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인간 전략가이 몫

어느 광고인의 고백 EP.02

by 왕태일

CHAPTER 1. 속도가 바뀐 시대,

광고인은 무엇을 붙잡는가

광고인의 독백 EP.02


AI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전략의 본질


광고 일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꺼낸다. “요즘은 AI가 다 해주잖아요. 광고인도, 전략가도, 기획자도 곧 사라지는 거 아닌가요?” 처음 이 질문을 들었을 때는 웃어넘겼지만,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불안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없어질까? 이런 기술의 시대에 인간 전략가의 역할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나도 그 질문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한동안은 나조차도 가끔 ‘AI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데, 정말 모든 게 바뀌어버리는 걸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솔직히 두려웠던 감정이 또렷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프로젝트들을 오가며 더 많은 브랜드와 사람을 마주할수록, 내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정반대의 느낌이 조금씩 자라났다. 기술이 아무리 빨라져도, 인간 전략가가 해야 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감각이었다. 오히려 기술이 너무 빨라져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AI는 손을 움직이고, 정보를 정리하고, 이미지를 합성할 수 있다. 하지만 관찰의 깊이, 해석의 숲, 그리고 선택의 책임까지 대신할 수는 없었다. 결국 전략이라는 것은 ‘의미를 구축하는 일’이고, 의미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사람의 감각을 대체할 순 없었다.

AI가 정리해주는 문장들은 아름답고 깔끔하다. 하지만 문장이 아름답다고 해서 전략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문장 뒤에 깔려 있는 질문, 관찰, 해석, 기준이 빠져 있다면 그것은 그저 잘 쓴 글일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데이터를 가지고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과 분위기, 정서와 기류에 의해 움직인다. 브랜드라는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전략을 만든다는 건 기계가 제공한 자료를 조합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이 움직이는 방향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해석하는 일이다. 이 해석의 과정에서 기술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사람의 감각을 대체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는.


나는 일하면서 수없이 이런 장면을 보았다. 숫자는 좋아 보이는데 왜 브랜드의 분위기는 점점 침체되는지, 캠페인은 성공했는데 왜 소비자의 마음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지, 외형은 커졌는데 왜 브랜드의 얼굴은 점점 무표정해지는지. 그런 질문들은 데이터를 분석한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답은 사람의 말투, 회의의 공기, 고객의 작은 표정 변화, 브랜드 언어의 결에서 나온다. 그 미세한 신호들을 읽어내는 능력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경험과 감정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전략은 더 이상 ‘정교한 계산’이 아니라 ‘정확한 감각’에 가깝다.


AI 시대에도 인간 전략가가 필요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전략은 누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중요한 것을 알아내느냐’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모든 것을 보여주지만, 무엇이 중요한지는 말해주지 못한다. 결정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AI와 대화를 하거나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까지 수 많은 선택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브랜드의 방향을 선택하는 일, 어떤 감정을 살릴지 결정하는 일, 어떤 말을 버리고 어떤 말을 남길지 정하는 일은 결국 인간의 세계관에서 나온다. 나는 그 세계관을 사람의 ‘기준’이라고 부른다. 기준이 확실한 전략가는 변하지 않는다. 기술이 어떻게 변하든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전략을 만든다는 건 의미를 만드는 일

요즘 실무자들이 어려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보는 넘치는데, 기준은 없다. 도구는 많은데, 방향은 없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운 것이다. AI가 빠르게 작업을 처리해줄수록 오히려 사람에게는 더 깊은 질문이 필요해진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소비자의 반응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가. 브랜드 언어의 이 작은 흔들림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기술은 이런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 전략가는 이 질문을 끌고 다닌다. 때로는 며칠 동안, 때로는 몇 달 동안 마음속에서 굴리고 굴려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결국 전략을 만든다는 건 의미를 만드는 일이다.


전략가가 AI 시대에 더욱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선택의 책임 때문이다. AI는 수백 개의 옵션을 줄 수 있지만, 그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책임은 인간에게 남는다. 전략이란 결국 선택의 기술이다. 선택의 순간에는 버리는 일이 반드시 따라온다. 포기하지 않으면 선택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략가는 선택보다 포기에서 힘을 발휘한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명확하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선택지가 많아진 시대일수록 포기의 기준이 더 명확해야 한다. AI는 이 기준을 대신 만들어줄 수 없다.


나는 이 시대의 전략가는 프로그래머처럼 많은 기능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시인처럼 한 장면을 깊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의 장면을 읽고, 사람의 감정의 흐름을 듣고, 조직의 공기 속에서 작은 흔들림을 감지하는 능력. 기술은 장면을 저장하고 분석할 수 있지만, 그 장면이 말하고 있는 감정의 무게는 사람만이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전략은 지식이 아니라 감각이며, 계산이 아니라 판단이며, 정보가 아니라 세계관이다.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전략의 본질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기술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오고, 경험은 시간이 지나야만 쌓인다. 전략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아니라, 현재를 정확하게 읽는 능력이다. 기술이 빨라질수록 현재를 읽는 감각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사랑하고, 계속 이 길을 걷고 있다. 기술이 아무리 앞서도 사람의 마음은 느리고, 그 느린 마음을 따라가고 해석하는 일은 인간 전략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TIP이라면, 대화를 많이 나누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쉽고, 때론 가장 따뜻한 태도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아마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AI는 더 빠르게 발전하고, 주변에서는 기술의 시대에 전략가가 무슨 가치가 있냐는 말들을 쉽게 던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우리가 시대에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인간의 감각을 다시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사라지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방식이고, 남아 있는 것은 태도다. 결국 브랜드는 기술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 마음을 읽는 힘은 기술이 아니라 당신에게 있다.


어느 광고인의 독백,


브랜드 경험을 만듭니다.

브랜드 독립꾼 | 왕태일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