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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ovator Jun 15. 2020

ep.03 볼 수 없어도 느낄 수 있는 뉴욕

뉴욕에서 만난 천상의 목소리

희망차게 여행하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좋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드디어 JFK 공항에 도착했다. 당신이 예상했듯이 JFK 공항은 John F. Kenedy의 약자다. JFK 공항은 1943년에 착공하여 1948년에 공식적으로 개항했다. 원래 초창기에는 뉴욕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1963년, 미국의 존경받는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한 이후, 그를 추모하고 영원히 기리고자 JFK 공항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입국 수속을 준비했다. 뱀처럼 길게 줄지어 선 행렬에 합류했다. 언제가 될 지 모르는 내 차례를 기다리며 공항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항의 천장에는 미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과 문화적으로 의미를 지니는 장면들이 화판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Jason은 각각의 그림이 의미하는 바를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한참동안 Jason의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덧 내 차례가 코 앞에 다가왔다. 미국 땅을 처음 밟아보는 나는 머릿속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되지도 않는 영어로 문장을 짜맞추고 있었다. 내 앞에는 50~60대로 추정되는 어머님들께서 들뜬 마음으로 한국어 발음으로 쓰여있는 영어 문장들을 암기하고 계셨다. 그렇다. 수많은 이민자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미국이라는 땅은 역설적으로 병적으로 여겨질 만큼 잠재적 불법 이민자들의 입국을 필터링하고자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혹여나 이 사람이 미국 땅에 발을 들이고 불법으로 체류하진 않을까 우려하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심문했다. 그 날카로운 질문들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준비가 필요했다. 긴장하고 있는 나에게 Jason은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만 믿으라며 나를 다독였다.


우리를 심문한 JFK 공항 직원은 흑인 남성이었다. 그는 나보다 앞에 서있던 Jason에게 매서운 눈빛으로 날카롭게 물었다. "미국에는 무슨 일로 왔어?" Jason은 편한 표정으로 자연스레 대답했다. "사실 나는 NFL (미식축구 리그) 팬이야!, 시즌의 시작 전에 뉴욕에서 시범경기를 보고 싶어서 왔어!", 빠르게 머리부터 발 끝까지 우리의 모습을 스캔하던 직원은 이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면서 물었다. "너 혼자 온 거야?". Jason은 나를 가리키며, "아니, 내 친구랑 같이 왔어!". 직원은 역시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래? 너도 이리 와서 여권을 나에게 보여줘".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한참 고민했던 나는 허무하게도 그 어떤 질문도 받지 못한 채 여권을 내어준 뒤, 너무도 쉽게 입국 심사에서 통과했다. 인사를 하고 등을 보이고 멀어지려는 우리에게 그는 말했다. "너네는 혹시 어느 팀의 팬이니?", Jason은 "나는 사실 Boston의 Patriot 팬이야, 비록 우리는 그 팀의 경기를 볼 수 없지만, Newyork Mets의 경기를 볼 거야!"라고 말했다. 그 직원은 "오~! 나의 형제여! 즐거운 관람이 되길 바라! 뉴욕에 온 걸 환영해!"라고 웃으며 말해줬다.


입국 심사를 무사히 마치고 우리는 부쳐놓은 캐리어를 찾아 뉴욕의 공항 철도로 향했다. 한국과 크게 다를 것 없은 광경이었다. 퀴퀴한 먼지 냄새를 빼고는... 잠시후 커다란 소음을 내며 전철이 들어왔다. 지하철 좌석 한 켠에 나란리 엉덩이를 붙이자 마자 나는 창가에 코를 박고 바깥 광경을 바라 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 하나 하나가 인상적이었다. 짙은 적색의 벽돌로 둘러쌓여 있는 공장처럼 보이는 건물이 빠르게 지나가더니, 이내 영화에서나 보았던 녹음이 푸르른 잔디밭 마당을 지닌 흰색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와 진짜 미국 집들은 이렇게 생겼구나..." 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이, 고개를 돌리자 Jason은 어느 동양인 가족들과 열띤 대화를 하고 있었다. 누가봐도 우리와 같은 여행객 차림의 중국인 가족들이었다. 그들은 영어를 못하는지, 손짓을 섞어가며 빠른 중국어로 쉴새없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Jason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열심히 영어로 설명을 하고 있었으나, 그들은 Jason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재빨리 구글 번역기를 꺼내 들었으나, 그들은 포기한 듯 "땡큐, 땡큐"를 외치며 다음 역에서 내렸다. 부디 그 중국인 가족들이 즐거운 여행을 했길...







그때 갑자기 다음 역에서 레게 머리를  2명의 청년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우리가 있는 칸으로 들어왔다. 신나는 비트가 달리는 지하철의 소음을 덮어 버렸다. 갑자기  무리   명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듯  소리로 목청껏 외쳤다. ", 다들 주목해봐! 지금부터 이 친구를 !" 그의 소개말이 끝나기도 전에 흰색 나시티를 입은 울퉁불퉁한 청년  명이 자리에서 뛰어오르며 신명 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빠른 비트로 박자를 쪼개는 음악 소리에 맞추어  청년은 지하철 내부의 봉을 잡더니 공중제비를 돌았다. 놀라웠다. 아니 당황했다. 어느 유명한 래퍼의 뮤직비디오에나 나오던 모습들이   앞에 펼쳐졌다. Jason 내게 '뉴욕에서는 흔히   있는 풍경이니, 긴장 풀고 그들의 공연을 즐기라며' 박수를 치며 그들을 응원했다. 우리 또래이거나 혹은 조금  어려 보였던 그들은 다음 역에 도착할 때까지 열심이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공연비를 선뜻 내주지 않았지만,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우리의 춤을 봐줘서 고마워! 뉴욕에   환영해!"라고 외치며 그들은 다음 역에서 내렸다.




우리가 묵기로 한 숙소는 센트럴 파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Jazz On Colombus'라는 도미토리였다. 말도 안 되게 비싼 물가의 뉴욕에서 동양인 총각 두 명이 호텔에 묵는 것은 사치나 다름없었다. 물론 무리하고자 하면 호텔을 예약할 수도 있었지만, Jason은 뉴욕에서는 무조건 도미토리에 묵어야 한다며 나를 설득했다. 그는 도미토리에 묵으면서 수많은 외국인 여행자들과 네트워킹을 쌓을 수 있으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기를 믿고 따라오라고 했다. 끙끙거리며 무거운 캐리어를 옮겨서 겨우 역 앞으로 나가자 눈 앞에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이 펼쳐졌다.


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높은 하늘에 닿을락 말락 두 손을 쭉 치켜든 것처럼 보이는 맨해튼의 마천루들은 마치 "봤지? 이게 뉴욕이야."라고 말하는 듯 내 앞에 근엄하게 버티고 서있었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보았다.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건물들이 푸른 하늘을 사각형 모양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정말 말로만 듣던 별천지에 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한 여름의 뉴욕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무거운 캐리어를 덜컹거리면서 수많은 인파 속을 헤쳐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옆 사람과 부딪힐라 조심스레 한 발씩 옮겨 갈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온몸을 덮었고 이내 온몸은 땀으로 샤워를 한 듯이 꿉꿉해졌다. 거리 한편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봉투 사이를 비집고 나온 음식 찌꺼기들은 벌어진 틈새 사이로 알 수 없는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쓰레기 냄새가 강력한 소독약과 뒤섞인 난생처음 맡아보는 이상한 냄새가 후각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거리의 한 켠에서는 한 무리의 흑인들이 담배처럼 생긴 무언가를 '뻑-뻑-' 태우며 연기를 내뿜었지만, 그 냄새는 담배냄새가 아니었다. 오히려 비린 풀냄새 같은 향이 느껴졌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냄새의 정체는 대마 냄새라고 한다. 이 같은 거리의 악취에 나도 모르게 입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뉴욕은 이게 어울린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는 빌딩의 계단 끝에서 구멍 뚫린 바지를 입고 앉아 있는 거지가 초점 없는 눈빛으로 ‘Change(잔돈)’하면서 검은 피부색 때문에 유달리 하얘보이는 누런 손을 내민다. 그 옆으로 선글라스를 머리띠처럼 이마에 걸친 금발의 젊은 백인 여성이 어디론가 바삐 걷고 있다.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는 명품 브랜드 로고가 크게 박힌 백이 들려 있고, 양손에는 Masys라고 쓰여있는 커다란 쇼핑백이 한가득 들려 있다. 역설적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의 계단 난간에는 노숙자가 누워있었고, 그들 옆으로 할리우드 배우처럼 멋지게 치장한 금발 여성이 바삐 지나가는 모습.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 정신없는 북새통에서 나를 보긴 했을까?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신호등은 분명 빨간색인데, 사람들은 신호가 바뀌든 말든 얼룩말 무늬 같은 횡단보도를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복잡한 거리에는 사람과 자동차가 뒤엉킨 채로 도로 한복판을 점유하고 있고, 기념품을 팔고 있는 거리의 상점들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뉴욕의 거리는 좋은 말로 역동적이었고, 나쁜 말로 난장판이었다. 머리 위로는 대체 발디딜 곳 없는 이 거리에 또 무엇을 짓고 있는 것인지 공룡의 뼈처럼 앙상한 철근들이 가로 세로로 엉킨 채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하지만 뉴욕의 거리는 차가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이로 내리쬐고 있는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졌고, 거리에는 각자의 사연을 가진 듯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 나 또한 그들 중 하나로서 뉴욕이라는 풍경의 한 곳을 장식하고 서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결코 이상해 보이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눈앞에 펼쳐진 기괴한 광경 앞에 넋을 잃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한 10분을 걸었을까? 어느덧 Jason은 정신 차리고 이리로 들어오라며 내 팔을 붙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가 묵기로 한 숙소의 로비 앞이었다. 숙소를 관리하는 매니저는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벽에는 뉴욕 지도가 붙어 있었고, 관광 명소들의 사진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로비 옆에는 히잡을 둘러 쓰고 있는 아랍 여성이 지팡이를 두 손에 쥐고 앉아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 헬렌켈러


그녀는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이 곳에 처음 묵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잠시 이 곳의 매니저가 자리를 비웠으니 짐을 내려놓고 기다리라고 친절하게 말해줬다. Jason은 캐리어 위에 걸터앉아 자신을 소개했다. 난생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나를 소개하려니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머리가 하얘졌다. 그녀는 나의 그런 마음을 이해했는지 먼저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을 소개했다. 본인은 이스라엘에서 왔고, 몇 달 전부터 미국을 일주하고 있다고 했다. 뉴욕에 묵은지는 한 달가량 되었고 그 전에는 미국의 서부를 일주했단다. 그녀는 뉴욕은 정말 놀라운 도시라고 말했고, 마치 원래 이 곳에 살았던 사람처럼 뉴욕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맑은 두 눈은 우리를 보고 있지 않았다.


하염없이 매니져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녀는 자신이 전화를 해볼테니 잠시 기다려보라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서 거의 코에 화면이 닿을락 말락하게 얼굴 가까이 붙여대고는 문자판에서 번호를 찍고 있었다. 힐끗 보았을 때, 문자판은 일반 휴대폰과 달리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커다란 숫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녀는 숙소 매니져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새로운 게스트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와서체크인을 도와달라고" 유쾌한 목소리로 친근하게 말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어색해진 공기를 느꼈는지 그녀는 자신이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가수라고 소개했다. 그러고는 맑고 청량한 목소리로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텅 비어있던 로비에 아름다운 멜로디가 쩌렁쩌렁 울리며 어색한 공기를 가득 채워놓고 있었다. 이름 모를 노래의 한 소절이었지만 그 짧은 곡조의 조각은 듣는 이로 하여금 마치 영혼이 맑아지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이내 수줍어하며 이렇게 말했다. "맞아요, 나는 시각 장애인이에요. 두 눈으로 담아낼 수 없지만 뉴욕이라는 도시는 정말 아름다워요. 분명히 난 느낄 수 있어요. 나는 이 곳에서 수많은 영감을 받고 있어요. 분명 당신들도 이 곳에서 멋진 경험들을 가득 담아 갈 거라고 확신해요."


잠시 동안이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동정하려고 했던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그녀에게 미안해졌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어리석은 잣대로 그녀를 동정하려고 했던 것은 폭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뉴욕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선명한 시야로 뉴욕의 웅장하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담아내진 못하더라도, 그녀는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가슴 깊숙이 새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녀가 뱉어낸 선물 같은 짧은 곡조에서 그 모든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되려 우리에게 눈이 아닌 가슴으로 뉴욕을 느끼라고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라틴계 미국인으로 보이는 매니저가 웃으며 복도 끝에서 우리를 맞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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