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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익 Oct 02. 2024

개념의 함정

[논술로 AI 감옥 보내기]  혁신하면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라

인간은 개념의 함정에 종종 빠진다. 개념은 윤곽이 있기 때문이다.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해준다. 반대로 그 테두리 밖의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혁신적인 제품에 기존 제품과 관련된 이름을 붙이는 경우 종종 그렇다. 19세기 엔진이 달린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를 ‘말 없는 마차’라고 불렀다. 당시 이동수단은 마차였기 때문에 마차의 범주에 자동차를 포함시킨 것이다. ‘말이 끄는 마차’와 ‘말 없는 마차’로 마차의 개념이 분리된 것이다.      

자동차를 말 없는 마차라고 한다고 큰 일이 나는 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도로 행정에서 특히 그랬다. 자동차와 마차를 완전히 다른 범주로 보기까지 도로는 마차가 달리는 길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폭도 좁아서 자동차가 제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포장은 한참 뒤 미국에서 각각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시작됐다.      


2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을까. 배터리로 가는 이동수단을 우리는 ‘전기차’라고 한다. 전기와 자동차의 개념을 합친 것으로 자동차의 범주에 넣은 것이다. 여기서 전기차는 자율주행이 가능한 단계라고 하자.      


전기차와 관련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경우 자동차란 개념의 프레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갇히게 된다. 이 경우 내연기관 자동차가 만든 산업 이외의 것들을 상상하기 힘들다. 자동차 메이커는 엔진을 떼고 배터리가 들어간 자동차를 만든다. 주유소 사장들은 서서히 충전소 사업을 구상한다. 자동차 극장을 하는 사업가들은 계속 극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창의력의 첫단계는 개념을 분리하는 것이다,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같은 범주 안에서 기존의 것과 분리한다. 전기차는 ‘엔진이 없는 자동차’ ‘핸들이 없는 자동차’란 새로운 개념이다.      


맹인 안경에서 보듯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범주 벗어나기(Category Shift)’다. 핸들이 없다는 건 손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인간은 손으로 많은 일을 한다. 또 핸들이 없다는 건 시선이 자유롭다는 의미다.      


자율주행 전기차는 더 이상 자동차가 아니다. ‘이동하는 공간’이다. 이렇게 범주를 바꾸면 훨씬 많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사무공간이 될 수 있다. 휴식 공간도 가능하다. 놀이 공간도 만들 수 있다. 연인들의 가장 프라이빗한 공간을 꿈꿀 수도 있다. 이 곳에서의 매출은 운송료나 탑승료가 아니라 공간대여료의 개념이 된다. 자동차 회사들은 더 이상 자동차 메이커가 아니라 이동 공간을 만드는 업체가 된다. 운송 사업이 아니라 부동산 임대 사업의 개념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혁신만큼 중요한 게 적합한 개념 정의다. 기존 개념을 벗어나 새로운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 엔지니어들은 알고리즘을 짜는 것만큼 단어를 선택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개념의 함정에 빠지는 순간 세상을 바꿀 혁신 제품이 그저그런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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