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키워키 Apr 29. 2024

돈 주고는 못 사먹는 갈비탕

남편은 학위 밟느라, 나는 출퇴근에 여념 없을 때 엄만 종종 장을 봐서 두고 가시곤 했다. 현관문 앞에 내려놓고 들여가라 전화만 주시는 식이었다.

엄마산타가 소갈비와 탐스런 무를 두고 가신지 얼마 안 되었던 어느 날, 대학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입사가 확정된 상태라 잠시 휴가중이던 남편이 카톡을 보내왔다.



"갈비탕 끓였는데 이따 장모님 댁 가서 먹자."


"갈비탕?"


집으로 퇴근했다가 30분 넘는 거리를 다시 솥을 들고 갈 생각을 하니 살짝 피곤했지만, 그간 엄마가 오고가신 일이나 남편의 성의를 고려할 때 낄 군번은 아니었다.


칼퇴근 후 집 앞에 차를 댔는데, 무언가 한아름 안고 나오는 남편이 보였다.

그 꼼꼼한 성격에 기름을 몇 번이나 걷어내며 오래 끓였을 국물뿐 아니라, 곱게도 썰은 지단을 보니 절로 헉 소리가 나왔다. 국물에 올릴 파까지 준비해온 사위를 보며 엄마 아빠는 크게 감동을 하셨다.

집에 돌아와보니 마늘을 일일이 손질하다만 흔적이 있었다. 마저 까야한다며 다시 칼을 쥐고 뽈뽈대는 모습을 보니 하루종일 주방에서 종종댔을 모습이 떠오르며 울컥했.



폭발적 반응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이후 남편은 내 퇴근에 맞춰 매일 저녁밥을 준비해두었다.

우렁서방

파개장부터 LA갈비에 이르기까지 몇 년간 밀린 요리를 한 달간 다 해버렸다. 이과인답게 레시피에서 시키는대로 1g까지 맞춰 계량하기에, (오래 걸리지만) 맛엔 실패가 없다.


내가 돈 벌테니 집에서 이렇게 내조할려냐는 물음망설임없이 대답해왔다.


"개좋지."


노래 부르던 '밥 같이 먹는 삶'은 그렇게 방학처럼 찾아왔다. 아파트로 이사오니 맞바람 쳐서 냄새도 잘 빠진다 저녁마다 마주하고 밥을 삼키던 이 무렵 깨달았다. 남편은 말보단 행동인 사람이라는 걸. 말도 예전보다 많이 하기 시작했다.

축적한 밥심은 남편이 미운 행동을 할 때마다 내 안의 빵빵한 인내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작가의 이전글 구경 간 집에서 냉장고만 쳐다본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