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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통화의 장점과 단점

by 김창익

정부가 화폐를 독점적으로 발행하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화폐는 교환의 수단이자 가격을 표시하는 기준인데, 여러 주체가 따로 발행하면 거래할 때마다 신용을 따지고 환산해야 하니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화폐는 네트워크 효과가 강해서 한 가지 기준이 사실상 독점적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고, 국가가 법과 조세를 통해 그 기준을 보증할 때 사회 전체가 가장 싸고 편하게 화폐를 쓸 수 있다. 케인즈는 정부가 발권권과 금리를 통해 총수요를 관리해야 경기 침체와 실업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고, 프리드먼도 발권권 자체는 국가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그는 정치권이 권한을 남용해 돈을 너무 풀지 못하도록, 공급을 일정 규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k-percent rule’을 제안했다. 이런 식으로 화폐 발행 독점은 “민간이 가장 낮은 비용으로 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 공급”이라는 논리로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인플레이션이라는 큰 비용을 남겼다. 정부는 세금이나 국채로 돈을 조달하기 어려울 때, 중앙은행을 동원해 화폐를 발행하는 유혹을 받는다. 이때 생기는 인플레이션은 국민의 구매력을 갉아먹는 보이지 않는 세금이 된다. 하이에크는 『탈국가화된 화폐』에서 국가가 발권을 독점하는 한, 정치적 필요 때문에 돈을 남발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구소련 등 많은 나라에서 정부가 재정난을 해결하려고 돈을 찍어내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짐바브웨나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발권 독점이 국가 경제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경고가 되었다. 이처럼 발권 독점은 단기적으로는 거래비용을 줄여주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가져왔다.


이 때문에 발권을 탈중앙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이에크는 민간이 자유롭게 화폐를 발행하게 하면 시장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신뢰받는 화폐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자유은행학파 경제학자들, 예컨대 셀진과 화이트도 19세기 스코틀랜드와 캐나다의 사례를 들어 경쟁적 화폐 발행이 오히려 더 안정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도 이런 문제의식 위에 탄생했다. 비트코인은 중앙기관 없이도 작동하는 전자화폐이며, 공급량을 2100만 개로 제한해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아예 구조적으로 차단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또 다른 대안이다. 은행 예금처럼 준비금을 두고 그만큼의 토큰을 발행해 가치를 고정하려는 시도로, 블록체인 기반 결제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변동성을 줄이려는 모델이다. 하지만 이 경우 발행사는 이용자에게 이자를 주지 않고 준비금을 운용해 수익을 얻으므로, 사실상 주조이익을 사적으로 가져간다는 비판이 따른다.


그렇다고 탈중앙화가 항상 더 좋은 해결책인 것은 아니다. 여러 화폐가 동시에 경쟁하면 가격 표시와 거래가 복잡해져 오히려 비용이 올라간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와일드캣 뱅킹’ 시기에는 은행마다 발행한 지폐가 제각각 할인율을 적용받아 거래가 불편해졌다. 또 금융 시스템은 언제나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어 위기 시 최종 대부자가 없다면 작은 충격이 대규모 뱅크런으로 번질 수 있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바로 이런 순간에 유동성을 공급해 위기를 막는 것이었고, 비트코인 같은 탈중앙화 화폐는 이런 안전장치가 없다. 스테이블코인은 변동성 문제를 줄였지만 발행사의 부도 위험이나 준비금 불투명성이 여전히 큰 약점이다. 테라-UST 붕괴 사례가 그 위험을 잘 보여주었다.


반대로 정부의 발권 독점도 무결점은 아니다. 인플레이션 유인은 여전히 존재하고, 선거 주기와 정치적 필요 때문에 중앙은행이 느슨한 정책을 펼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강화, 물가안정 목표 설정, 재정지출의 규율 강화 등이 있다. 실제로 1990~2000년대 많은 나라가 이런 제도를 도입한 뒤 “대안정기”라고 불릴 정도로 물가와 경기가 안정된 시기가 있었다. 즉, 공공 독점 체제도 제도적 장치를 제대로 갖추면 인플레이션 문제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탈중앙화 진영도 마찬가지다. 경쟁적 화폐 체제가 잘 작동하려면 발행기관의 투명성, 상호 교환 가능성, 파산 절차 등이 갖춰져야 하고, 실패했을 때 그 피해가 사회 전체로 전가되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비트코인은 검열저항성과 무허가성을 장점으로 내세우지만 가격 변동성이 너무 커서 일상적인 결제 수단으로 쓰기 어렵다. 스테이블코인은 일상 결제에 더 적합하지만, 발행사의 수익 독점과 외환규제 문제 등 새로운 논쟁을 낳는다. 그래서 현실적 해법으로는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와 민간 스테이블코인, 토큰화 예금 등이 혼합되는 모델이 논의되고 있다. 이렇게 하면 공공의 발권 권한을 유지하면서도 민간 혁신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가장 싼 화폐’라는 말이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달려 있다. 단순히 거래비용만 보면 국가 발권 독점이 가장 효율적이지만, 인플레이션 같은 장기적 사회 비용까지 고려하면 그 효율은 상대적이다. 반대로 탈중앙화 화폐는 정치적 남용을 차단하지만, 단위계 분열이나 시스템 불안정이라는 새로운 비용을 가져온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단순히 어느 쪽이 맞냐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 독점의 장점과 민간 경쟁의 장점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의 문제다. 규칙 기반의 공공 발권 체제에 민간의 혁신을 접목하고, 동시에 발행자의 책임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향이야말로 진정한 ‘가장 싼 화폐’를 만드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 버전

정부가 화폐 발행을 독점한 근본 논리는 단순하다. 화폐는 교환의 매개이자 회계단위이므로, 발행 주체와 결제망이 분산될수록 신용평가·검증·청산의 비용이 폭증한다. 네트워크 외부성 때문에 한 가지 기준 화폐가 사실상 자연독점에 수렴하고, 국가가 강제통용권과 조세수납을 통해 그 표준을 보증할 때, 민간은 가장 낮은 탐색·정산 비용으로 교환할 수 있다. 케인즈는 통화와 금리가 총수요에 미치는 비대칭적 영향을 강조하며, 발권·금리 조절을 통한 거시적 안정화를 국가가 담당해야 한다고 보았고, 프리드먼조차 “인플레이션은 어디서나 통화적 현상”이라며 발권을 사적 경쟁에 맡기기보다 규칙 기반 공급(k-percent rule)로 국가가 책임지되 재량을 줄이라는 방향을 제시했다. 규범경제학적으로도 발권 독점은 공공재 공급의 한 형태로 정당화된다. 정부가 신용·법 집행을 결합해 단일 단위계를 보증할 때 거래비용이 최소화되고, 통화가치 안정은 외부효과를 가진 공공재라는 논리다.

하지만 이 구조의 그림자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이다. 세수가 부족할 때 정부는 채권발행 대신 통화발행으로 재정을 메울 유인이 생기고, 이는 실질 화폐보유자에게서 구매력을 빼앗는 인플레이션 택스로 작동한다. 하이에크는 『탈국가화된 화폐』에서 정치적 주기와 재정유인이 결합된 발권 독점은 필연적으로 과잉발행을 낳는다고 비판했고,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백서는 “신뢰 가능한 제3자 없이” 고정공급을 코드화함으로써 그 유인을 아예 제거하려는 설계를 제시했다. 역사도 이런 의심을 부추겼다. 20세기 라틴아메리카·전후 유럽의 일부 사례에서 재정적자→중앙은행의 통화화→가격폭등으로 이어진 연쇄는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세르전트와 월리스의 “불쾌한 통화주의 산술”은 재정지배 하에서는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정식화했다. 카건의 초인플레이션 화폐수요 모형과 세르전트의 『네 번의 큰 인플레이션의 종말』은 과잉발권의 종착지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통계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발권의 탈중앙화일까. 하이에크와 자유은행학파(셀진, 화이트)는 19세기 스코틀랜드·캐나다의 사례를 들어, 경쟁적 화폐체제가 국가 독점보다 더 안정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은행권이 과발행하면 즉시 할인되어 시장에서 퇴출되므로 시장규율이 작동한다는 논리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의 시간불일치 문제(카이들랜드·프레스콧, 바로–고든)를 코드 규칙으로 봉인한다. 공급규칙이 재량정책보다 신뢰를 낳는다는 ‘규칙 대 재량’ 논쟁의 연장선에서, 사토시는 재량을 제로로 만든 극단의 규칙을 선택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또 다른 길을 제시한다. 토큰화된 예금증서처럼 준비금으로 가치를 고정해 변동성을 낮추면서, 블록체인 결제의 개방성과 상호운용성을 살리려는 시도다. 이 모델에서 발행사는 무이자 부채(코인)를 발행해 유이자 자산(현금·단기국채)에 투자하므로 현대적 의미의 주조이익을 누리고, 결제망 혁신과 사적 발권의 유인을 결합한 새로운 실험이 된다.

그러나 탈중앙화가 곧 가장 싼 화폐를 뜻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첫째, 단위계가 분열되면 가격표시·회계·헤지 비용이 급증한다. 통화는 교환수단이자 회계단위이기 때문에, 경쟁적 발행은 곧 단위의 경쟁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도 미국의 ‘와일드캣 뱅킹’은 지역·은행별 할인율이 난립하며 거래비용을 끌어올렸다. 둘째, 금융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유동성 불일치에 취약하고, 위기 시 최종대부자가 없다면 작은 충격이 시스템적 런으로 번진다. 베이저핫의 원칙(건전한 담보에 고금리로 무제한 대출)은 중앙은행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요약한다. 비트코인은 공급이 경직돼 있지만, 그 때문에 경기충격에 대한 완충장치가 없고, 결제최종성과 가격안정성의 균형을 스스로 맞추기 어렵다. 스테이블코인은 변동성 문제를 우회하지만, 발행사의 지급능력·준비금 운용이 핵심 리스크가 된다. 테라-UST 붕괴는 담보·알고리즘 설계가 잘못되면 ‘코드가 법’이어도 군중심리 앞에서 취약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셋째, 민간 발권의 주조이익은 사유화되지만, 시스템 위기 시 비용은 공적 안전망에 사회화될 유인이 생긴다. 은행과 달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예금보험료나 지급준비 의무를 동일하게 지지 않으면서, 사실상 단기자금시장과 결제에서 은행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그림자 은행’이 되기 쉽다. 이는 공평과세·규제형평의 문제로 직결된다.

공공 독점 진영도 무결점은 아니다. 인플레이션 바이어스는 시간불일치의 전형이며, 민주정치의 선거주기와 결합할 때 통화정책은 느슨해지기 쉽다. 이에 대한 처방은 두 갈래로 발전했다. 하나는 로고프의 ‘보수적 중앙은행가’ 논지처럼 법적 독립성·물가안정 단일 목표·명시적 인플레이션 타깃으로 규칙성과 신뢰를 제도화하는 길이다. 실제로 볼커 이후 테일러룰·물가목표제를 채택한 많은 국가에서 1990~2000년대 대안정기가 도래했다. 다른 하나는 재정규율을 결합해 재정지배 자체를 막는 길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장기 재정제약을 애초에 탄탄히 해야 통화가 최후의 재정으로 오염되지 않는다. 이 조합이 제대로 작동하면, 공공 독점이 제공하는 결제최종성·단위계 통일·최종대부자 장점은 유지하면서 인플레 바이어스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탈중앙화 진영 또한 내적 조정이 필요하다. 경쟁통화가 진정한 효율을 내려면 상호운용성·청산 인프라·공시규율이 갖춰져야 하며, 실패를 사회가 감당하지 않도록 파산 절차·예치자 보호의 경계가 명확해야 한다. 비트코인은 무허가·검열저항을 제공하지만 회계단위의 변동성이 커서 일상적 가격표시에는 부적합하고,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효율을 제공하지만 준비금 투명성·주조이익의 공공성·외환규율과의 정합성이 과제로 남는다. 현실적 타협으로는, 공공이 발권을 유지하되 민간 결제 혁신을 개방형 표준으로 끌어들여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 또는 **협력적 모델(CBDC + 민간 월렛/토큰화 예금)**이 거론된다. 이렇게 하면 단위계와 최종대부자의 공공재 성격을 보존하면서, 민간의 비용절감·사용자경험 혁신·해외송금 효율을 흡수할 수 있다. 다만 CBDC는 개인정보·금융중개 위축·정치적 남용이라는 새로운 위험을 동반하므로 설계에서 강력한 거버넌스·프라이버시 보호가 필수다.

핵심은 ‘가장 싼 화폐’의 정의를 단기 거래비용에만 두느냐, 아니면 위기시 유동성·장기 물가안정·제도 신뢰까지 포함한 총사회적 비용으로 보느냐다. 발권 독점이 제공한 낮은 분산비용·높은 결제최종성은 분명 실재하는 편익이지만, 재정·정치 유인과 결합하면 인플레이션이라는 거시적 비용을 유발한다. 반대로 탈중앙화는 정치 유인을 제거하고 혁신을 촉진하지만, 단위계 분열·런 리스크·사적 주조이익의 사유화를 동반한다. 따라서 유의미한 결론은 이분법이 아니다. 규칙에 묶인 공공 발권 + 경쟁적 민간 결제라는 혼합질서에서, 인플레 바이어스를 억제하는 법·제도(중앙은행 독립, 명시적 타깃, 재정준칙)와, 민간 발행의 외부효과를 내부화하는 규율(준비금 요건, 유동성 커버리지, 공시, 예치자 보호의 한계, 외환·자금세탁 규정)을 병행할 때, “가장 싼 화폐”의 조건—낮은 거래비용과 낮은 거시비용—이 동시에 충족된다. 요컨대 발권 독점의 역사적 정당성과 탈중앙화의 기술적 가능성은 서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한계를 교정할 때 비로소 살아난다. 이 균형을 설계하는 정치·법·기술의 교차점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진짜 논쟁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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