위기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석연치 않고 답답한, 동시에 찝찝한 무언가가 온몸을 감싸는 느낌, 그것이 현실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그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들. 최대한 말로 표현하고 싶지만 사실 직접 읽어보는 것이 제일 빠르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한 발 떨어져서 볼 수밖에 없는, 그 안에 직접 발을 담그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기에 억지로 유리시킨 현실을 목격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폭우>는 두 부부의 이야기를, 그중에서도 소통의 부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에 폭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멈춘 자동차 안에서 몇 년이나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에 대해 그제야 말을 꺼내는 부부,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지워버릴 것처럼 쏟아지는 빗소리와 천둥소리. 손보미의 소설이 보여주는 분위기는 적어도 한국 문학 내에서는 독보적이다. 혹자는 그냥 카버를 읽는 게 낫다고 말하지만 1900년대 중반의 배경을 가진 카버의 소설을 한국 독자가 읽는다면 그것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물론 카버의 소설과 비슷한 분위기를 <폭우>가 풍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은 한국의 이야기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이렇게 현대적이고 사실주의적인 분위기를 독자가 답답하고 찝찝할 만큼 풍겨내는 작가를 나는 손보미밖에 보지 못했다. <폭우>는 충분히 10주년 수상작품집에 실릴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물속 골리앗>과 <폭우> 외의 작품도 전부 좋았다. 10년간의 수상작 중에 고르고 골라 실은 작품들이니 안 좋은 작품이 실리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 줄이고 마지막으로 지금의 젊은작가상에 대한 간단한 의견을 남기고 싶다. 젊은작가상이 한국 문학을 이끌어 갈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널리 알려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젊은작가상 수상작의 면면이 단조로워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2010년대 후반부터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적인 작품들이 수상 목록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그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갈수록 과해지더니 2020, 2021년에 이르러서는 수상작 거의 전부가 페미니즘과 퀴어 문학의 성격을 띠고 있다. 물론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문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수상작들이 모두 같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양성이 없는 생태계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젊은 작가들이 쓰는 문학의 목적을 PC에 국한시키는 것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다양한 주제, 서사, 미학을 가진 작품들을 만나게 될 2022년 젊은작가상을 기다리며 글을 마친다.
소설 속 한 문장
어둠 한가운데서 알전구를 씹어 먹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