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송사 기자 시험을 본 적도 없고 아나운서 시험을 본 적도 없지만 그들보다 딱 한 가지는 확실하게 발음하는 것이 있다. 바로 창고[창고]. 한자로 곳집 창, 곳집 고(倉庫)를 쓰는 창고의 발음이 [창꼬]라면, 냉장고도 냉장꼬여야 맞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이제부터 뉴스에서 흘러 나오는 [창꼬] 발음이 매우 거슬릴지도 모르니 주의바란다.
이런 애미를 둔 영향일까? 우리집 10살 어린이는 '창고' 발음 하나는 기가 막힌다. 13년 넘게 함께 하고 있는 애비는 아무리 핀잔을 줘도 그때뿐이고 다시 [창꼬]라고 하는데 아이는 아이라 그런가 [창고]를 잘 발음한다. 그런데 이 아이도 창고만 그렇지, 다른 것들은 아주 난리가 났다.
물레빵아 / 해법 / 상장 / 들소
애미는 잘못된 발음을 들을 때마다 기록해 두는 버릇이 있다. 지적을 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귀여워서. 나중에는 이 발음들이 없어질 것이 아쉬워서. (어른은 혼을 내는데 아이는 귀엽다고 기록할 정도라니, 인생은 unfair) 우선 물레방아는 왜 아이가 [물레빵아]라고 발음하는지 모르겠다. [물레방아]가 맞다. 그렇다고 다른 것들도 된소리로 읽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해법], [상장], [들소]라고 읽고 있기 때문이다. [해:뻡],[상짱],[들쏘]가 맞다. 그러면 그냥 자기가 읽고 싶은 대로 읽고 있다는 결론이 난다. 빵야빵야처럼 물레빵아. 또 나머지는 그렇게 쓰여 있으니까 해법이고 상장이고 들소인 거다.
영국에 살 때가 생각이 난다. 거기서 나고 자라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발음들이 있다. 많이 봐준다고 쳐서 꼭 나고 자라진 않아도 현지에서 겪지 않으면 쉽게 알기 어려운 발음들. Southwark, Vase, Premier 따위. 각각 서더크[sʌ́ðərk], 바아즈[vɑːz], 프레미어[premiə(r)]이다. 싸우드와크, 베이스, 프리미어가 아닌 것이다. 이 아이도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쓰여 있는대로 읽는데 뭐가? 그래서 창고도 [창꼬]가 아니라 [창고]로 읽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아이의 발음을 기록한다. 이 아이는 대한민국을 살아내면서 결국 [해:뻡],[상짱],[들쏘]를 담은 혀를 장착하게 될 테니까.
아무리 봐줘도 그러면 물레빵아는 설명이 안 된다. 이것은 그냥 아이라서 그런 것으로 넘겨 줘야 할 것 같다. 아이에게서 빵을 발음하는 재미를 빼앗는 야멸친 애미가 되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