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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선 Aug 10. 2024

한 배우를 떠나보내며

명 연예인이 마약 용의자로 지목되어 뉴스에 오르내리는 일이 빈번하다. 의외의 인물이 나왔다. 그는 뉴스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게 했다. 이미 범죄인이라도 된 듯 연출한 뉴스 장면과 몇 번이나 마주치며 난 그 내막을 알려 들지 않았다. 그가 그랬다고 믿고 싶지 않아서. 좋은 기억만, 좋았던 영화와 드라마 속 장면으로만 기억하고 싶어서. 그것이 아니라고 결론 날 것이라 믿고 싶어서.


그러던 그가.
수사 70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 않았다.
왜 그가? 왜 죄 없는 그가?


한동안 충격에 빠여 있다가 자초지종을 허둥지둥 따라갔다. 증거로 제시된 통화녹음에서조차 따뜻함이 느껴지는 낮은 음색, 그리고 최근 방송 영상에서 수줍은 듯 바라보는 눈빛을 가진 사람이 도저히 나쁜 일을 벌일 수 없을 것 같다는 망상에 빠져들었다. 아니 나는 슬퍼하고 있었다. 살아있던 그가 이제 주검으로 남았다는 사실. 절망한 그가 외롭게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슬펐다. 며칠 동안 그 슬픔이 머물러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감정에 휩싸였다. 한편으로 의아했다. 친인척도 개인적인 교류가 있던 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몰라 오래간 사색 했다.

아마도 그의 연기에서 보았던 따뜻함이, 나에게 와서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든 볼 수 있는 그의 연기가 앞으로도 이어질 거라 당연하게 여기도 있었겠지. 그와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 목소리를 참 좋아하고 있었다. 더 이상 그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 허망했다. 그가 없는 세상에 남아 그의 영화를, 드라마를 다시 본다. 그 안에 마치 그가 죽은 이유를 찾아낼 단서라도 있다는 듯. 보고 또 보았다. 보다 보니, 다 보았다고 여겼는데. 어랏, 내가 몰랐던 그의 작품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보는 작품 속에서 그는 비열하고 악한 캐릭터가 많았다. 만일 내가 그의 악한 연기를 보아왔다면, 그의 죽음이 덜 안타깝기라도 했을까……?

그러다 마침내 알게 되었다. 그에게 투영하고 있던 나의 이상향을 말이다. 그가 맡은 배역들은 현실에서 만나고 싶을 법한 선하고 인간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최근작인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그가 연기한 박동훈은 동생의 지인인 미모의 여배우가 같이 있던 동네 친구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어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한다. 하지만 현실의 그가, 배우 아닌 ‘이선균’은 그랬을까? 소문난 연예인 잉꼬부부에, 두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아빠로 알려진 그가, 어찌하여 술집에 들락거리며 거기에서 일하는 여자와 친분을 쌓는가? 그것은 ‘박동훈’이 아니고,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이두현’도 아니고, <파스타>의 ‘최현욱’도 아니고, <커피프린스 1호점>의 ‘최한성’도 아닐 텐데……. 그런데 그 모든 인물을 현실의 그와 같은 인물로 기억하는 오류에 빠진 나와 마주쳤다. 나는 그를 모른다. 나는 그가 연기한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사람일 뿐이다.





이 글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게 될까 두렵다. 아니 그보다는 통렬히 안타깝다. 그가 힘든 시기를 견디어주었다면 좋았을 것만 같은 때늦은 바람을 끝없이 하게 되는 나를 다독이려는 글일 뿐이다. 삶이 영화만 같다면, 드라마 속 대사처럼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명대사들을 되뇌며 버틸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아무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야.’라던가, ‘행복할 거야’와 같은.

살아있는 존재임에 눈 크게 뜬다. 드라마처럼 안전하게 흐르지 않는 삶 가운데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낀다. 그리고 다시 인간 ‘이선균’을 본다. 당신이란 존재에 감사했고 당신의 연기에 행복했다고 마음 다해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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