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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ovator Oct 06. 2021

ep.o4 뉴요커식 인사법

뉴요커들에게 배운 선물 같은 습관

우리가 3박 4일 동안 묵기로 한 숙소는 센트럴파크까지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Jazz on columbus circle'이라는 이름의 도미토리였다.


숙소 매니저는 잠시 부재중이었다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건넸다. 그는 우리 방의 위치를 알려주며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유의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서 천천히 설명해줬다.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숙소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숙소에 들어가니 2층 침대와 라커룸이 있었다. 물론 방 안은 좁았다. 하지만 나름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발코니도 있었고, 화장실 겸 샤워실이 방과 분리되어 있었다. 다소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편이긴 했으나 이 더운 여름에 빵빵하게 돌아가는 에어컨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8월 중순, 1년 중 가장 더운 시기에 뉴욕 거리를 활보했으니 온 몸은 땀에 절어 있었다. 일단 짐을 풀고 가볍게 샤워를 했다. 무려 14시간 동안 비행을 하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으니 머리가 띵하고 눈에는 뜨거운 열감이 올라왔다. 내 몸뚱이만 한 캐리어로도 부족해서 크로스백까지 메고 지하철 역에서 숙소까지 걸어왔으니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그뿐이랴 한여름 뉴욕의 더위는 죽을 맛이었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이 뜨거운 햇빛에 스르르 녹아내려 아스팔트에 끈적끈적하게 붙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지금 내 두 발이 밟고 있는 이 땅이 뉴욕이라니!', '내가 마시고 있는 이 공기가 뉴욕의 공기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내 마음은 마치 어린아이가 손에서 놓쳐버린 풍선처럼 뉴욕의 빌딩 숲 속 사이를 교묘하게 피해서 저 파란 하늘 끝까지 두둥실 올라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니 뭐 피곤한 몸이 대수랴?!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는 초침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한시라도 더 뉴욕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바로 숙소 문을 박차고 나왔다.



우리 숙소는 3층에 있었기 때문에 로비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땡-"

버튼을 누른 지 얼마 안 되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검은 곱슬머리를 올려 묶은 우리 또래의 라틴계 여자가 서있었다.

백팩을 메고 있는 그녀 역시 여행객인 것 같았다.


"헤이~"

Jason이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이'도 아니었다. 분명 '헤이'였다.


순간적으로 '혹시 아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근한 말투였다.

하지만 여긴 뉴욕이다. 아는 사람 일리가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Jason 인사는 마치 서로의 일거수일투족  알고 있는 아랫집 친구 녀석을 만난을  건네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 여자의 반응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녀 역시 "헤이~"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미소까지 지어주었다.

짧은 순간 주고받은 한 마디의 인사지만 처음 보는 광경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를 따스한 공기가 엘리베이터 안을 감싸고도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Jason에게 물었다.

"야, 처음 보는 사람 아니야? 왜 인사했어?"


Jason은 당황한 내 표정이 재밌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서는 원래 다 그래 인마"


그 후로도 Jason은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눈만 마주쳐도 웃으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다 보면 "오늘은 어디를 다녀왔어?", "여기 옆 건물에 맛집이 있는데 꼭 한번 가봐!" 등의 짧은 대화를 나누거나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경우도 많았다.


나도 그 후로 뉴욕에 머무르는 10일 동안 Jason을 따라 처음 보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 뉴요커처럼 자연스럽고 멋지게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굉장히 어색하고 이상해서 입을 떼기까지 많은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국적불문, 인종 불문 인사를 건네면 10명 중 7명 정도가 환하게 웃어주며 나의 인사를 받아줬다. 나머지 3명은 먼저 인사를 해줬다. 그래서 뉴욕에 있는 동안에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항상 마음이 따뜻하고 기분이 좋았다.


서울에서는 출퇴근 시간이 겹쳐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나는 이웃이 있어도 서로 모른척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나도 상대도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핸드폰을 하거나,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거나,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다듬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저 엘리베이터 전광판 숫자가 바뀌는 모습만 멀뚱멀뚱 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서울에서는 되려 괜히 인사를 건네는 게 머쓱하고, 이상하거나 실없는 사람처럼 보일 것만 같아서였다.



그런데 사실 Jason이 말한 대로 뉴욕에서는, 뉴요커들은 원래 다 이러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실제로도 뉴욕에서 대부분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었었던 것 같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이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안부를 주고받는 게 서울보다는 뉴욕에서 상대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문화임은 확실하다.


아무렴 어떠한가! 뉴욕에서 배운 이 기분 좋은 습관을 서울까지 고스란히 그대로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한국에 돌아와서도 뉴욕에서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나는 이웃들에게는 먼저 인사를 건넨다. 물론 처음 인사를 받은 이웃들 중 일부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시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시다가 이제는 먼저 말을 걸어주시기도 한다.


이처럼 뉴욕이나 서울이나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는 것은 기분 좋은 의식(?)이다.

뉴욕에서나 서울에서나 사실 별 것 아니지만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나면 인사를 건넨 쪽이나 받은 쪽이나 모두 기분이 좋다.


Jason이 알려준 뉴요커식 인사법 "헤이~"나 서울에서 주고받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 모두 알고 보면 하나의 메시지다. 뉴욕살이나 서울살이 모두 각박하고 힘든 세상살이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오늘 하루도 잘 버티자고, 너와 나 오늘은 조금 더 행복하자고 서로에게 건네는 희망찬 주문이자 스스로에게 말하는 다짐이기도 한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내가 먼저 인사 건네고 웃으며 화답받기'

뉴욕에서 나와 수없이 많은 인사를 나눈 다양한 뉴요커들에게 배운 선물 같은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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