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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ovator May 02. 2022

사이코패스가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면?

후안 엔리케스 <무엇이 옳은가> 서평



올해 초 안방가를 뜨겁게 달구었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한 프로파일러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들을 수사하며 미궁에 빠진 사건들을 하나씩 풀어 나가는 범죄 수사물 드라마다. 극 중에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은 아무런 감정도, 동기도 없이 사람을 죽인다. 그럼에도 이들은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살인의 과정에서 흥분과 쾌감을 느꼈다고 진술한다. 비록 드라마였지만 그들의 잔인함이 치가 떨리도록 무서우면서도, 죄를 뉘우치지 않는 뻔뻔한 모습에 피가 거꾸로 솟을 만큼 분통이 터졌다. 소름 끼치도록 놀라운 것은 이 드라마의 시나리오는 실제 발생했던 사이코패스 범죄들을 모티브로 했다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반복적인 반사회적 행동과 공감 및 죄책감의 결여, 충동성, 자기 중심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전통적인 성격 장애 분류이다. 물론 이러한 증상이 필연적으로 범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충격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연쇄살인범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도 사이코패스에 해당된다고 하니 이와 같은 극단적인 사이코패스 범죄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위협적인 존재이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는 병리학적으로 선천적인 정신질환일까?


관련하여 미국 브루크 하멜 국립 연구소는 해부학적으로 사이코패스들의 뇌가 일반인들의 뇌와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사이코패스의 전두엽은 일반인들의 약 15% 정도밖에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고로 전두엽은 감정을 주관하는 부위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 무서움, 즐거움, 기쁨 등의 감정 요인에 반응하거나 공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타인의 공포나 고통에 무감각하다. 본인이 일으킨 범죄에 대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다시 말해 이들의 뇌는 감정을 느끼는데 매우 미숙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범죄 심리 전문가 이수정 교수는 "사이코패스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며, 감정적으로 냉담한 특징을 갖는 심리상태"라고 정의했다.



뿐만 아니라 2013년 영국 정신건강연구소의 니겔 블랙우드 박사는 사이코패스의 뇌에서는 전두피질과 측두극의 회백질 양이 비정상적으로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로 인해 그들은 감정이입이 불가하며, 죄책감, 두려움, 걱정 등의 감정 반응이 거의 일어나지 않게 된다고 한다. 또한 하버드 대학 제임스 팔론 교수는 사이코패스 70명의 유전자를 비교 분석해본 결과 사이코패스의 유전자 구조가 일반인과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했다. 바로 MAO-A라는 폭력 유발 유전자가 발현되면서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MAO-A 유전자는 공격성을 제어하고 감정을 가라앉혀주는 호르몬 세로토닌에 무반응을 보이게끔 한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더욱 극대화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증거들은 추론일 뿐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사이코패스가 명확하게 선천적인 정신질환임을 확증하기 어렵다.


전체 미국인 중 사이코패스의 비중은 1퍼센트로 추정되지만, 남성 사이코패스가 전체 재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분의 1 가량이다. 동정심과 양심의 가책이 부족한 이 재소자들은 평균적으로 마흔 살 이전에 폭력 범죄로 네 번이나 유죄 판결을 받는다. 이들의 뇌는 '증오'나 '사랑'같은 단어들을 보통 사람들의 경우와는 다른 영역에서 처리한다. 정서를 담당하는 영역이 아니라 오로지 언어만을 담당하는 영역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 후안 엔리케스, <무엇이 옳은가>, p79 -


자,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자.

첫째, 가까운 미래에 뇌과학과 의료기술이 발달하여 병리학적으로 사이코패스가 명확하게 선천적인 정신질환임이 확인되었다고 치자. 즉, 이들은 잔인한 살인자임과 동시에 선천적인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인 것이다.

둘째, 진단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건강검진과 같은 뇌 CT나 호르몬 검사만으로도 사이코패스를 비교적 간단하고 정확하게 진단해낼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하버드 대학교의 최고의 교수 중 한 명으로 선정된 후안 엔리케스는 그의 저서 <무엇이 옳은가>에서 위와 같은 경우 그동안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윤리적 이슈가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잠재적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의 행동을 보다 잘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선제적 행동을 취해야 할까? 미래엔 어떤 사람의 전대 상피질이 얼마나 손상되었는지를 보고 그 사람의 억제 능력과 공격성을 예측하는 게 가능해지지 않을까? 아니면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의 손상 정도나 편도체 이상을 살펴보는 것으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 만일 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으로 사이코패스들을 가려낼 수 있다면 어떨까?
 
■ 유죄가 입증되기 전까진 결백이 보장되는 걸까, 아니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될까?
 
■ 잠재적 범죄 행동은 실제 범죄 행동과 동일하게 처리되어야 할까? 그렇다면 얼마나 공격적으로 처리되어야 할까?

■ 만약 사이코패스의 뇌 배선을 바로잡는 기술이 발명된다면 사회는 사이코패스의 뇌를 강제적으로 바꿔야 할까?

- 후안 엔리케스, <무엇이 옳은가>, p81 -


조금 더 문제를 첨예하게 다루기 위해 상황을 더 복잡하게 꼬아 보자.

예를 들어 사이코패스로 진단받은 A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현재까지는 아무런 범죄행위를 일으키지 않았다. (실제로 사이코패스의 범죄율은 9~10% 수준이라고 한다.) 다만 앞서 말했듯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인 정신질환임이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진 상황이다. 그리고 의료계는 사이코패스라는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법을 개발했다고 치자. 단, 물리적인 뇌 수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수술이며 생존율은 50% 미만이라고 해보자. 이 상황에서 우리는 A에게 치료 수술을 강제해야 할까? 누군가의 생명에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근거로 개인의 생명을 담보해야 하는 수술을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맞는 처사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갔다가 만약 A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 나오는 것처럼 아주 잔인무도한 연쇄살인범이 되어 버린다면? 자, 만약 당신이 관련 법안을 제정해야 하는 정책당국이라면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지 않은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오늘날의 기술은 한층 더 많은 도구를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이다. 오랜 믿음과 행동을 바꾸도록 우리에게 엄청나게 무거운 압박감을 주는 도구들을 말이다. 이런 시대적 현상은 사회에서 수용되고 있는 관념과 정치를 계속해서 위협할 것이다.

- 후안 엔리케스, <무엇이 옳은가>, p314 -


이처럼 후안 엔리케스 교수의 책 <무엇이 옳은가>는 가까운 미래에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발생할 수 있는 어렵지만 매우 중요한 윤리 이슈들을 다양한 분야의 사례를 통해 다각도로 조명한다. 앞서 이야기한 사례에서도 살펴보았듯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기존에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윤리적 딜레마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혹은 어떤 방면에서는 현재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윤리와 상식의 기준을 180도 반대로 뒤집어 놓기도 할 것이다.


윤리적 변화를 급격하게 추동하는 가장 큰 동력들 중 하나는 기술이다. 기술은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안들을 제공한다. (중략) 기술은 윤리를 바꾸어 놓는다. 그러니 오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 후안 엔리케스, <무엇이 옳은가>, p16 -



사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늘 윤리의 변화를 초래해왔다. 다만 문제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 속도를 사회문화적 윤리 인식, 법률과 정책적인 제도 변화의 속도가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갈수록 다양한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맞닥뜨릴 새로운 윤리 문제들은 지금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다. 이에 따라 후대는 현재의 다양한 윤리, 법, 제도들을 끊임없이 심판대에 올릴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지금 우리는 기술이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바뀌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현재는 윤리가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바뀌는 시대란 뜻이다.

- 후안 엔리케스, <무엇이 옳은가>, p19 -


사실 이 책을 읽는 동안 조금은 불편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지만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 윤리적 기준이 이렇게도 진화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부분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뾰쪽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 윤리적 문제들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 책은 고전적인 학문적 차원의 책이나 확실성을 제공하는 책이 아니며 옳은 해답을 주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나면 여러분의 머릿속에선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날 것이다. 그에 대한 옳은 해답은 내게 없다. 아니, 그 해답을 갖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 후안 엔리케스, <무엇이 옳은가>, p21-


하지만 이런 반응은 대개 좋은 책을 읽을 때 나오는 증상이기도 하다. 독서를 하며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은 굳건히 닫혀있던 폐쇄적인 개인의 세계관에 어떠한 균열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책의 다양한 질문과 공격을 방어해내면 나의 세계관은 그만큼 더 강해진다.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깨지더라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 딱 그만큼 나의 세계관이 더 넓고 크게 확장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후안 엔리케스 교수는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기술과 윤리의 변화에 대해 더욱 겸손하고 상대적인 태도를 가지길 바라며,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고 깊게 생각해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것만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보다 윤리적이기 위해,  조금이나마  올바른 기준을 확립하기 한 방법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갖추어야  덕목이자 건강한 인간성, 시민사회를 유지하기 지켜내야 하는 가치이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무슨 까닭으로 이 책을 썼을까? 내가 바라는 것은, 나 아닌 다른 똑똑한 사람들이 우리가 당연시하는 현재의 상태에 의문을 품고, 윤리적 딜레마들을 주제로 생각과 토론을 하는 것이다.

- 후안 엔리케스, <무엇이 옳은가>, p21 -




본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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