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렴 뭐 어때? 내 게임이고 내 인생인걸?"
골프를 시작했다. 사실 나는 평소 운동신경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운동장에서 핏대 세우고 몸을 부대끼며 공을 차는 것보다 벤치에 앉아서 구경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니 친구들은 당구장을 기웃거렸다. "당구는 혹시...?"는 웬걸... 역시나 당구에도 소질이 없었다. 그래도 왠지 당구장에서 큐를 잡으면 어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패자는 카운터로... 매번 게임을 질질 끌다가 결국 지갑을 여는 사람은 나였고 대학생은 가난했다.
그런 내가 골프를 치는 이유는 적어도 어느 정도 사람처럼(?)은 치는 듯 보이기 때문이며, 다행히 타고난 운동신경이 승패를 좌우하는 스포츠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또래 친구들 역시 이제 막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탓일 수도)
하지만 참 이상하다. 친구들과 스크린 골프장에 가서 볼을 칠 때면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진다.
마음이 급해져서 뒤땅이라도 치면 골프채에 온전히 전해지는 충격과 진동이 손목을 지나 팔꿈치와 어깨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아픔은 흔들리는 마음이다. 한번 실수가 시작되면 넘어진 도미노처럼 다음 홀도 실수의 연속이다.
"분명 연습장에서는 잘 맞았는데..."
머쓱하게 자리에 들어와 앉으면 다음 타석에 선 친구가 멋지게 시원한 샷을 날린다.
"나이스 샷!"
박수를 치면서도 내 마음은 더욱 조급해진다.
'이번에 또 실수하면 점수 격차를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중압감 가득 찬 공기가 무겁다.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봐 친구들은 숨마저 죽이고 스크린을 조용히 지켜본다.
"탁!"
둔탁한 소리. 분명 공을 때렸다기보다는 30% 이상은 땅을 때린 것과 다름없는 소리다.
그렇게 되면 이미 이 게임은 100타는 넘긴 것이나 다름없다.
골프는 타인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라던데...
한번 상대방과의 스코어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조급해진다.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게임에 되지도 않는 힘이 들어가 근육이 경직된다. 괜스레 장비 탓을 해보면 마음이 좀 편해질까 싶어서 골프채 가격을 알아보다가 택도 없는 가격에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후우-' 크게 한숨 내뱉는다. 맘처럼 되지 않는 게임에 자책하며 답답해하다가 이내 게임을 포기해버리고 만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골프는 1홀부터 18홀까지 오롯이 내 게임이다. 상대방이 잘 치건 못 치건 우직하게 내 갈길을 가야 하는 게임인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 인생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다. 잘 풀리건 안 풀리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내 갈길을 가면 된다. 그런데 자꾸 주변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불행의 그림자가 킬킬대며 스윽 고개를 내민다. 골프에서도 인생에서도.
우리가 프로 선수도 아니고 뭐하러 씩씩거리며 스트레스까지 받으며 공을 쳐야 할까? 하다 보면 삐끗해서 OB가 날 수도 있고 Hazard zone에 빠질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냥 "허허" 웃으며 툭툭 털어내고 다음 홀을 준비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또 공이 안 맞으면? 그렇다고 짐 싸들고 집에 갈 것인가? "에라 잇 이것마저 내 게임이지. 다음에는 이렇게도 쳐보고 저렇게도 쳐봐야지" 하면 그만이다.
역시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떻게 우리 삶이 항상 즐겁고 행복한 일만 있겠는가. 인생 앞에서 우리 모두 뾰족한 수는 없다. 그냥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서 걸어야지 뭐. 잘 안 풀리면 잠시 쉬어가거나 돌아서 가면 그만이다. 저 앞에 가는 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씩씩거린다고 능사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골프도 인생도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남들과 비교하기보다 오롯이 나의 길을 간다는 마음으로 대하면 조금은 더 즐겁게 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내일 치는 볼은 기왕이면 더 멀리, 더 똑바로 갔으면 한다.
하지만 어디 골프랑 인생이 내뜻대로 되겠나?
아무렴 어떠하리! 그냥 머쓱해하며 툭툭 털고 다음을 준비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