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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Aug 16. 2023

Prologue

글의 첫 문장도, 현관을 나서는 첫걸음도. 언제나 처음이 가장 떨린다

아이슬란드. 그곳은 대숲사진가에게는 세상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2022년의 어느 하루. 원숙해져 가던 늦가을 날씨였고 아마도 11월의 어느 하루로 기억한다. 대숲사진가가 아니라 본체 조수홍은 여느 때와 같이 서울 성수동에서 평범한 하루의 중간에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던 자리였다.


"끊었어요. 비행기 끊어버렸다고요."


무려 7~8년가량을 기다렸던 여정이었기에 호들갑을 떨법한 일이었는데, 비교적 이 말을 내뱉는 나의 말투는 무겁고 둔탁한 숨소리에 이어 툭 내던져지듯 회사 동료들 앞에 흘러나왔다.


"아니, 그 여행 간다는 이야기 정말이었어요?"


그렇다. 나에게도 힘겹고도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문제였지만, 그만큼 이들에게도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었을 만큼 거대하고도 어찌 보면 비현실적이라고도 비칠 수 있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렇게 가장 머릿속 간절함이 희미해졌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가장 마음의 준비가 취약했던 시기에 대숲사진가에게 세상의 끝이었던 아이슬란드로의 여정길이 기어이 열리고 말았다.




2014년 11월 25일 자정 즈음


교환학생 시절의 어느 초겨울 아이슬란드였다. 친구들과 나는 레이캬비크의 숙소에서 한밤 중에 빠져나와, 레이캬비크에서 서북쪽 보르가네스 인근 80km 지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우리는 여정의 마지막까지 오로라를 보지 못하고 있었고, 마지막 날 밤까지 위성사진과 오로라 예보를 보며 포기하지 않고 있던 우리는 마지막 날 밤에 그 불확실성의 가능성에 모든 걸 걸고 그 순간을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쏟아지는 별들을 달리고, 해저 터널도 지나서 어느 곳인지도 모를 한 벌판에 차를 세운 우리를 반긴 것은 밤하늘을 또렷하고 분명하게 수놓고 있던 청록빛 오로라였다. 나의 인생에 가장 첫 번째로 마주했던 오로라였다.


나의 가장 첫 번째 오로라는 이랬다. 불완전했지만 가장 또렷하게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다만 언제나 첫 번째 조우는 서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 순간의 나는 사진도, 카메라도 그 어떤 것에도 능숙하지 못했다. 결국 내게 남은 사진은 친구의 카메라에 찍힌, 그것도 삼각대 없이 찍어서 잔뜩 흔들리고 말았던 이 사진이 전부였다. 가장 중요하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의 순간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생각은 그 여행이 끝나버리고 당시 머물던 바르셀로나에 돌아와서까지도 내내 나를 따라다녔고, 괴롭혔다.


나중에 겨우겨우 살려내었던 첫 아이슬란드에서 찍었던 사진들.


2022년 12월 17일 밤 9시, 인천국제공항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까지 가는 핀에어 항공편, 맞으시죠?"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승무원의 인사말을 들으며 여권과 항공권을 건네받고, 느릿한 발걸음을 떼며 보안검색대로 향했다. 첫 순간으로부터 지금 이렇게 다시 인천국제공항에서 레이캬비크를 겨냥하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카메라를 잡는 나의 목표는 언제나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다시 담아내는 나의 마지막 사진, 끝사진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지난 8년의 시간 동안 나는 그 하나의 목표만을 쫓았고, 이미 그 과정에서 여러 번의 불발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의 내가 언제나 같을 수는 없었기에 솔직하게 털어놓는 2022년의 대숲사진가는, 많은 부분에서 무뎌져 있었다. 사진을 위해 언제나 즐겁게 뛸 수는 없었고,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던 투지도 많이 흐려졌다. '조금만 더 이른 시간에 이 기회가 닿았다면 이 여정은 많은 부분이 다를 수 있었을까. 아니 이 여정에 임하는 나 자신이 달랐을까'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의 긴 기다림과 간절함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끝은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 번의 크나큰 대단원에 도달해야만, 지금까지의 대숲사진가는 한번 소멸되어 버리고, 그 잿더미 속에서 다시 태어나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터였다. 그 의미를 곱씹던 대숲사진가는 다시 한번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아이슬란드를 마주할 마음의 준비를 다시금 다잡는다.


그렇게 2022년의 12월 17일 밤 11시,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나는 '마지막'을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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