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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뚜왈 Mar 11. 2024

낯선 곳으로의 여행

창신동


낯선 곳으로의 여행

여러분은 서울 어디까지 가보셨나요?


동대문에서 북쪽을 따라 걷어 올라가면 서울 성곽길을 만날 수 있다.

회사가 이화사거리에 있었다.

나는 카드대란의 주범인 바로 그 카드사 중 한 곳에 다녔었고,

그 대가로 S본관에서 쫒겨 그곳에서 피난살이를 했었다.

따뜻한 봄 날이면 점심을 빨리 먹고는 이화벽화마을과 이화장을 거쳐

낙산 공원까지 산책을 하곤 했었다.

바로 그 서울 성곽길이 나오는 길이다.

이 쪽은 한양도성 안이요 성곽 아래는 한양도성 밖이였다.

성곽의 좁은 틈이나 너머로 내려다 보는 그곳에

집들이 다닥 붙어 있긴 하지만 과연 사람 사는 곳인지 아닌지

미지의 세계처럼 보였다.


몇 년전 아는 사진작가 분이 페이스북에

어두컴컴한 밤에 집을 촬영한 사진을 포스팅 했다.

"여기가 어딘가요?" 라고 댓글로 물어보니,

개인톡이 왔다. 이런 건 물어보면 실례라고 댓글을

지우라고 하시면서 창신동에서 야간 촬영한 것이라고 했다.

2년전 쯤 서울역사문화탐방 하는 모임에 가입한 적이 있었다.

서울 시내 구석구석을 주로 오래된 동네를 다니면서

해설을 해주는 모임이다.

이 모임에 참가한 적은 없었지만 창신동을 가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미지의 낯선 곳, 창신동이 나를 불렀다.


동대문역 3번 출구에서 3시에 모이기로 했다.

몇 몇 친구들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오기로 한 친구들 중 3명이 못왔다.

한 명은 아버님이 아프시고 한 명은 어머님이 편찮으시고

한 명은 본인이 다리가 저리다고 했다.

어머님이 연로하셔 편찮으신 친구가 하는 말,

"이제 우리가 그럴 나이가 되어 부렀다."


"지금 청량리역 이다" 라고 카톡을 보냈던 친구가

지하철 계단을 씩씩하게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언제 봐도 반가운 전직 영어교사 L이였다.

이제 거의 다들 도착했다.

걸어서 첫 포인트인 법왕사를 거쳐 안양암으로 향했다.

한 친구가 "막다른 골목, 막다른 골목 반대편" 같은 재미난 이정표를

발견했다. 소녀 감성의 친구였다.   

"시야게", "큐큐"라는 일본말이 아직도 즐비했다.

시야게는 마무리라고 옆에서 알려주었다.

만물박사 친구였다.


일제의 채석노역 현장이 남아 있는

안양암에 도착했다.

자연인지 인공인지 모를 동굴이 남아 있었다.

"한 번 들어가봐~나는 들어가 봤어" 라고 내가 말하니

"혼자는 못 들어갔지?" 되물어

"아니 난 혼자 들어갔어" 라며 호기를 부렸다.

사실 혼자는 가기 무서운 동굴이다.




안양암을 지나자 길 양 옆으로 4층 정도의 연립주택이 줄지어 서있다.
마침 지금 읽고 있는 "나는 고발한다"의 저자 에밀졸라의
<목로 주점>이 오버랩 되었다.
목로 주점은 19c 노동자 계급의 비참한 인생을 묘사한 소설이다.
"비좁은 집들의 세간이 바깥으로 비집고 나와 있어 열려 있는 모든 틈으로 빈곤의 흔적이 엿보였다.  입구에는 석회 벽에 문틀조차 없는 좁다란 높은 문이 붙어 있었다." 소설의 한 구절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벽화는 아름다웠다.







비좁은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성안에서 성밖을 보았던 그 성곽 돌담이 보였다.
깍아지른 절벽 위에 위태로워 보이는 집들도 보였다.






그 많던 돌들이 깨어져 일제의
조선총독부와 경성역, 조선은행 본지점 건물이 되었다.
역사의 아픔이 남아 있었다.

절벽마을 전망대 옆에
자작나무가 부시시게 아름답게 보였다.
절벽마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낯선 숙소








식사를 하고 카페로 이동했다.
해가 넘어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참석자 S 친구가 도착했다.
창신역에서 내려 걸어왔단다.
덕분에 늦게 왔지만 다른 친구들이 가보지 못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곳이 창신동에서도 가장 절벽처럼 경사가 가파른
지역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곳에 오르내리면서 살 수 있을까?"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이 살던 동네가 생각나는 곳이다.



마법 같은 사진이 나온다는 매직아워 인대
카페 안이라 마음 놓고 촬영은 힘들었다.
우리들 빼고는 전부 다 20대 커플들로 보였다.
"나중에 애인 생기면 같이 와야지" 한 친구가 말했다.
이런 상황을 뭐라고 하던대 까먹었다.
점점 노인 말투가 되면 안되는데
"저 친구들이 우리를 뭐라고 생각할까?" H가 궁금해 했다.
내가 "우리가 스따일이 괜찮아서 그렇게 이상해 보이진 않을꺼야,
얼굴만 가리면 잘 모르잖아" 스스로 위로해 주었다.



어두운 밤길을 내려왔다.
돌고 돌아 내려가는 회오리길을 만났다.
가로등이 어둠에 파묻혔다.
"연인들이 데이트 하기 좋은 곳이네 ~
데이트 하는 남녀가 키스하기 딱 좋은 곳이네"
H가 말했다.
나는 장만옥이 나오는 <화양연화>가 생각났다.


꼬흘리게 시절 70년대 서울 같은 곳,
제르베제가 살던 파리의 아파트 같은 곳,
시간과 공간을 넘나 드는 여행


이 글은 쓰면서 두 권의 책이 떠올른다.


김영하가 쓴 <여행의 이유>가 뭐였지?

아마도 오늘 창신동에서의 느낌과 비슷한 것 같았다.

책을 뒤적여 봤다.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그러나 우리는 안전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느끼기 시작한다.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카뮈의 스승 장그르니에는 <섬>에서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더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보였으면 싶다. ... 나는 지위를 낮춰 대답하고 싶다. ... 그런 삶은 우리들 자신의 참다운 모습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된다." 라며 비밀스런 삶을 꿈꾸었다.



낯선 곳에서의 하루,

서울 한복판에서 마치 모로코나 홍콩에 온 듯한

낯섬을 느낀 창신동

우리 뇌는 새로운 자극을 느끼면 행복해 한단다.

김영하의 말대로 "우리 모두는 여행자이며 지구에서의 여정이 모두 의미 있고 복되기를 기원해 본다."


하루에 한 달 만큼 새로운 경험을 한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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