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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현대아파트 RWA를 사면 그 집에 살 수 있나

by 김창익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한 채를 실물자산 토큰(RWA)으로 만들어 거래한다고 가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그 집에는 누가 실제로 사느냐”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체로 토큰 보유자가 아니라 세입자가 산다. 이유는 간단하다. RWA가 나누어 파는 것은 대개 ‘거주권’이 아니라 ‘경제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토큰은 그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임대수익과 매각차익을 지분대로 배분받을 수 있는 디지털 영수증에 가깝고, 집 안방을 누가 쓰느냐는 별도의 임대차 계약과 운영 계약에서 정해진다. 구조를 조금 더 찬찬히 따라가 보자. 보통은 별도 법인(SPV)이나 신탁이 해당 아파트의 등기상 소유자가 된다. 이 법인이 투자자에게서 받은 돈으로 아파트를 매입하고, 그 소유지분을 토큰으로 발행한다. 투자자는 거래소나 허가형(승인형) 네트워크에서 KYC를 거쳐 토큰을 사며, 스마트컨트랙트와 오프체인 계약서가 연동되어 배당(임대수익)과 청산(매각대금 분배) 규칙을 명확히 적어둔다. 동시에 자산관리사는 세입자를 모집해 전세든 월세든 임대차를 맺고, 월세가 들어오면 관리비·재산세·수선비 등 비용을 제하고 남은 순수익을 SPV로 올린 뒤 토큰 보유자에게 자동 분배한다. 이 시나리오에서 실거주는 당연히 세입자가 맡는다. 투자자는 집에 들어가 살 권리가 없고, 대신 자신의 토큰 수량만큼 현금흐름과 향후 매각차익을 가져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100% 단일 소유 토큰화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한 사람이 아파트를 통째로 소유하면서 소유권 증표를 온체인으로 표시하는 형태다. 이때 토큰은 지분을 쪼개 판매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디지털 등기증명에 가깝다. 이런 구조에서는 소유자 본인이 들어가 살 수도 있고, 원하면 세를 줘 세입자가 살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조각투자형 RWA’와는 목적이 다르다. 조각투자의 핵심은 다수 투자자가 수익을 나눠 갖는 것이지, 번갈아 방을 쓰거나 거실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다. 실제 공동거주나 타임셰어형 사용권 토큰은 휴양시설처럼 회전율이 높은 자산에서나 가끔 시도될 뿐, 한국 아파트처럼 전입신고·학교 배정·관리규약·보험·민원 이슈가 얽힌 주거형 자산에는 잘 맞지 않는다.


조금 변형된 구조로는 세일앤드리스백이 있다. 기존 실거주자가 집을 SPV에 팔고 장기 임차인으로 남는 계약이다. 이 경우에도 거주는 기존 거주자가 계속 맡고, 투자자는 임대료를 배당받는다. 장점은 현금흐름이 안정적이고, 세입자 탐색·공실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임대료 재조정, 계약 갱신, 보증금 반환 같은 이벤트를 계약서로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 어쨌든 핵심은 같다. RWA의 표준적 설계에서 토큰은 ‘살 권리’가 아니라 ‘돈 받을 권리’를 대표한다.


그렇다면 이런 구조가 왜 온체인, 특히 이더리움과 승인형 L2를 선호하느냐를 살펴보자. 아파트 RWA는 온체인 코드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등기부 등본에 기록된 소유권, 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세입자 권리, 공실·보수·화재 등 비상 상황의 처리, 환매·청산 절차 같은 중요한 요소가 전부 오프체인 법·규정의 영역에 있다. 그래서 규제 준수, 외부감사, 신탁·수탁 체계가 반드시 붙는다. 이더리움 메인넷은 보안성과 유동성, 투명성에서 이미 글로벌 표준처럼 쓰이고 있고, 여기에 화이트리스트·KYC·거래 제한·동결·리커버리 같은 통제 기능을 제공하는 승인형 L2를 결합하면, 퍼블릭 체인의 개방성과 기관의 컴플라이언스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다. 큰돈이 들어오려면 토큰이 진짜로 무엇을 대표하는지(법적 권리),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어떻게 돌려주는지(환매·청산), 비용과 수수료는 어떻게 정산되는지(감사·보고)가 분명해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퍼블릭+승인형의 하이브리드 구조가 힘을 받는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아파트 RWA의 매력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금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이득’이다. 현금흐름은 세입자가 내는 임대료에서 비용을 뺀 금액이 정기적으로 배당되는 형태로 들어오며, 자본이득은 매각 시점의 가격 상승에 따라 발생한다. 토큰 설계에 따라 이 배당을 온체인에서 자동 분배할 수도 있고, 분기별로 오프체인 정산 후 일괄 지급할 수도 있다. 반면 리스크도 있다. 공실이 길어지면 배당이 줄고, 예상치 못한 대규모 수선비가 발생할 수 있으며, 금리 상승으로 임대료 시장이 약해지거나 아파트 가격이 하락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운영계약에는 공실 보장 장치, 수선비의 한도와 충당금, 리파이낸싱 조건, 최소 배당 커버리지 같은 현실적인 조항이 필요하다.


거주자 관점에서는 오히려 단순하다. ‘누가 살지’는 임대차 계약이 정한다. RWA가 있다고 해서 집이 무주공산이 되는 게 아니라, 자산관리사가 세입자를 선정하고 표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다. 세입자는 임대료를 내고, 관리사무소 규정을 지키며, 보증금 반환·하자보수 같은 권리를 가진다. 토큰 보유자는 세입자에게 직접 지시할 권한이 없고, 모든 운영은 SPV와 자산관리사가 맡는다. 다만 중요한 의사결정—예컨대 대규모 리모델링, 매각 시점, 운용사 교체—은 토큰 보유자 총회(온체인 거버넌스 투표)로 정하도록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

유동성과 출구 전략도 짚어야 한다. RWA 토큰의 가치는 보통 ‘순자산가치(NAV)’와 연동된다. 평가사는 분기나 반기마다 시세를 반영해 자산가치를 산정하고, 이 NAV가 온체인 오라클을 통해 업데이트된다. 투자자는 둘 중 한 길을 택한다. 하나는 2차 시장에서 토큰을 사고파는 길, 다른 하나는 정해진 창구에서 환매하는 길이다. 환매는 유동성 풀이나 SPV의 현금 위치, 임대차 계약의 안정성에 맞춰 ‘창구가 열리는 주기’와 ‘한도’가 정해진다. 이 모두가 오프체인 규정과 온체인 로직을 맞물려 돌아가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그게 바로 감리·감사·수탁이 중요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지점 하나를 박아두자. “토큰을 샀으니 들어가 살래요”는 일반적인 투자형 RWA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사용권을 함께 설계했다면 가능하지만, 그건 전혀 다른 상품이다. 주거형 아파트는 한 세대가 지속적으로 살아야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나오고, 주민등록·자녀 학교 배정·관리규약·보험 등 현실적 제약이 많다. 따라서 투자형 RWA는 ‘거주는 세입자, 수익은 투자자’라는 역할 분담을 깔아야 시스템이 매끈하게 돌아간다. 만약 실거주와 투자를 동시에 원한다면 100% 단일 소유 토큰화처럼 ‘소유증명’ 위주의 모델을 택해야 하고, 이때는 사실상 기존의 집 소유와 다르지 않다—다만 등기증이 디지털 토큰으로 표현될 뿐이다.


정리하면, 압구정 현대아파트 한 채를 RWA로 만들어 거래할 때 실거주는 대부분 세입자가 담당하고, 토큰 보유자는 그 집에서 발생하는 돈의 흐름—월세 배당과 매각차익—을 나눠 가진다. 이 모든 것이 매끈하게 작동하려면 등기와 임대차, 환매와 청산 같은 오프체인 규칙이 탄탄해야 하고, 그 규칙과 온체인 코드가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규제·감사·수탁의 삼박자가 갖춰져야 한다. 그래서 많은 프로젝트가 ‘이더리움 본선의 신뢰’와 ‘승인형 L2의 통제’를 결합한다. 퍼블릭의 투명성과 기관의 컴플라이언스를 함께 확보해야 큰 자금이 안심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결국 RWA는 거주와 투자, 온체인과 오프체인을 깔끔히 분리해 각자의 장점을 살리는 기술이고, 그 분리의 결과로 “누가 사느냐”라는 질문의 현실적 답은 언제나 같다. “세입자가 산다. 투자자는 수익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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