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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ovator Jun 07. 2020

ep02. 도착! NewYork, NewYork

<인생수업>, Live, Learn, Love, Laugh

희망차게 여행하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좋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Jason


드디어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정말 오랜만에 타보는 비행기다. 중간중간 창문을 열어 바깥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에 2층 중간 창가 자리로 자리를 잡았다. 좌석에 앉자마자 간단한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족 휴가를 떠나는지 잔뜩 신이 난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들, 출장을 가는지 멋진 네이비 슈트를 차려입은 젊은 신사, 최대한 가벼운 복장을 하고 커다란 배낭을 짐칸 위로 올리고 있는 여행자, 영자신문을 읽고 있는 외국인 노부부, 우는 아기를 어떻게든 달래 보려고 난감해하는 젊은 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뉴욕까지의 긴 비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시아나 항공의 OZ222 탑승을 환영합니다. 뉴욕 JFK 공항까지의 비행은 14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승무원의 기내 방송이 나왔다. 승무원의 요청대로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설정한 뒤 안전벨트를 꽉 조여 메었다. 곧이어 비행기는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천천히 이동했다. 잠시 후 활주로를 찢어 놓을 것처럼 미친 듯이 빠르게 굴러가는 비행기 바퀴가 엄청난 소음을 터뜨리며 활주로를 내달렸다. 흔들리는 기체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긴장하여 손잡이를 꽉 쥐었다. 몸이 상공으로 붕 떠서 하늘 위를 유유히 날기 시작하자 이내 마음이 안정되었다. 기압차 때문에 먹먹해진 귀를 트고자 턱관절을 아래로 쭉 늘어뜨리며 크게 하품을 몇 번 했다. Jason은 그런 나를 보며 피식 웃더니 내 쪽으로 팔을 뻗어 창문을 위로 열어젖혔다. 비행기를 많이 타보지 않은 촌놈 티를 내지 않으려고 괜히 머리를 긁적이다 창문 밖을 바라봤다.


"밖에 좀 봐봐 희쓰 (Heath)"



좁은 기내 창문 사이로 펼쳐진 하늘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마치 파란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누군가가 일부러 뭉쳐놓은 듯한 몽글몽글한 구름을 가르는 비행기 날개도 보였다. 어느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작은 액자에 걸어놓은 것처럼 창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넋을 놓고 한참 동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14시간이라는 긴 비행동안 창문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 그리고 햇살이 창문 틈 사이로 강하게 쏟아지고 있었기에 다른 승객의 휴식에 방해가 될까 봐 창문을 아래로 내렸다. 앞 좌석 등판에 꽂혀있는 기내 면세점 상품 리스트와 잡지를 꺼내 보다가 탑재된 기내 태블릿을 이것저것 눌러보기도 했다. Jason은 승무원에게 위스키 한 잔과 스낵을 요청했다. 여행을 많이 다녀본 티가 나서 아무것도 아닌데 멋있어 보였다. 그와 반면에 나는 비행기 서비스의 시스템을 잘 몰랐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어색한 티가 안 나도록 같은 것을 달라고 정중히 말했다.


우리는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앤드류 매튜스


술을 한 모금 홀짝이며 Jason에게 물었다.


"Jason 너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어떤 것을 얻었으면 해?"


이번 여행이 끝나면 Jason은 뉴욕에서 새로운 삶의 둥지를 꾸려갈 예정이었다. 그러면 한국에서처럼 아무 때나 편하게 Jason을 만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어쩌면 Jason과 떠나는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뉴욕 여행이 나에게도, Jason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멋진 추억이 되길 바랬다. 그러려면 이번 여행을 하게 된 동기와 기대를 서로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Jason에게 여행을 떠나는 시점으로부터 1년 전, 그러니까 2018년은 굉장히 다사다난한 해였다. 그는 외국계 브루어리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했고, 본인이 하고 싶었던 분야를 새롭게 배워 나가는 과정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월급이 전 직장에 비해 많이 줄어서 어느 정도는 생활에 제약이 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Jason은 줄어든 수입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주식을 공부하며 투자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재테크에 실패하여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꽤나 많이 잃었다고 했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지자 Jason은 마음의 여유를 잃어갔고, 심리적으로도 크게 위축되었다. 많은 것을 잃고 나자 Jason은 문득 "대체 무엇 때문에 내가 이렇게 전전긍긍하면서 살고 있는가?"라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이번 여행을 통해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하게 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앞으로의 삶을 꾸려갈 동기와 목표를 찾고 싶다"라고 말했고 "뉴욕에서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기대된다"라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입사원 시절 회사 선배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직장인에게는 369의 법칙이 있는데, 그 의미는 입사 3년 차, 6년 차, 9년 차가 가장 힘든 시기라고들 한다고... 당시 입사 4년 차에 접어든 나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업무에 익숙해지면서 생긴 물리적, 심적 여유 사이로 스스로가 던진 철학자 같은 질문들이 내 삶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나는 누구지?",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인가?", "내 인생,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등 평소에는 복잡해서 치워놓고 있던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밀린 숙제처럼 밀어닥쳤다. 어떤 날은 회식자리에서 과장님들, 차장님들과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그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들은 자조 섞인 목소리로 술잔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참 빨라. 바쁘게 살다가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이렇게 늙어가고, 어릴 땐 나 좋다고 그렇게 엉겨 붙던 자식 놈들은 사춘기가 돼서 이제 나는 거들떠도 안 보고... 나도 너처럼 젊었을 적엔 꿈이 참 많았는데 말이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쏜 살같이 허무하게 지나가는 시간들이 무서워졌다. 스스로 잘 살고 있는 건지 끊임없이 자문할 때마다, 그럴듯한 대답을 찾아내느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학생의 신분을 졸업하고 사회인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지 어느덧 4년. 첫 출근 날에는 아버지가 넥타이 메는 법을 가르쳐 주셨었고, 적당한 매듭 길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모르기에 몇 번을 고쳐 메야했었는데... 지금은 매일 아침 급하게 일어나 눈감고도 멜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다. 하지만 능숙해진 넥타이 매는 실력과는 달리 인생은 30년을 살아도 당최 모르겠다.


매출 실적 보고자료에 어떤 그래프를 어디에 넣고 차트 색상은 무엇을 쓰는 게 좋은지를 공식처럼 알게 되었으나, 내 인생은 복잡한 연립 방정식처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희쓰 (Heath), 그럼 너는 이번 여행에서 뭘 얻고 싶어?"


Jason의 물음에 답했다.


"나도 너와 마찬가지야. 그동안 미뤄왔던 중요한 숙제들, 뉴욕에서 같이 한번 풀어보자고."


여행에서 지혜를 얻어 돌아오고 싶다면, 떠날 때 지식을 몸에 가지고 가야 한다. - 사무엘 존슨


Jason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위스키를 두 잔 정도 마셨을까? 독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며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흐르자 녹아내리듯 나른해졌다. 어제 잠을 많이 못 자고 새벽같이 일어난 탓에 몸은 피로했지만 정신은 새로운 경험과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말똥말똥했다. Jason은 피곤한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나는 가방에서 여행 때 읽으려고 챙겨 온 책들 중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가 쓴 <인생수업>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나의 인생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어렴풋하게나마 찾고 싶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인생'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Life = 4L (Live + Learn + Love + Laugh)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퀴블러 로스는 호스피스 의사이다. 그녀는 죽음을 눈앞에 둔 수백 명의 환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죽음을 통해 삶을 재조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통찰, 삶에 대한 메시지를 이 책에 녹여놓았으니, 나의 여행의 목적이었던 '인생'에 대한 고찰을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었을 것이다. 책에서 작가는 인생의 작별을 눈앞에 둔 101명의 인터뷰어들이 말하는 삶에서 배워야 할 것과 삶이 가르쳐주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역설적으로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책에서 깨달은 바를 한 줄로 정리하자면, 'Life = 4L (Live + Learn + Love + Laugh)' 정도가 되겠다. 저자는 우리의 인생이 행복하고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오늘을 최대한으로 살아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배우고, 사랑하고, 웃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독자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나는 비행기에서 책을 완독 한 후, 책의 핵심 내용을 더욱 구체화하여 빈 페이지에 이렇게 써놓았다.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 것

삶을 긍정적인 느낌으로 가득 채울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것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화,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나가는 용기,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좇을 것

두려움이 아닌 사랑을 할 것

작은 순간들에서 행복이 찾아옴을 인지하고 노력할 것

용서할 것


국경을 지나는 대양 위의 광활한 상공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비행기에서 첫 번째로 펼쳐 든 책, <인생수업>을 통해 짧지 않았던 비행시간 동안 나의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나아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어렵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서도 보다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Cherish Yesterday, Dream Tommorow, Love Today


이렇게 비행기에서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고 여행을 하다 보니 여행을 하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이전 여행들과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이후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상세히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나와 Jason은 뉴욕에서, <인생수업>의 핵심 메시지들을 여행하는 내내 곱씹으며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하는 매 순간마다 깨달음과 통찰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연스레 여행하는 모든 순간에서 행복한 감정이 배가 되어 보다 풍성하게 자리 잡았다.


일례로 나와 Jason은 뉴욕 여행 일정 중 3일을 보스턴에서 머물렀다. 보스턴에서는 한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지냈는데, 숙소의 대문 앞에는 아기자기한 글자체로 수놓아진 펠트 인테리어 소품이 있었다.


보스턴에서의 둘째 날, 나는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대문을 열다가 잠시 멈춰서 액자에 적힌 글자를 되새겼다. 그리고 나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번졌다.



'Cherish Yesterday, Dream Tommorow, Love Today'


비행기에서 읽은 <인생수업>에서 말하는 행복한 삶을 위한 원칙과 정확히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 문구를 바라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맞아. 앞으로의 여행도, 그리고 내게 주어진 인생도 반드시 이렇게 살도록 하자."


만약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런 작지만 소중한 교훈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 출국하던 날, 비행기에서 이야기했던 '뉴욕 여행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것들'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었을까? 이렇게 책 한 권이 나의 여행을 보다 값진 시간으로 만들었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그때 비행기에서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운명 같은 선물이었다.


New York, New York -Frank Sinatra


몇 시간 잠을 자지 않은 상태로 비행기에서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눈두덩이에 미세한 고통이 느껴지면서 머리가 묵직해지고 목이 뻐근했다. 잠을 청하기 위해서는 술이 필요했다.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듯 승무원 분에게 시원한 맥주를 한 캔 준비해주실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단 몇 모금에 벌컥벌컥 맥주를 다 마시고는 안대를 쓰고 잠을 청했다. 중간중간 깨어서 Jason과 이야기를 나누고 태블릿으로 영화도 한 편 보다 다시 잠을 잤다. 이를 몇 차례 반복하던 중 Jason이 상기된 목소리로 나를 흔들어 깨웠다.


"희쓰 (Heath)! 얼른 일어나서 저 창 밖좀 봐!"


안대를 벗고 창밖을 바라보자 갑자기 들어오는 햇살에 몇 초 동안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흐릿한 눈에 점점 초점이 돌아오면서 거짓말처럼 섬 위에 위치한 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뉴욕의 빼곡한 빌딩들은 하늘을 찌를만큼 굉장히 높다고 들었는데 비행기에서 바라보니 작은 장난감 레고들 같아 보였다.



"와... 뉴욕, 뉴욕... 정말 뉴욕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 순간을 보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어서 에어팟을 귀에 꼽고 Youtube music에서 미리 다운로드하여 놓았던 노래 'New York, New York'을 틀었다.


이 노래를 부른 Frank Sinatra는 1915년에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뉴욕으로 정착한 이탈리아 출신으로 1940년대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가수다. 이런 그가 부른 뉴욕 예찬곡, New York New York은 단언컨대 뉴욕 땅으로 착륙을 준비하는 비행기 안에서 듣기에 가장 어울리는 곡이다.



Jason과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낀 채, 쿵쾅거리는 가슴을 감추지 못하며 들었던 이 노래는 우리의 뉴욕 여행의 서막을 멋지게 장식했다.


New York New York - Frank Sinatra

Start spreading the news, I'm leaving today
(오늘 내가 떠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I want to be a part of it - New York, New York
(나는 뉴욕의 일부가 되고 싶어 - 뉴욕, 뉴욕)

These vagabond shoes, are longing to stray
(이 방랑자의 신발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길 바라고 있어)

Right through the very heart of it - New York, New York
(뉴욕의 심장부를 가로질러서 말야 - 뉴욕, 뉴욕)

I want to wake up in a city, that doesn't sleep
(잠들지 않는 이 도시에서 깨어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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