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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망토 채채 Jul 11. 2020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끝은 어디까지?

꽃에서 나무로, 그리고 돈을 터는 여자들, <굿걸>


출처: MNET 굿걸 공식 홈페이지


최근 엠넷의 '굿걸'이라는 경연 프로그램(?)이 끝이 났다. 콘셉트는 '방송사 vs. 굿걸'. 일단 여성 아티스트가 10명이나 등장한다는 것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다만 제대로 된 경연은 4번밖에 하지 않아서 많이 아쉽긴 하다. 


출처: 기사 사진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269551)



 누가 누굴 평가해? 


초반에는 본 경연 전 소개차 각 개인의 무대를 보여주고, 그 이후 유닛으로 구성해서 팀워크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각자 개성을 발산할 수 있는 무대를 온전히 보여준 것은 좋았다. 하지만 무대에 선 이들은 또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경연 프로그램임을 감안할 때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첫 관객은 동료 힙합/R&B 뮤지션들이었는데, 솔직히 누가 누굴 평가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음악을 해나가는 입장인데 구도는 마치 심사위원과 참가자. 꼭 그걸 보는 관객들이 항상 무언가를 평가해야만 할까? 

경연 프로그램에서는 그들의 심사 기준에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라고, 누구 하나 대충 준비한 사람 없이 다들 멋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특히 4번의 본 경연에서는 코로나 19로 최소한의 관객만 허용하는데 주로 모델, 아이돌 가수들이다. <비긴 어게인>에서도 관객의 역할은 중요한데, 애초에 외국인들에게도 인정받는 '우리 가수'들이라는 구도로 관객이  쓰인다. <굿걸>에서도, <쇼미 더 머니>에서도,  '스타일리시'한 관객, '있어 보이는' 관객이 즐기는 무대가 주로 화면에 나온다. 특히 <굿걸>에서는 저 연차 가수들이 나오는데, '선배님' 대단하다는 식의 말을 많이 한다. 돈 주고 봐야 하는 무대라느니 찬양식의 말은 나중에 갈수록 조금 불편했다. 



 '여적여' 구도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개성 강한 이들이 모인 만큼, 이들이 어떻게 잘 합쳐질까? 하는 시청자로서의 궁금함도 생겨났다. 그도 그럴 것이, 엠넷의 편집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MNET 굿걸 공식 홈페이지


슬릭은 2010년대 초반에도 힙합계 몇 안 되는 여성 MC로 유명했던 사람인데 (링크), 왜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가 주 콘셉트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엠넷 측에서 어그로를 끄는 건지 '여적여' 구도를 만드는 건지 자꾸 겉도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유닛을 정하는 장면에서는 아예 의도적으로 슬릭을 어려워하는 다른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 모습이 5화까지 나왔다.


출처: MNET 굿걸 3화 예고


그래도 슬릭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악편 이겨내기... 

사실 사회에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남겨진다'는 것, '배제당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상처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런데 슬릭은 밤을 새 가면서 상대에게 자신을 맞추고, 어떻게든 무대를 끌어냈다. 


하지만 왜 다들 슬릭에게 '열려있는 사람'인지 몰랐다고 말을 할까?

편견을 가진 사람은 그 말을,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다.

누구보다 열려있는 사람이 슬릭 아닐까. 동물에게, 여성에게, 소수자에게 열려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10명의 colors, 그리고 한 팀

#슬릭 #에일리 #윤훼이 #이영지 #장예은 #전지우 #제이미 #치타 #퀸 와사비 #효연


엠넷이 무엇을 의도했든 간에 경연은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10명의 출연자들이 나오다 보니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와서 좋다. 설령 그것이 파격 퍼포먼스 일지라도.....


누군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돌의 이미지를 부수고 싶을 것이고, 혹은 홀로서기를 공표하고 싶을 것이고, 혹은 그냥 목소리를 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설 수 있는 다채로운 빛깔의 무대를 마련해준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더 보고 싶은 조합도 있었지만..!)


슬릭, 제이미, 윤훼이 - Colors (링크)

장예은, 전지우, 제이미, 치타, 효연 -  마녀사냥 (링크)



그러니까 '여성' 아티스트의 입지 운운할 건 아니다. 


‘굿걸’ 선배님들이 정말 좋은 무대를 보여주셨다. 여성 아티스트로서 입지를 갖추는 것 같아서 후배로서 좋았다. 승승장구 하시길 바란다.

- 굿걸 6화 중


이 말은 덕담이 아니다. 여성 아티스트로서의 입지란 남성 아티스트의 그것과 다른가.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굿걸 이전에 출연자들이 아티스트로서의 입지, 그것도 '여성' 아티스트로서의 입지(뭔진 모르겠지만)가 미완되었다고 하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미 그들은 '후배 남성 아티스트'가 평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스스로의 개성과 음악 커리어를 쌓아가는 아티스트다. 이미 승승장구하고 있고.




 "사람들이 우리를 대척점에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도 그럴까요?" 


마지막화에서 슬릭은 말한다. 

"사람들이 저와 퀸 와사비를 양 극단의 스펙트럼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난 왜인지 이 대사가 잊히지 않았다.


<굿걸> 8화 중


그리고 내가 조금 불편하게 느낀 지점을 곧 깨달았다.

슬릭과 퀸와사비는 그간의 무대를 본 시청자들에게 다소 의외의 조합이고, 위기감을 조성하는 듯 하지만 결국 둘의 무대는 잘 조화되어 끝난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무대가 더 좋았냐는 말에 "퀸 와사비요" 라고 말한다. 슬릭의 이름은 지워졌다. 


슬릭은 어디 갔을까? 물론 편집의 차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왜 꼭 슬릭이 '와사비화' 되어야 조화일까?

결국 어느 한쪽, 그것도 소수에 가까운 쪽이 꼭 다수를 위해 변해야만 하는 걸까?


슬릭은 항상 변해왔다. 효연과의 무대에서는 화장을 했고, 퀸와사비와의 무대에서는 노래 스타일도 바꾸고, 춤도 다 췄다. 왜 누군가를 따라가는 건, 조금 더 '특이하다'라고 지탄을 받는 소수자의 몫일까?

결국 우리 사회, 우리 집단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소수자들의 희생이 더 요구되는 건 그래서일까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우리가, 

어떤 스펙트럼의 양 끝에 있는 사람들일까?


물론 우리 둘은 엄청 다르기도 해.

나에게는 없는 너의 무한한 긍정적인 에너지,

그리고 스스로를 귀여워하는 귀여움.


우리 둘은 굿걸 그 누구보다도

정말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어.

자유롭고, 

스스로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웃는 얼굴로 지켜볼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 슬릭의 말, 굿걸 8회 중에서


어떻게 보면 저랑 와사비랑 둘 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자 했던 거라서요.




 그래도 방구석 시청자는 즐겁다 


논란이나 악편 문제는 있지만, 온전히 그들이 기획한 무대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시청자로서는 즐겁기만 하다. 특히 '기획'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조합, 곡, 무대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명확할수록 좋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하고 싶은 게 명확한 사람이 참 매력적 이어 보였다. 그리고 어떤 무대든 '좋은 음원'이 자신의 무기라고, 자신의 훅이 제일 좋다고 웃으며 말하는 윤훼이를 보고 그 자신감이 부럽기도 하고 멋있었다. (영상)


MNET 굿걸 5화 중에서


그런데 시청률이 0% 대고, 음원도 차트 인 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충격이다. 쇼미든, 퀸덤이든, 심지어 로드 투 킹덤이든 몇 곡은 방송이 끝나면 차트인 되는데 말이다. 화제성이 정말 제로인가 싶다가도, 유튜브 조회수를 보면 또 아니고. 목요일 11시로 방송 시간대를 바꿨다는데 이게 실효성이 있었나 모르겠다. 어쨌든 좋은 음원들은 빛을 발하리라 믿는다..!


투표 조작 문제가 있었던 아이돌 선발 경연에서부터, 자극적인 힙합 경연, 그리고 다시 여자 아이돌을 전면에 내세운 경연까지. 참 다양한 종류의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선보여왔다. 경쟁이라는 게 뭔지, 그토록 우리는 호되게 당하고도 또, 또 찾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경연에 대처해나가는 자세를 보며 오늘의 나도 한 뼘 자란 것 같은 건 착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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