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는 나만의 의식
2025년 1월 1일.
역시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다.
나에게는 나름대로 새해를 맞이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 있다. 매년 새해 첫날 모두가 잠들어 있는 깜깜한 새벽을 찢고 일어나는 것. 그러고는 매일 발붙이고 있는 땅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높이 떨어져 있는 곳에 올라가는 것. 그렇게 부지런히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두 눈에 고스란히 담아 오는 것이 새해를 맞이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꼭 새해 첫날이 아니더라도 나는 365일 매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찍 일어나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일 년의 90% 이상은 ‘마음만’ 먹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데 그러한 날들 중에서도 어떤 날은 아침이 밝아오는 것이 죽을 만큼 싫은 날도 있다. 어찌 인생이 1년 내내 즐겁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때로는 동이 트면 커튼 사이를 비집고 기어이 들어오는 햇빛이 초라한 내 주위를 구석구석 비추는 것 같아서 힘든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눈뜨자마자 기분 나쁜 부정적인 감정들이 복병처럼 숨어있다가 한꺼번에 밀려들어 온다. 그런 날은 대부분 나와 연관된 모든 관계, 내가 하고 있는 일과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복잡하게 엉켜서 가슴을 콱 누르는 것만 같아 도저히 이불을 박차고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어느덧 35년 정도를 살아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세상의 이치를 얄팍하게나마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뭐 현명한 철학자나 심오한 종교인처럼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내 마음과 상태가 어떠한들 떠오르는 태양은 그런 나를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태양은 어제 그러했듯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것이다. 그저 매일 아침 떠오르는 것 말이다.
태양도 그렇게 매일 정해진 시간에 떠오르는데, 나라고 별 수 있을까?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숨어버리거나, 어딘가로 멀리 도망치고 싶더라도 나는 또 일어나서 나의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매달 내야 하는 대출이자도 갚을 수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마주 앉아 오늘 하루는 어떠했는지 물으며 따뜻한 밥 한 끼를 먹는 소소한 일상들을 지켜낼 수 있다. 그래서 뜨는 해를 마주하는 게 힘든 날이 오더라도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면서 일상을 유지하는 법을 계속 배워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적어도 새해의 첫날만큼은 떠오르는 태양보다 내가 조금은 일찍 일어나서 그를 먼저 기다리는 하루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마음을 강인하게 먹고 결연한 의지로 무장하는 대단한 결심이나 각오가 아니다. 언젠가 또 들이닥칠 힘든 일상을 버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저 단순한 의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루틴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하다. 365일 중 딱 하루가 될지언정 매년 새해의 첫날만큼은 떠오르는 태양보다 먼저 일어나 그를 맞이하는 것. 나는 그러한 형식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새해를 시작하면 내 인생의 통제권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분명 살다 보면 또 꺾이고 부러지고 넘어질지언정 일 년에 최소 단 하루만큼은 온전히 내 의지대로 살아냈다는 것. 그것이 다음 날의 나를 살게 한다.
오늘은 2025년의 첫 날인 1월 1일. 일출 예정 시간은 오전 7시 46분이다.
이번에도 정확히 7시 46분에 동네 뒷산 정상에 도착했다.
저 멀리 하늘 끝에서 뉘엿뉘엿 주황빛이 올라오다 어느새 구름이 노란색으로 스멀스멀 물들어간다.
재개발 지역이었던 공터에 높은 아파트들이 올라와서일까? 8시 20분이 되어도 해는 보이지 않는다. 딱 10분만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스스로 정한 마지노선인 8시 30분이 지나도 해는 보이지 않아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괜찮다.
올 해의 시작점에서 나만의 의식을 잘 치러냈으니 2025년도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때로는 떠오르는 태양이 야속한 날도 있겠지만, 오늘처럼 단 하나라도 온전히 나의 의지대로 해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면 이 삶을 이겨낼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다.
아파트 정문에 다다르니 저 멀리 높은 건물 사이로 태양이 삐쭉 얼굴을 드러낸다.
이번에도 역시 먼저 나와서 기다렸느냐고, 앞으로도 잘 해내라고 담담히 응원해 주는 것 같다.
왠지 올 한 해, 느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