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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Sep 01. 2024

[ICELAND] 정점 (EP.11)

라가르플요트의 완벽한 그 순간. 나는 여행의 정점임을 직감했다.

처음 본 순간 '이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2022년 12월 23일 이른 오후, 931번 국도 (라가르플요트)


라가르플요트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에이일스타디르에서 계속 1번 국도 방향으로 나가기 직전, 931번 국도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이 길 하나로 온전히 이 거대한 호수 한 바퀴를 돌 수 있었는데, 나중에 하루가 끝날 즈음에 이 날 하루를 돌아보니 차로 운전하고도 다 도는 데에만 한 시간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이 강의 존재는 한국에서 떠나오던 시점부터, 그리고 에이일스타디르에 진입한 이후로도 계속해서 멀찍이서 자각하고 있었다. 오로라를 허탕 쳤던 첫날밤과, 세이디스피요르를 넘어오는 고개에서도 제법 멀지 않은 거리 내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완연한 만남이 계속 아슬하게 빗나가던 차에 마침내 우리는 마주 섰다. 


세이디르피요르와 에이일스타디르 간 넘나드는 고갯길에서 보였던 라가르플요트

931번 도로를 통해 라가르플요트의 동쪽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지난밤 강의 서편 일부만 훑었고, 어두웠던 와중에도 강가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필시 동쪽 길이 강을 직접 보기에는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실상 눈 감고 날린 다트화살과도 같이 어떤 결과에 꽂힐지 몰랐던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는 완벽한 선택이 되었는데 과연 길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강의 물길이 흐르는 모습과 그 강을 일제히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내륙 지형이 눈에 띄었다.


이 931번 도로는 중간에 강을 건너는 다리가 포함되어 있다. 좀 더 안쪽까지 가볼 수 있는 933번 도로와, 강을 도는 코스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가 더 깊숙이 들어가며 인랜드(inland), 즉 하이랜드로 들어가는 910번 도로로도 이어진 지점이 있었지만 당연히 지금 그 길은 통제 상태일 것이 안 봐도 뻔했다.


그 931번 도로가 꺾이며 강을 건너는 다리가 나타날 쯤에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차를 세웠다. 마치 '너 같은 여행자가 한둘이 아니었지'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그 지점에는 차를 세우는 갓길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다리로 진입하기 전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점이었고 그 갓길의 가드레일 너머로 흐르는 강의 물길, 다리, 그리고 그 너머 빽빽하게 우뚝 서서 버티고 있는 인랜드 지형이 보였다.


설명이 복잡했는가? 그럼 이 사진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위의 갓길을 1번 사진의 내리막길로 통과하여, 다리를 건너고 (가운데), 강의 서편으로 향한다 (오른쪽)

흐르는 강, 그리고 그것을 품고 있는 거대한 산줄기, 겨울의 아이슬란드 동부는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차 한 대 지나가지 않고 있던 이곳의 침묵까지. 남부에서 만났던 마지막 오로라 이후로 아마도 가장 완벽한 무대였다고 그 순간 생각했던 것 같다. 바로 그 순간 예상도 아닌 확신을 했다. '오늘 밤 오로라는 반드시 이곳에서 본다.' 그렇게 혼잣말처럼 되뇌며 잠시 풍경을 응시하며 몇 장의 사진을 더 찍다가 다시 차에 올랐다.


요즘은 아이슬란드를 찾는 한국 방문객들이 부쩍 늘었던 탓에 이곳의 여행 정보를 찾는 일이 어렵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링로드에서 동부와 북부를 관련된 정보를 찾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볼 수 있다.


"겨울 동부랑 북부는 볼 거 없어요."


"그냥 남부까지만 보고 다시 돌아와서 서부 보세요."


실제로 그 말을 이제 슬슬 체감되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이 시점부터였는데, 아무리 겨울에는 방문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지만 정말 단 한 명도 없을 줄은 전혀 몰랐다. 해가 저물고 '누가 날 이 순간 급습을 해도 전혀 모르겠는걸'라는 생각도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또 운전하는 도중에 혼잣말이 늘고 있었다. '아니지~ 그쪽으로 가면 안 되지' 등과 같이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고 대답하는 등 웃기지만 제법 쓸쓸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동부를 넘어 더더욱 척박한 북부로 가게 된다면 이런 감정과 주변에 보이는 것들이 또 어떻게 다가올지 무거운 감정으로 다가왔다.


강의 주변에 볼만한 다른 요소들도 대부분 겨울잠에 깊이 빠져있거나, 황량함 그 자체였다. 다리를 건너며 살펴보니 강물도 부분 부분 얼어 있었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 정도의 무시무시한 추위에 강이 전체가 얼어붙어도 이상할 게 없을 텐데 그만큼 강이 흐르는 힘이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힘이라는 말과도 같았다.


또한 강을 건너자마자 보게 된 것은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910번 도로로 이어지는 샛길은 도로 통제 사인이 걸려 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라는 결과였다. 차를 세워놓고 한번 걸어갔다 와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해봤지만, 불확실함에 얼마 남지 않은 해가 떠있는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얼어 있던 강의 일부
지겹도록 보고 있는 도로통제 사인


물론 그 와중에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폭포였던 헨기포스(Hengifoss)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바람에 섞여 들려오는 소리에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던 것으로 보아 폭포도 분명 얼어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어쨌든 갈 길을 정했으니 눈이 덮인 헨기포스로 가는 언덕길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하는 중간중간에 굉장히 미끄럽거나 질척거리는 구간이 보였는데, 아마 이 역시 필시 날이 풀리면 폭포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실개천이 흐르는 곳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실개천은 지금 계단 하나 없는 얼음의 언덕이 되어 날 위협했다. 등 뒤로 점점 강과 멀어지고 있는 아찔한 풍경이 커져가고 있던 상황에 아이젠을 발에 착용하고 있던 것이 굉장히 큰 위안이었다. 쿠팡에서 7천 원에 산 아이젠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게 70만 원어치 이상의 힘을 주고 있는 장비였다.


예상대로 그 물줄기는 등산을 거듭할수록 점점 커져갔다. 폭포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내 키만큼이나 눈이 쌓여버려 허리까지 눈이 오는 구간을 중간에 지나고 나서야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헨기포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데크 이후의 저 눈길은 밟는 순간 허리까지 눈이 빠지는 곳이었다.

거대하기 그지없는 헨기포스도 역시 예상했던 대로 '일시정지' 상태였다. 이렇게 강하게 내리치는 폭포마저 완연한 침묵을 지키게 해주는 아이슬란드의 추위가 이제는 경이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올라와 한층 더 무시무시한 한기가 올라오자, 카메라 배터리마저 방전되기 시작했다. 말로만 들었지만, 내가 직접 겪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엄청난 추위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우리 스스로가 긴 생각을 하며 행동하지 못하게 만든다. 큰 고민을 하지 않고 빠르게 핀만 맞춰가며 기록을 남겼다. 올라올 때는 날씨와 등산의 강도와 뒤덮인 눈과 싸우며 1시간을 올라왔지만, (사실 눈과 결빙이 아니었다면 30분이면 올라갔을 것 같다) 내려올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후다닥 내려와 이내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에 당도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덧 석양이 지고 있었다. 다시 또 하루가 그렇게 가고 있었다. 라가르플요트의 반대편으로 가라앉고 있던 해와 함께.



2022년 12월 23일 저녁, 에이일스타디르


라가르플요트가 겨울잠을 자고 있던 고요한 요람을 다 돌아본 채 에이일스타디르로 다시 돌아온 것은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마을 진입로였기에 평소였다면 위험했겠지만 아무도 없는 도로 위였기 때문에 잠시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웠다. 아무도 없는 눈밭 위를 거닐 수 있다는 것은 위험한 만큼 그 반대의 장점도 존재했다. 오로지 나 혼자 만끽할 수 있고 기록할 수 있다는 그 특별함의 감정. 그 감정의 희열을 마음껏 느끼며 아마도 해 떠 있을 때 이곳에서 찍는 것으로는 마지막이 될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 나는 떠나온 라가르플요트 방면을 한번 더 흘낏 쳐다봐주고는 다시 차에 올라 숙소로 다시 돌아갔다. 돌아본 이유는 명확했다. 아까 낮에 봐두었던 그 호수 동쪽길에서 발견한 갓길을 계속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잠시 숙소에서 여독을 풀고, 밥을 먹고 밤에 다시 나올 준비를 해야 했다.


마을 초입에서 보이는 에이일스타디르의 모습
너무나도 고요하고 평화롭다


숙소로 돌아와 오로라 예보를 확인해 보니 예보마저 나의 편이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즈음 이 주변 일대에는 오로라 강도 레벨도 제법 높았고, 구름도 걷혀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제 슬슬 동이 나고 있는 라면을 끓여 밥을 말아먹는 것으로 저녁 시간의 작은 호사를 누리며 앱을 보고 있던 나는 알 수 없는 희망과 기운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바로 위의 석양 사진을 마지막으로 나의 카메라에서 리뷰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사진은 현재 끝나 있는 상태였고, 카메라 역시 곧 다시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배터리 충전을 한 채로 방에서 머물고 있었다.


큰 일을 앞두고 경건한 자세라도 취하겠다는 각오로 샤워까지 말끔하게 하고 나온 이후 침대에 반쯤 잠든 상태로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바람이 창 밖을 두드리는 소리에 날씨 앱을 체크해 보니 영하 23도였다. 동부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사실과 동시에 북부로 떠나기 하루 전날 밤이라는 분기점이었다. 오늘 밤 제대로 된, 정말 무결점의 완벽한 오로라를 만난다는 계획만 성공한다면 아마도 이 여행의 절정은 오늘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절정에서의 쾌감을 느낀 채로, 일말의 두려움도 함께 스멀스멀 올라오는 북부로의 여정에 들어서야만 내가 좀 더 용기 있고 당당하게 여정길에 오를 것만 같았다.



2022년 12월 23일 저녁, 라가르플요트


무언가 중요한 일에 나서기 직전의 나는 사실 굉장히 예민한 상태에 가깝다는 것을 비교적 최근에 자각했다. 서장훈이 언젠가 방송에서 경기를 앞두고는 신발끈 묶는 순서도 반드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묶는다는 일화를 듣고 정말 징크스 투성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조차도 중요한 일이 있는 날 집에서 나설 때는 반드시 그 가는 길에 별 탈 없이 순탄해야만 했고, 집에서 준비하는 과정 역시 느낌이 매우 좋고 깔끔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징크스보다는 일종의 '흐름'의 중요성이라고 믿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나 역시 궤를 함께 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나에게 굉장히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숙소를 나서자마자 발생했는데, 바로 동부에 들어오면서부터 급격히 추워진 날씨로 인해 차에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이 뜬 것이었다. 숙소에 있던 일부 차들은 배터리도 추위에 방전되어 버려 옆차의 배터리 전류를 옮겨주고 있는 장면을 막 목격 했던 터이기에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 정도는 양반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럼에도 계속 알럿을 울리며 내 눈앞에 깜빡거리는 경고등을 보고 있자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이 성가셨지만 어쨌든 가기로 마음먹은 길을 가야만 했다. 다시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이내 칠흑 같은 어둠이 날 감쌌다. 운전석에서 명확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낮에 보았던 그 라가르플요트 동쪽 길로 진입하는 동안 어렴풋하게 저 멀리 아스라이 초록빛이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아리송한 시야가 내 앞에 계속 보이고 있었다.


'낮에도 사람이 한 명도 없던데, 밤에는 얼마나 무서울까.'

'밖에 영하 23도인데 오늘 밤은 추위 속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타이어 공기압 자꾸 신경 쓰이는데, 내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여는 카센터가 있을까.'

'오늘만큼은 그래도 남부에서 봤던 것 이상으로 괜찮은 오로라를 만나지 않을까' 


수많은 잡생각과 걱정들이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온통 뒤섞여 소용돌이치고 있던 찰나, 내비에 표시되어 있던 남은 거리가 조금씩 줄어들더니 이내 낮에 발견했던 931번 도로의 그 강을 건너는 다리가 내려다 보이는 갓길 지점에 도착했다. 차에 시동을 끄고, 이제 눈이 완벽하게 어둠에 적응하는 그 몇 초 후 드디어 차에 내려서 주변을 확인해 볼 시간. 그리고 차 문을 열자마자 내가 눈앞에서 바로 보게 된 것은-


설렐 수밖에 없던 그 순간

네스호의 괴물이 산다고 전해져 오던 이 라가르플요트, 그리고 그 뒤편의 밤하늘에 펼쳐진 것은 하늘에 물결치고 있던 완벽한 오로라였다. 달빛과 구름 한 점 없던 밤하늘로부터 밝게 솟아오른 오로라는 종과 횡으로 자유롭게 물결쳤고, 반짝거리며 빛나는 초록빛깔이 강물 위로 내리 깔리며 함께 빛났다.


'그래. 약 8년 전 친구들과 봤던 그 순간도 이런 감동이었지' 하는 순간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얼른 삼각대를 차에서 꺼내고, 초광각 렌즈를 카메라에 장착하여 설치했다. 그때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것은 더 깊은 간절함과, 다시 만났을 때 조금이라도 실수하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쌓아온 준비성이었다.


칠흑과 같은 어둠 속에서 초광각 렌즈를 사용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감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한국에서 수차례 별을 찍으러 다니면서 터득했던 것이었는데, 처음에 대략적인 구도를 잡아서 찍고, 구도 상에 걸리는 장애물들을 삼각대 볼헤드에서 조금씩 구도를 바꿔가며 소거해 나가는 방식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가드레일과, 강가 동편에 새카맣게 운집한 숲이 풍경을 조금씩 방해했다.


내가 조금씩 악기를 조율하는 듯한 느낌으로 어둠 속에서 구도에 대한 감을 점점 잡아가는 동안 오로라는 그 형상과 춤선을 계속해서 바꿔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완벽한 오로라가 과연 몇십 분이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어느 한 트로트 제목처럼 '있을 때 잘해야' 했다.


호수 뒤편으로부터 솟아오르고 있던 오로라는 고개를 돌려 나의 시야 뒤편까지도 한 줄기로 끊어지지 않은 채 이어져 있었다. 그 빛은 그대로 뻗어나가 내가 출발해 온 에이일스타디르 방향까지도 가리키고 있었다. 반대로 오로라가 출발한 그 근원지의 방향은 내일 떠나가야 할 북부로 향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그 한줄기의 불빛이 내가 지금까지 지나온 길과 다시 새로 나아가야 할 길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런 부분을 보면서 과거의 항해자들이 별과 은하수, 오로라를 뱃길을 인도하는 불빛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잠시 뒤편으로 카메라를 돌려 지금까지 여행의 약 절반을 해쳐 나온 나 자신과 나의 유일한 동행 자동차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별과 은하수 아래에서 장노출로 사람을 몇 번 찍어봤기에 그 정도야 능숙했다. 뒤편의 오로라가 약간의 붉은 빛깔 오로라가 더해져 있었고 끄트머리의 꼬리가 더 격렬하게 요동치는 모습이 더해져 한층 신비로움을 더했다. 


이 여행 내 유일한 동행 붕붕이와 찍었다.


자동차와 함께 사진을 한창 만끽하다가 다시 강가 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오로라가 한층 더 격렬한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다시 빠르게 삼각대를 돌려 가드레일 쪽으로 바짝 붙였다. 소용돌이치던 오로라는 이전보다 훨씬 더 넓은 부채꼴을 그리며 넓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오로라의 커져버린 파동력만큼이나 더 큰 설렘의 마음을 안은 채 다시 강과 저 너머의 인랜드 지형에 집중했다. 그리고 중간에 물론 지금까지도 내 카톡 배경 사진으로 잘 써먹고 있는 오로라와 함께 찍는 실루엣 프사도 잊지 않고 챙겼다.


격렬하게 요동치며 퍼져나가던 오로라
이건 지금까지도 나의 수많은 배경화면을 책임져주고 있다



오로라의 파형이 한번 더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챌 때쯤, 슬슬 언덕 밑에 다리 인근으로 넘어가 강 한복판에서도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 한 번의 강력한 파동 이후로 오로라 빛이 조금씩 옅어지는 기분도 들었기에, 다양한 구도에서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얼른 설치한 삼각대를 그대로 들고 차에 던져놓고 차를 몰았다.


다리 바로 앞 국도 한복판에 삼각대와 함께 섰다. 이 오로라를 만났을 때 꼭 하고 싶은 사진이 있었는데, 바로 아무도 다니지 않는 심야의 차도 한복판에 나 혼자 서있는 채 오로라와 함께 찍는 것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이 구도를 굉장히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었다. 


이 사진을 이제는 손에 넣고 회고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그건 어떤 마음으로 찍고 싶어 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사람이 많은 곳보다는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것만 같은 새로운 곳을 모험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 신비로움 속에서 나 자신과, 동행과 대화하고 더 깊은 세상을 발견해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도 가장 나다운 모습임과 동시에, 그토록 내가 원하던 세상에 도달했다는 그런 마음을 나는 원하지 않았을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 하면 아이슬란드를 가장 먼저 생각할 정도로 나는 주변에 아이슬란드를 잊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해왔다. 하지만 그렇게 말만 앞선채 아이슬란드에 끝내 도달해내지 못한 시간이 8년이었다. 그 간절한 바렘이 기어이 닿고야 말았다는 나의 마지막 메시지. 그것의 흔적이 아마도 그 사진이었을 것이다.


기어이 이 세계에 도달한 나. 그리고 그 세계에서 다다른 정점.

이 순간의 기록을 기점으로 이제는 2014년 11월에 멈춰 있던 시계만 바라보며 슬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뒤에 두고 와야만 했던 그 기록하지 못했던 사실에 대한 아쉬움이 아닌, 2022년의 12월 23일 이 날 밤에 새롭게 덮어쓴 기억으로 한의 정서가 아닌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정의했던 '내 사진세계의 끝'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었다. 이 사진으로 대숲사진가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이유, 그리고 그것들이 그려냈던 모든 세상이 끝에 도달한 것이었다.


다리 주변에서 그런 '세상의 끝'을 알리는 징표 같은 기록을 남기고, 그 사이 오로라는 다시 옅어져 마지막으로 931번 도로의 다리 위에서 사실상 이날 밤 마지막 순간의 오로라를 보며 짧았지만 격정적이었던 만남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찰나와 같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 끝나 허무했지만, 아직 이 여행의 절반이 남았고, 아이슬란드 북부라는 여전히 가보지 못했던 미지의 땅이 이후의 시간에 펼쳐질 예정이었다. 남은 절반이 오늘 밤 이 순간 이후로 마치 다시 빠르게 떨어져 내려가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일정이 될지도 몰랐지만, 그 걱정 이전에 지금 이 순간이 주던 희열과 감동을 충분히 만끽하며 천천히 숙소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다.


여행의 절반이 그렇게 지났고, 그 순간이 바로 여행의 절정이었다.


제한 속도 90의 도로였지만 이 순간 완벽하게 나만 존재하고 있던 길이었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마지막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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