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이야. 우리의 마지막조차 기억 안 날 만큼.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 4시였다.
2022년 12월 21일 새벽, 비크이뮈르달 숙소 침대 속
평소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에 눈을 떴지만, 회사로 출발하기 위한 기상하던 때보다는 정신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맑았다. 일종의 각성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한국에서 똑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을 하라고 했으면 절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전날의 많은 일들이 동시에 스쳐가기 시작했지만 가장 먼저, 딱 한 가지 후회로 남은 기억이 먼저 튀어나왔다. 전날 저녁, 해가 넘어간 지 한참이나 지나 어둑해진 비크의 한 시골 마을을 헤매다 간신히 숙소를 찾았던 나였다. 더 이상의 사진은커녕, 이대로 가다간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도로 위에 그대로 조난당할 판이라고 생각할 때쯤 마침내 에어비앤비에서 본 사진과 똑같은 숙소를 시야 범위의 저 먼 곳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어릴 적에 유럽의 동화작가들이 썼던 동화책을 많이 보며 자랐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중 하나로 스웨덴의 유명한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썼던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정말 그 책에 나오는 스웨덴의 시골 마을 아이들이 살 것만 같은 그런 농장 집이었다. 딱 10초가량 그런 감상에 젖어 있다가 이내 다시 현실의 지쳐있던 나로 돌아와 숙소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좋은 저녁이야! 너의 방은 2층에 있어. 혹시 비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해줄까?"
호스트는 푸근한 인상의 유럽 시골 마을 아주머니 느낌이라는 인상이었는데, 여유가 느껴지는 인상으로부터 오는 친절함이 느껴졌다. 유럽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서이다. 물론 이 나라의 이런 배경에서 매일매일을 살다 보면 그 누구라도 이렇게 되지 않을까.
집주인과는 다르게 나는 이미 강풍 속에 하루 종일 노출 되어 있었고 장거리 운전을 쉴 새 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호스트가 내게 건네던 말들의 대부분이 이미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러던 도중 호스트가 꽤나 재밌는 제안을 하나 했다.
"이따 저녁 8시쯤에, 지금 숙소에 있는 투숙객들 다 같이 우리 농장의 말들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을 하러 가볼까 해. 어때 너도 하고 싶니?"
오호라 이건 꽤나 솔깃한 제안이었다. 내 피로감과 내일 아침 새벽에 얼른 다시 요쿨살론과 회픈으로 떠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짓눌린 상태에서도 충분히 고민해 볼 만한 일이었다.
"일단 샤워를 하고 저녁을 좀 먹어야겠어. 8시까지 내가 준비가 되어 있을지는 모르겠어."
"그럼 내가 8시 정각에 너의 방 앞에 와서 문을 두드릴게. 갈 수 있으면 너도 언제든 함께 하렴."
2022년 12월 21일 새벽, 비크이뮈르달 숙소 정문
이런 대화를 분명히 전날 밤에 호스트와 나눴었던 기억이 있지만, 나는 호스트가 저녁 8시 정각에 내 문을 두드린 것을 들은 기억이 없었다. 아마 대포를 쏘아댔어도 듣지 못했을 만큼 내가 빠르고 깊게 잠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내는 2주는 어디에서 얼마큼 머물러도 그 장소에는 분명 미련이라는 깊은 발자국이 남게 될 것을 알았기에, 새벽에 눈을 뜬 나는 이내 후회라는 감정을 갈무리하며 빠르게 짐을 다시 싸고 1층 현관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차로 가기 위해 현관문을 서둘러 열던 나는 엄청난 광경을 마주하며 그 자리에서 만큼은 몇 초 동안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던 별들의 향연이었다. 전날 밤에는 너무나 피곤했던 나머지 오로라를 찾으러 나가볼 생각도 하지 못했었고, 아직까지 내가 반드시 만나야만 했던 그 밤하늘의 초록빛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는 조여 오는 감정이 존재했지만, 오로라가 없어도 이 날 새벽 농장 숙소의 정문을 나서던 내 앞에 나타난 이 모습은 너무나도 완벽했다.
이 순간 비크의 시계는 새벽 5시를 향해 가던 시각이었고 요쿨살론까지는 약 3시간 30분의 운전길이었다. 그리고 요쿨살론까지 도착해야만 하는 시간은 8시 반으로 빠듯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차 바로 앞에 삼각대를 펼치고 카메라를 장착했다. 이건 반드시 담아야만 하는 기록. 담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어마어마한 후회로 남게 되었을 그런 장면이었다. 여행 전에 삼양 14mm라는 초광각 단렌즈를 급하게 영입해서 들고 온 것을 굉장히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광각 렌즈는 100장의 A급 사진을 담지 못해도 단 한 장의 S급 사진을 담아낼 수 있다면, 난 그 렌즈는 충분히 값어치와 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 한 장의 순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담기 위해 내 손을 베어내는 듯한 매서운 바람으로부터 집중을 유지하려 애쓰며 구도를 향해 정조준한다. 다급한 시간 속에 잠시 사용했던 이 기록의 시간은 아마도 이 여행에서 가장 값진 시간 사용 중 하나였을 것이다.
새벽별들에게 다시 위험하고도 긴 여정을 출발하는 나에게 축복을 내려주길 기도하며 시동을 걸고 아이슬란드의 1번 국도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또 한 번의 고해성사를 할 일이 생겼는데, 사실 이 시간대 비크에서 요쿨살론까지 통과하는 1번 국도 구간이 여전히 통제가 해제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구간을 주파해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여행자들은 절대로 이런 일이 없으시길 바란다)
사건의 진실은 이러했다. 전날 비행기 잔해를 보고 돌아와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남부로 넘어가는 나머지 도로 구간이 통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비크에 급하게 하룻밤을 임시로 보낼 숙소를 예약하고, 나는 본래 이틀 밤을 묵을 예정이었던 회픈의 숙소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해야만 했다.
"안녕, 나 오늘 회픈 숙소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투숙객인데, 아마 도로 통제 때문에 오늘 못 들어갈 거 같아. 숙소에 대한 부분 환불 요청은 하지 않을 테니, 혹시 내가 체크인만 내일 해도 괜찮을까?"
"그건 문제없지 그렇게 알고 있을게. 열쇠는 내가 미리 설명한 장소에 그대로 놔둘 테니 언제든 체크인하렴."
"그런데 내일도 회픈에 들어갈 수 있을지를 모르겠네. 혹시 알고 있는 정보 있니?"
"음... 현지인들 소식통에 의하면 내일 새벽부터는 풀릴 예정이라고 하네. 아마 요쿨살론까지 오는 데는 문제없을 거 같아."
이 대화에서 호스트가 마지막으로 했던 저 이야기 한 마디만 철석같이 믿고 나는 비크에서 이른 새벽에 출발해서 아침 8시 반까지 3시간 반 운전길을 달려 요쿨살론으로 가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어쩐지 중간에 오는 과정에 굉장한 강풍에 차가 차선에서 조금씩 밀려난다거나 눈보라가 말도 안 되게 심해서 이따금 눈앞의 시야를 완전히 가린다던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 모든 것을 해치고 기어이 요쿨살론까지의 길을 주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그 말을 몸소 실천한 나였다. 나중에서야 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후 크나큰 반성을 하게 되었다.
2022년 12월 21일 아침, 요쿨살론
결코 웃을 수만은 없던 해프닝을 겪은 후, 어느 순간부터 바람도 잦아들고, 주변 풍경들이 점점 바뀌어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달리고 있던 도로의 왼편으로는 거대한 만년설로 뒤덮인 높은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 남부의 만년설을 품고 있는 스카프타펠 국립공원이었다. 그리고 그 스카프타펠에 도달했다는 것은 요쿨살론에 거의 다다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계속 헤매고 있던 그 자각몽의 근원지.
요쿨살론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내렸을 때는 정확하게 8시 반 언저리였다. 통제된 도로를 무식하게 뚫고 온 것도 놀랄 일이었지만 결국 그 거리의 이동을 제시간에 맞췄다는 것도 다른 의미로 기가 막힌 일이었다. 한국에서 단련된 장거리 통근으로 절대 지각은 하지 않는 나의 근태 덕분이 아니었을까.
겨울 아침 8시 반의 요쿨살론은 아직 해가 뜨기까지 한참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직 주변에 빙하들이 또렷하게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고요한 호수의 물소리와 저 멀리 바닷가의 파도소리가 함께 뒤섞여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틀리지 않게 찾아왔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다만 제 시간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보람은 도착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바로 8시 반 얼음동굴 투어에 신청했던 사람들이 모두 오지 않아, 해당 시간의 투어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었다. 투어 담당자는 오후 1시에 시작하는 투어 팀에 내 이름을 넣어주겠다고 하였고, 그러한 이유로 나는 약 3시간 남짓의 자유시간이 이곳 요쿨살론에서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좋았다. 요쿨살론과 나는 굉장히 오랜만에 만난 사이인데, 오랜 해후를 나누는데 3시간 보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차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요쿨살론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천천히 만끽했다.
빙하를 품고 있는 요쿨살론은 거대한 만년설 봉우리인 스카프타펠이 감싸고 있다. 이 스카프타펠의 만년설로부터 떨어져 나온 유빙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 이 요쿨살론이며, 요쿨살론의 유빙들은 다시 떠내려가 바로 아래로 이어지는 해변가, 다이아몬드 비치로 떠내려간다. 이곳에서는 그래서 만년설의 압도적인 위세, 유빙이 머무는 호숫가의 잔잔함과 침착함, 그리고 마지막 목적지인 바닷가가 보여주는 역동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매력이 감도는 장소이다.
동이 트고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8년 만에 다시 만나는 요쿨살론 앞으로 나는 차에서 내려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나의 신경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요소요소들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깨어날 수 없던 꿈속을 약 8년 동안 헤매던 나는 그때 드디어 눈을 뜰 수 있었다. 안갯속의 흐릿한 모습으로만 남아 있던 기억 속의 모습도 모두 또렷한 현실이었다. 맑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새어 들어오던 적당한 밝기, 그 조도 속에서 아우러지던 빛깔, 그날의 공기와 온도, 느껴지던 습한 기운까지. 이제는 사라진 대도 놓지 않겠다는 듯 깨어난 나의 뇌리 속에 모든 기억들이 재입력되기 시작했다. 호수와 바닷가로 이어지는 모든 길들은 검은색 자갈과 모래였다. 화산 폭발 후 이곳을 뒤덮었던 화강암이 풍파에 갈리고 흩어졌다가 모여들어 만들어낸 길들이었다. 그리고 시리도록 푸른빛의 빙하는 내가 기억하던 그런 청명함과 투명함 그대로였다.
넋을 놓고 호수를 만끽하다가 문득 다이아몬드 비치까지 그대로 길을 따라 성큼성큼 내려가기 시작했다. 삼각대를 함께 등에 둘러멘 채로 가기 시작했는데, 이 여행 출발 전부터 이 다이아몬드 비치에서는 꼭 찍어야만 하겠다고 다짐한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이아몬드 비치에서 꼭 찍고 싶었던 사진은 바로 야경 좀 찍어봤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열광할만한 바닷가에서 찍는 장노출 사진이었다. 이건 아이슬란드를 그리워하던 내내 내가 굉장히 기대하던 사진이었는데, 렌즈에 ND필터를 장착 후, 삼각대에 고정시켜 장노출 셔터를 누르면 파도가 지나간 흔적이 굉장히 부드러운 물안개처럼 남게 되어 빙하와 함께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SNS에서 유명한 작가들 같은 경우는 이 주제로 이 장소에서 웨딩 촬영을 하는 경우도 많이 봤던 터였다.
걸어가는 발 밑에 내려 깔린 검은 모래가 주는 감정이 신비로웠다. 바닷가의 모래가 아닌 숲 속의 흙이 아닐까라는 착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내 주변에 보이는 광경과 냄새, 부딪혀 오는 파도 소리는 이곳이 숲이 아닌 바다라는 것을 증명했다. 모래의 입자는 우리가 일반적인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황색 모래보다 훨씬 더 고운 모래였다. 마치 일부러 퍼다가 갈아 놓은 것 마냥, 자연이 빚어놓은 정교함을 느꼈다.
다만, 반가운 감정과 경이로운 풍경에 취한 나머지 또 한 번의 대형사고가 터질 뻔했는데 삼각대를 설치하고 잠시 파도를 등지고 만년설 쪽을 바라보다가 파도가 내가 있는 곳까지 순간 아주 세차게 다가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파도에 발이 빠질 수 없던 나는 삼각대에 장착된 카메라를 집어 들고 뒤로 돌아 도망치려다가 그만 내 발 뒤에 있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차라리 내가 젖고 까졌으면 까졌지 라는 심정으로 넘어지면서도 삼각대는 위로 번쩍 치켜들면서 넘어진 것이 압권이었다.
쫄딱 젖고 넘어진 무릎이 쓰라렸지만, 그러면서 건져 올린 기록물들은 카메라 리뷰를 확인해 보니 내가 원했던 그 느낌 그대로였다. 파도가 훑고 지나간 그 흔적, 그 시간에 함께 담긴 공간감, 온도, 서늘한 공기까지도 모두 담긴 것만 같은 기록이었다. 나 자신이 만든 산출물에 대해서 언제나 일말의 부족함을 찾곤 했지만 이 사진들만큼은 자랑스럽게 언제 어디든 내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소 비싼(?) 기회비용을 치렀지만 그만큼 놀라운 기록물들을 담아서 다시 차로 돌아온 나는 차에 돌아와 히터를 틀며 젖은 양말과 발을 녹이며, 못내 눈길을 떼기 싫었던 다이아몬드 비치를 계속 바라보며 점심 식사를 했다. 좀 젖고 넘어졌으면 어떤가, 뽀송하고 따듯하고 편한 여행을 생각했다면 모든 카메라 장비들을 짊어지고 이곳까지 올 일도 없었다.
그렇게 긴 시간이었지만 찰나에 불과한 체감의 시간을 보내며 해후를 끝낸 나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차를 요쿨살론 주차장 쪽으로 돌렸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시간이 순연된 빙하 투어가 다시 시작될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해였지만 아직 아이슬란드의 해는 계속해서 낮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고, 그 말은 곧 언제든 이보다 더 놀라운 일도 더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