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채워나갈까 이 순백의 도화지
새로운 그림을 채워나갈 순백의 차가운 도화지
경유지까지 오던 긴 비행 동안 잠이 다 깬 것 같았지만 몸은 여전히 뻣뻣하고 경직된 상태로 헬싱키 공항에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아주 이른 아침이었다. 한국이었다면 이쯤 일어나서 수원에서 성수동으로 떠날 준비를 했을 것만 같은 시간이었을 테다. 인천에서 헬싱키까지는 금방 날아온 것 같았는데, 헬싱키에서 레이캬비크는 경유시간까지 포함하여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진다는 생각뿐이었다. 문득 수화물로 부치지 않고 직접 들고 있던 카메라 삼각대가 유독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헬싱키 공항에서 경유하는 시간 동안 아침을 먹거나, 유심을 미리 구매하여 통신 개설을 대비를 한다던가 하는 등의 계획이 잠시 머리를 스쳐갔지만 역시 첫끼는 정크푸드를 먹더라도 아이슬란드에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었으며, 또 막상 핀란드 통신사에서 파는 유심이 아이슬란드에서도 터질지는 장담하지 어려웠다. 결국 그렇게 몇 시간의 붕 뜨는 시간이 생기고 말았다. '그래 너무 급하게 가려하지 말고 순리대로 가자.'라고 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는 게 지금은 필요했다. 지금 이 순간 무얼 하겠다며 허둥대던 느긋하게 앉아 있던 결국 아이슬란드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 와 있었다.
우습게도 2014년의 첫 아이슬란드를 보던 때와 그로부터 약 8년의 시간이 지난 나를 각각 비교했을 때, 내 설렘의 감정은 너무나도 무뎌진 상태였다.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꿈이자 목표가 실현되어 가고 있는 순간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최근 러시아와 관련된 국제 정세와 맞물려 이례적으로 북극해 상공을 날아오고, 이런 관련 이벤트를 깨알 같이 잘 챙기는 핀에어의 <북극해 상공 통과 인증서>를 건네주는 걸 받으면서도 여전히 내 마음의 감도는 무뎠다. 설렘과 모험심은 아직 올라오지 않는 중이었다. 그렇게 헬싱키 공항 한가운데에 멍하니 앉아서 공항을 구경했다. 슬슬 이어지는 걱정들을 곱씹으면서 말이다 '아이슬란드에 들어가서도 흥과 모험심이 올라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이 조차도 겨울 날씨에 얼어버린 걸까.'
2022년 12월 18일 아침 7시, 케플라비크 국제공항
다시 헬싱키를 떠났던 비행기가 짧은 선잠을 자고 있던 시간 정도가 걸려 착륙하면서 "우리는 아이슬란드 케플라비크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귀에 흘러들어왔다. 마침내 꿈에서도 잊지 않고 있던 그 장소의 가장 첫 거점에 도착한 것이었다. 아이슬란드의 모든 입출국자들이 거쳐가는 대문인 케플라비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창밖을 보니 마치 한밤중처럼 어두컴컴했다. 물론 아직 아침 7시에 불과했지만, 이 어둠은 쉽사리 걷히지 않을 것이며 금방 다시 어렵사리 만난 빛을 집어삼킬 것이었다. 겨울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아이슬란드의 극야였다. 본격 이제부터 시곗바늘이 달려가는 매 순간순간에 현명해져야 하고 아쉬운 순간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해가 떠 있는 시간의 매 순간순간이 귀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이슬란드 여행에 있어 입국 후 가장 첫 번째로 할 일이 무엇이냐고 이야기하면 그것은 아마 차를 빌리는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도는 링로드 여행은 공식적으로 1,332KM, 분명히 인간의 다리에만 의지해 다 걸었다가는 아마 마른 볏짚처럼 금방이라도 풀썩하고 쓰러질 터였다. 이전 여행들로부터 얻은 다가올 수 있는 위험에 대처하는 지혜, 그리고 충분히 알아보고 준비를 해온 이번 여정은 어찌 보면 무사히 마무리만 해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터였다. 아이슬란드의 겨울에 걸맞은 4륜 구동과 윈터타이어와 연비가 좋고 튼튼한 차를 골라두었다. 물론 이렇게까지 준비를 해두어도 언제든 그 이상의 거대한 위험은 존재할 수 있었다.
"안녕, 차 예약한 거 수령하러 왔구나?"
꽤나 날 오래 기다리게 했던 렌터카 업체의 픽업을 받은 후 도착한 공항 인근의 렌터카 사무실 리셉션 직원이 나를 반겼다. 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상호작용을 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응 맞아. 이게 내가 예약한 차량이고, 이건 내 국제 면허증. 그런데 말인데, 지금 아이슬란드 도로 사정은..."
"아. 굉장히 좋지 않아. 무엇을 보던 아마 놀라게 될 거야. 지금 도로마다 눈도 굉장히 많이 쌓여 있고 태풍이 온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한동안 며칠은 조심해야 할 거야."
이미 이런 질문을 나 말고도 수십 명에게는 더 들었다는 듯 렌터카 직원이 내 말을 빠르게 잘랐다. 그리고 그 순간 공교롭게도 해당 업체의 렌터카를 빌렸다는 다른 한국인 일행으로부터 온 전화가 해당 리셉션으로부터 울리고 있었다. 때 마침 같은 한국인이 있으니 나보고 전화로 상황 설명 좀 통역해 달라는 직원의 부탁에 내가 전화를 받았는데, 이들은 한국인 일행 4명으로 서부에서 레이캬비크로 돌아오는 길에 눈길에 차가 빠져 고립이 되었단다. 이들의 이야기를 중간에서 직원들에게 전해주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종의 주인공 병에 취해서 생각 중이었다. 나는 철저히 준비했으니 절대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마침내 첫 시동을 걸었고, 내게는 정말로 운전에서 중요한 음악도 연결했다. 꽤나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성격 덕에 이 여행의 가장 첫 번째로 재생할 노래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윤하 팬인 김콩과 밥 먹던 자리에서 '살별'이라는 노래를 여행 첫 곡으로 틀겠다고 약속 아닌 약속을 했던 일이 그 순간 기억났다.
c/2022YH
발견으로 태어날 테니
이렇게만 적을래
깨지고 부딪혀도
나 가는 길에는 차질 없어
가끔 외롭긴 해도
저 멀리 푸른 점에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끝없이 여길 동경하겠지
살별의 그림자가
돌덩이에 지나지 않더라도
타오를 거야, 궤도에 존재하는 이유
이 비행의 끝에는
분명 너의 소원이 될 거라고
작은 목소리로 우리에 축복을 빌어볼게
아마도 완벽한 여행 첫 곡임에 틀림없다 생각해 보았다. 노래 가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귀에 쏙쏙 날아들어 박히는 것을 느끼며 차의 핸들을 잡았다. 바로 그 순간, 실감이 아직도 나지 않는다던 그 모든 감정들이 일시에 흩어져 날아가버려 저 앞에 바람에 흩날리는 눈과 함께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도로 위에 이미 수십 센티미터는 쌓인 눈들로 뒤덮여 있던 아이슬란드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습 보다도 훨씬 더 순백의 모습이었다. 나의 새로운 이야기들로 덮어갈 가장 순백의 완벽한 도화지, 2022년의 새롭게 다시 서 있는 아이슬란드였다.
처음으로 아이슬란드에 방문했을 때는 친구의 운전이 아니면 스스로 다닐 수 없었고, 이 여행의 가장 큰 원동력이자 이유가 된 사진도 미숙했으며, 여행지에서의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현명함도 부족했다. 그때의 나와 비교하여 조금은 더 무뎌지고 감정선이 차분해졌지만 훨씬 더 굳은 사람이 되어 기어이 이곳에 다시 당도했다는 사실에 기쁘고도 미묘한 감정을 곱씹어 보았다.
그때 즈음, 극야를 어렵사리 헤쳐 나온 해가 마침내 하늘 위로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푸른빛 위에 뜨겁게 익어가는 듯한 짧지만 강렬한 일광이 내리깔리고 있었으며, 도로 주변으로 치워둔 눈들은 그 깊이와 밀도를 알 수 없을 만큼 쌓여 있었다. 케플라비크 근방에 원래는 Fagradalsfjall라는 화산이 있어 시간이 나면 그곳을 들리며 레이캬비크로 들어가고 싶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화산으로 가는 길은 폭설로 인해 통제 중이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레이캬비크로 들어가는 선택지뿐이었다. 지도에 레이캬비크를 찍었다.
2022년 12월 18일 오후, 레이캬비크
다소 거창한 호칭인 첫 번째 '베이스캠프'는 레이캬비크 시내에서 약 8km쯤 떨어진 동네였다. 아무래도 차가 있는 만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곳을 선점함과 동시에 중심가를 포기하고 숙소를 좀 더 좋은 곳을 고르고 싶다는 나의 욕심이기도 했다. 그랬던 연유로 숙소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하니 지극히 평범한 동네였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레이캬비크와는 아직 만나기 전이었다.
꼬박 하루에 가까운 시간을 비행으로만 소진하고 차량까지 수령하느라 이미 임계점 그 이상을 넘어섰던 나의 체력과 버틸 수 있는 기력은 숙소 열쇠를 따고 들어가자마자 풀리는 듯했다. 아마 그 아파트의 그 집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걸 좋아하고 자주 하는 편인데도 유독 기억에 남는 숙소들을 가끔 만난다. 이 숙소가 바로 그런 집이었다. 호스트의 깔끔한 정리정돈과 넓은 공간을 허전하지 않게 하기 위한 곳곳에 채워 넣은 꾸밈이 인상적이었다.
무사히 거점에 도착했으면 그다음에는 생활을 위한 정비를 할 차례였다. 가지고 온 짐들을 모두 풀러 놓고, 아이슬란드의 살인적 물가에 못 이겨 최대한 마구 욱여넣어서 들고 온 식료품들을 부엌 한쪽에 정리한다. 근처의 식료품점에 가서 장도 얼른 봐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행을 모두 마치고 집에 도착해서도 가장 먼저 짐부터 풀어야만 쉴 수 있는 내 성격이 여행의 첫 꼭지에서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여기까지 왔음에도 완벽하게 아이슬란드에 돌아왔다는 벅차오름까지는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지 한가운데에 있는 '한시적 나의 집' 같은 곳에 푹 눌러앉아 현지인 흉내를 내고 있자니 안정감과 단단해지는 마음을 느꼈다.
그때쯤부터였다. 마음속 깊게 잠들어 있던 수년 전 이곳에서의 내 모습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순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