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팔고 나누자, 죽기 전에 minimalism
흙으로 돌아가니 200 gram
엄마는 자신의 죽음을 위해 미리 준비를 하셨다. 바로 20여 년 전에 장만해 놓은 '수의(death clothes)다. 하지만, 그 옷을 입지는 못 하셨다. 아주 오래된 옷이라 엄마의 집정리를 하면서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다 결국엔 재활용 옷상자에 버려졌다. 미리 준비해 놓으면 장수한다는 상술에 넘어가 장만한 것인데, 그 당시 아주 비싼 가격에 장만해 놓은 것이다. 그 옷을 함께 구매한 큰 이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의상실을 한 엄마라 그런지 옷에 대한 애착이 있었고, 병원생활을 하면서도 옷과 신발에 대한 안부를 묻곤 했다. 하지만, 결국은 환자복 외에 아무 옷도 입지 못한 채, 상조회사가 준비한 수의(베옷)를 입고, 화장터의 불속으로 들어가 1시간 반 만에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성인의 평균 유골의 무게는 2kg 정도라고 하는데, 엄마의 몸무게는 그냥 눈으로 보기에는 200g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재가 된 유골을 하얀 종이에 쌓은 후에 유골 함에 넣고는 진공 포장식으로 공기를 빼낸다. 그리곤 빈 공간에 황토 흙을 채운 분홍색 유골함에 담긴 엄마의 몸은 선산 아빠의 무덤 옆에 묻혔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냥 놓여졌다. 아빠는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선산에 자신이 미리 준비해 둔 무덤에 묻혔고 흙으로 돌아갔다.
엄마의 마지막 호흡이 멈추기 며칠 전 예배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엄마에게 갔다. 가는 길에 미리 주문해 둔 호두과자를 간호사들과 간병인에게 전해주고는, 병상에 누워계신 엄마에게 갔다. 거의 45도로 세워놓은 침대에서 너무나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거칠게 소리를 내며 숨을 쉬고 있는 것이었다. 며칠 전부터 소통이 잘 안 될 정도로 기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호흡자체가 너무 힘들어 보였고 인간으로서 겪기 힘든 고통의 모습 자체였다. 마치 이 세상을 빨리 떠나고 싶다는 몸무림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평상시 허리 통증을 호소하던 엄마의 침상을 눕혀 달라는 것 외에는 들어주지 않았다. 일단, 금식하는 상황에서 숨을 잠시라도 편하게 쉬도록 콧줄을 빼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유는 그곳을 통해 혈압 약과 소화제 등이 들어간다는 이유였고 콧줄을 빼는 것은 환자를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주치의는 자신은 매뉴얼대로 하고 있고, 그녀의 말대로 하길 원하지 않으면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했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목숨의 연장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였다. 그리곤 5일 후, 엄마의 마지막 숨이 멈춘 시각을 선포하는 순간까지 엄마는 콧줄과 산소호흡기를 매달고 있어야만 했다.
엄마: 고맙다. 엄마가 해 줄 것이 없구나!
나: 엄마, 제게 다 해주셨잖아요. 더 이상 해줄게 뭐가 있겠어요?
아, 엄마, '아멘, 할렐루야'라고 하세요. 천국의 언어니까...
죽기 전 한 달 전부터 부쩍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평상시에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시고 늘 부족하게 여기시고 은근 요구하는 게 많았던 엄마가 이제 철이 들으셨나라면서 속으로 웃곤 했다. 그런데,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말에 눈물이 쏟아지는 나를 보면 아직도 엄마가 필요한 나이인가 보다. 그러면서도 난 엄마가 가는 곳이 '천국'이길 간절히 원했다. 천국 가는 길,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매장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수고가 뒤따른다. 시어머니와 아빠의 매장을 위해서 많은 사람의 수고가 있었고 그에 따른 잡음이 있었다. 시어머니를 매장할 당시엔 동네 주민들 간에 다른 가족 장례식에 참여 여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자손들이 사전에 다른 가족의 일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아빠의 매장 시엔 동네 입구에서부터 지역발전 기금이라는 이름하에 돈을 요구하였고, 500만 원이라는 돈을 내고서야 선산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이번 엄마의 죽음 앞에서도 그들은 200만 원의 발전기금을 요구했다. 반면에 화장하는 비용은 20여 만원에 불과하다. 물론, 유골함 구입 비용과 납골당 비용이 들긴 하지만, 사람의 목숨 값을 가지고 장사하는 모습은 똥 냄새나 시체 냄새보다 더 지독하다.
장례를 치르고 나면, 누구나 위로의 말을 건네곤 한다. 천국에 가셨을 거야. 살아생전에 천국을 믿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린 그렇게 말한다. 사실일까? 난 완벽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천국을 믿지도 알지도 못했기에 당연히 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죽었기에 아무 말 못 한다는 이유 하나로 사실을 그리 왜곡하면 안 된다. 죽음은 인간이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대비책이 되어야 한다. 조정민 목사가 말한 <사후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물론 천국과 영생 그리고 심지어 영혼의 존재까지 믿지 않고 부인한다면 예외가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누구나 천국을 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죽기 때문이고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죄의 삯(값, price)은 사망이니...
인간은 빈 손으로 와 빈손으로 간다. 공수래공수거. 이토록 인간의 운명을 쉽고 간단하게 묘사하는 말이 또 있을까? 이미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말이지만 인생의 연수와 함께 날마다 더해지고 쌓아지는 것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많은 물건이다. 나 또한 외출을 하려고 하면 가방에 넣는 물건의 수가 10가지가 넘는다. 손수건, 립스틱, 거울, 모자, 지갑, 책, 펜, 카드, 휴대폰, 사탕이나 껌 , 심지어 치실까지 챙기다 보면, 나중에 차키(11번째)를 잊어버리곤 한다. 그리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챙기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키를 잊어버린 것이다. 다행히도 죽음으로 가는 길에는 무언가 가지고 갈 것이 없다는 점에서는 참 편하다. 다만, 내가 어디를 갈 것인지 목적지는 반드시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최소한의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20억 정도는 있어야 노후대비가 된다는 통계가 있다. 100세 시대라는 말과 함께 은퇴를 위해 더 많이 모아야 된다는 압박감을 받으면서 돈은 예전보다 더 우리의 삶 속 깊이 우상(idol)이 되어가고 있다.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하는 돈맥경화가 동맥경화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이웃을 위해 쓰지 못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을 위해서도 쓰지 못하고 모으기만 하는 사람의 심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테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더 모아둬야 한다는 불안심리말이다. 실제, 죽기 전에 모아둔 재산의 거의 대부분을 의료비와 간병비에 쓰게 만드는 것이 의료의 현실이다. 엄마가 4년 동안 사용한 비용을 대략 계산하니, 2억이 된다. 간병비 300만 원과 그 외 병실비와 치료비로 100만 원 정도 (400만 원 x12개월 x4년)의 비용이 들었다. 그 외, 중환자실에 간다거나, 검사를 하는 비용, 엠블런스 이용 등의 비용을 합치면 그 액수를 능가한다. 하지만, 엄마의 병은 치료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허리를 다침으로써 조심하면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노화로 인한 통증과 나중에 알게 된 신부전을 관리만 하면 되었다. 그럼에도 요양병원과 요양원 그리고 마지막 호스피스 요양병원을 다니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쓴 것이다. 심리적으로도 가족과 동떨어진 가운데 외로움과 그리고 간병인들과도 싸워야 했다.
그렇다면, 엄마는 왜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일까? 허리를 여러 번 다치면서 홈케어(home care)가 필요했기에 내가 모시려고 했지만, 거부하셨고, 병원을 선택했다. 걷지 못해도 똥칠을 하더라도 모시겠다는 나와 남편의 계속된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 결과의 성적표는 그리 좋지 못할 뿐만 아니라 참담했다. 물론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했을 수는 있지만, 결국은 가족들과의 온전한 정을 나누지도 못한 채, 외로움이라는 정신적인 고통과 더불어 육체적인 고통과도 싸워야 했다. 그러한 시간들이 지금 이 시간까지 내 마음엔 찐한 아픔으로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려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재산정리다. 유언장을 통해 자신의 부동산이나 현물에 대한 법적인 상속자 외에 누군가를 지정하기도 하고, 은행 계좌의 비밀번호를 작성해 놓기도 한다. 감사의 편지글이나 글을 읽을 수 있는 자녀들이 어떻게 살길 바라는 바람을 적기도 한다. 물론, 장례절차나 매장 방법이나 매장지 혹은 제사방식 등도 기록할 수 있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의사 표시를 명확하게 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대비는 자신과 남겨진 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이러한 유언장을 작성해 놓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 부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한 날에 죽는다 하더라도, 재산을 한꺼번에 다 알 수 있는 시스템(공직자 재산 등록의 의무)이기에 내 자녀가 우리의 재산정리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부모의 물건 정리는 힘들어해도 재산 정리(빚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툼이 있을지언정 알아서들 잘한다. 다행히도 우리 부부가 자녀들에게 남겨줄 유산은 별로 없을 것이기에 그리 고민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부모님이 하신 것처럼 남김없이 쓰고 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재산을 사치하면서 낭비하며 탕진한다는 말은 아니다. 일 평생 수고한 우리 자신과 이웃을 위해 사용할 것이다. 지금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부와 나눔, 그리고 선교에 사용할 것이다. 그래도 혹시 남은 것이 있다면 아들 딸, 주영이와 하영이가 공평하게 나누면 될 것이다. 성인이 된 아들이 어느 날 내게 얼마의 액수를 어디에 기부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했다.
아들: 생각보다 많지는 않네요. (전 재산을 다 하는 줄 알았는지... 실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을 해왔기에)
나: 네가 꼭 기억을 했다가 해!
아들: 엄마가 지금 하셔요~
아들: 관 뚜껑 덮기 전에 후회하지 마시고 다 쓰셔요! 행여라도 재산이 남아 하영이와 나누게 되면 골치 아플 것 같아요.
이미 재산을 가지고 형제와 다투게 될 것을 예견하고 있다니 조금은 지혜로운 아들인듯하다. 나의 버킷 리스트에는 기부에 대한 것이 몇 가지가 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고 제자훈련까지 시켜준 죠이선교단체와 나와 남편이 함께 개척을 도운 경주 두레교회에 특별헌금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 고아들을 돕는 것이다. 죽기 전에 큰 액수를 한번에 기부하리라 생각은 했지만, 선뜻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던 차에 아들의 이 한마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론 내가 쓰고 남은 돈으로 죽은 후에 기부를 하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당장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덕분에 미루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적은 액수라도 기회가 될 때마다 기부하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30여 년간 후원을 한 단체와 개인에게 기부한 액수를 계산하니 제법 되었다. 이런 식으로 적은 액수라도 일정액을 정해 후원을 하는 것이 더 의미 있고 현실적인 기부라는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영어성경 모임에서 걷는 5만원의 회비로 기부를 이어온 지 3년 차인데, 한 달에 약 20만 원 정도이지만 여러군데를 도울수 있었다. 실제 기부의 의도는 회원들에게 기부하는 마음과 습관을 갖게 하고 싶어서였다. 미국에서 홈리스 사역을 하는 은퇴목사님께 몇달 전에 보낸 메시지를 공유하면 이러하다.
[적은 액수이지만 이리 나눌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에요^^ 사실 크리스천이 교회에 헌금( 십일조 외에 선교 헌금과 개인 후원 등)으로 인해 사회 주위를 둘러볼 경제적 또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에요. 이 비용을 제가 다 써도 무방한 돈이지만, 주님의 은혜를 나누는 모임이기에 그리 쓰고 싶지는 않아서요~
1st year: 경주에 화재 난 가정(엄마와 장애인 아들이 거주)에 100만 원 헌금
2nd year: 태국 선교사님(암 투병 중): 과일과 소고기 보내드리기, 싱글맘 가정의 두 자녀와 식사하고 용돈주기, 아파트 미화원 분들에게 수박과 귤 선물( 그 외 기억이 안 나네요 ㅎㅎ)
3rd year(this year) : 미국 홈리스에게 전도용으로 물과 티슈 그 외 선물용으로 사용. 그 외 죠이 선교회 간사 2명 후원. 아프리카 선교사 후원, 그 외는 커피 값으로 사용했어요.
저희가 이런 귀한 나눔을 한 것을 보고 드리면서, 앞으로 개인적으로도 더 자주, 더 많은 나눔을 할 수 있길 기대하면서 재정보고를 마칩니다^^
Have a wonderful and peaceful day in the Holy Spirit:D]
조금 전 목사님에게서 이런 문자가 왔다.
DC 노숙자 전도 헌금 영수증 2024.7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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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pt(영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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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정영숙
입금일 : July 3, 2024
Amount : 10만 원
영수증 발행일 : August 20, 2024
The amount, as above, was duly received for the Homeless Street Evangelism of DC, USA
위와 같이 미국 DC 노숙자 노방 전도 헌금을 정히 영수합니다.
1. 정진환 목사 1-202-834-1922(전도자)
2. 신구 선교사 1-562-450-3164 (미국 및 해외 후원 그룹)
3. 오 세 온 권사 010 000 0000 (한국 후원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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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멋진 삶을 살고 계시고, 죽음준비가 이미 되어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죠이 선교회 대표도 하시고, 교회 사역도 하신 목사님으로 미국에 사는 딸과 함께 살면서 손주를 돌보면서 살고 계신다. 희수(77세;오래 살아 기쁘다는 뜻)가 된 나이이지만, 거의 매일 홈리스들에게 다가와 대화를 하며 1달러, 5달러 등의 돈을 주거나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주면서 하늘나라 천국에 대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 계신다. 위의 영수증은 공적인 기부금으로서 세액공제와 같은 역할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름 마음으로 감사를 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돈의 흐름을 명확하게 하려고 하신 듯하다. 얼마 전에도 글이던 그림이던 작사 작곡이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사용될지 모르니 무엇이라도 하라고 조언하던 목사님이기에 이러한 기부 영수증에 웃음 지어지는 아침이다.
둘째로는 자신의 물건정리가 필요하다. 교사로서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네 주민은 자신의 시부모님의 죽음 후 집 정리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물건을 쌓아두고 살았는지 경악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정말 필요한 물건만 놓고 살고, 곧 앨범도 정리할 것이라고 한다. 살아생전에 쓰지는 않지만 정이 들어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수없이 많다. 본인에게는 너무나 귀한 물건이겠지만, 남겨진 가족들에겐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다. 지금도 내 차 트렁크에는 엄마의 유품이 그대로 있다. 동생이 가져온 것인데, 엄마가 성서를 필사한 노트와 신발들이다. 이것을 버려야 할지 집안으로 들여놓아야 할지 아직 결정이 안 된 상태다. 엄마의 화장터에서 이모가 엄마의 필사 노트에 대해 물었다. 아무도 그게 어디에 있는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동생 집으로 간 것이었다. 문제는 아무도 그것을 가져가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가 태워질 때 같이 보냈어야 하는데,,," 크리스천이 된 작은 이모에게 물어보니 그리 대답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어떤 의미 있는 물건이라도 내가 당장 쓸 수 있는 물건이나 돈이 아니라면 굳이 남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남겨진 가족들이 처리해야 하는 짐을 남겨 줄 뿐이다. 잦은 지진이 발생이 일어나는 일본의 환경에서 나타난 미니멀리스트(minimalist)의 삶. 가장 큰 장점은 삶이 단순화된다는 것이다. 매일 해야 하는 청소시간도 동선도 줄게 되고, 집 관리비용도 줄게 된다. 그 결과 남은 여유로운 시간과 비용을 취미를 즐기거나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니 무엇이든지 쌓아두지 말고, 미리 쓰지 않는 것은 팔아 자신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자 행복한 죽음을 만드는 방법이다.
69세에 죽음을 맞이한 시어머니의 남은 물건은 내가 사드렸던 뜯지도 않은 내복 한 벌과 속치마 그리고 멈춘 지 오래된 시계와 텅 빈 통장뿐이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물건이기에, 속치마와 시계를 내가 가져왔는데, 내복은 누가 가져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 인간이 평생을 살면서 남긴 물건이 그렇게 없는 것을 보면서 느낀 가련함이 아직도 마음에 배어있다. 그에 반해 엄마는 이웃과 지인에게 나눠 줄 옷과 모자 그리고 가방이 있었다. 살아 계신때에 엄마의 물건을 나누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죽은 자의 물건을 사용하길 원하지는 않기에 알고 지내던 미화원분에게 미리 드렸다. 엄마를 돌봐주던 이모님에게는 엄마가 아끼던 가방과 모피 목도리와 모자를 드렸다. 아직도 창고에는 엄마가 사용한 지팡이와 휠체어, 워커 그리고 허리 보호대 등의 의료기기가 남아있다. 당근이라는 중고 나눔 앱을 통해 팔거나 무료나눔을 할 예정이다. 엄마 통장에는 매달 나오는 연금이 몇 달 쌓여 260만 원이 남아 있었다. 얼마 전 동생과 남편에게 300만 원을 주고 남은 이것이 엄마의 전 재산이다. 그것으로 손주들 용돈을 주고 싶어 했기에 할머니가 주는 마지막 용돈을 보내주었고 이모와 삼촌에게는 엄마의 마지막 선물의 의미로 녹용을 보내드렸다. 살아생전에 멋쟁이시고 물욕이 있었던 아버지는 각종 고급진 옷과 신발이 많아 여기저기 나눔을 했다. 하지만, 문제의 시계가 있었는데, 로렉스 일명 명품시계다. 그 시계를 작은 아들에게 준 것이 화근이 되었는데, 큰오빠는 그것을 사위에게 줬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사위란 바로 내 남편을 말하는 것인데, 결국 엄마는 적금을 부어 시계를 사주라면서 500만 원을 보내주셨고, 난 다시 그 돈을 작은오빠에게 보내줬다.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누군가에게 줄 것이 있다면 죽기 전에 미리 나누자. 죽은 자의 물건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죽은 자의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문화다. 기부도 죽은 후 남은 재산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생전에 미리 한다면 지금의 삶이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후회하는 것은 소유하지 못한 명품이나 더 많은 재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는 본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치료를 받아 회복되어 병원에서 퇴원을 할 것을 기대했다. 자식들에 대한 걱정과 염려도 있었지만, 실제 그들의 안부를 묻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몸 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느끼면서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셨다. 천국 갈 준비가 되었음을 표현하셨다.
나: 엄마, 천국 갈 수 있겠어요?
엄마: 물론이지...
엄마는 가톨릭 신자로 성경을 필사하면서 기도를 매일 하였지만, 정작 천국 문에 들어가야할때인 이때 믿음이 없어보였다. 아니 오히려, 천국에 갈 생각을 못하시는 듯했다. 하지만, 난 엄마가 천국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그곳에 가길 기대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제는 이 땅에서 살 소망이 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5형제를 키우면서 기도하며 밤 낮으라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그로 인해 10명의 손주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현했다. 고용자님. 훌륭하십니다! 잘 살아오셨습니다. 감사하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 말은 나의 진심이었고,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준 인사말이기도 하다.
셋째, 재산정리나 물건정리 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사실 인간관계다. 사람이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 중에 가장 주요한 것은 재산 형성이나 물건 축적이 아닌 인간관계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풀지 못해 서로 엉켜있는 인간관계는 죽음의 길에 장애물이 된다. 따라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면 미리 화해를 한다거나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면서 가까이 두고 살 수는 없다. 게다가 아무리 사랑을 하려 해도 받아주지 못하는 악인이 있다. 그런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이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을 때도 편히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내 주변에 있는 이웃이나 가족,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문을 열고 조금의 물질을 나누자. 이것은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다. 죽음 전에 후회하지 않을 인생은 없겠지만, 그래도 나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까지 사랑(=하나님 사랑)하며 산다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천국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면회 시간이 끝나갈 무렵이다.
엄마: 간병인에게 인사...
나: 인사하고 가라고요? 엄마, 제 나이가 60이 다 되어가요.
그렇게 말을 하곤 가서 바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엄마에겐 아직도 내가 철이 없는 아이로 보이시는지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잔소리를 한다. 엄마는 종종 이런 식으로 간병인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의 표시자 배려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몸을 돌봐 줄 존재이기에 그런 듯하다. 4년 전 집을 떠나 병원에 입원하면서 거쳐간 6명의 간병인들과의 관계로 인해 엄마는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대부분 조선족이라 말도 통하지 않기도 하고, 음식을 사 먹지 않는 그들의 식사까지 챙기느라 힘드셨다. 때론 그들의 무례한 태도나 말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했다. 심지어 다른 간병인이 내게 전화를 걸어 엄마 간병인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병실로 옮기고 다시 요양병원으로 옮기기 전날엔 엄마와 간병인간에 작은 다툼이 있었다. 엄마는 통증을 호소했는데 간병인은 빠진 콧줄을 자신이 미뤄 넣었다고 하면서 간호사에겐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난 바로 간호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의 오른쪽 견갑골이 부러진 것이다. 그 후론 엄마의 침상에는 이런 이름표가 하나 더 부착되었다. 골절 고위험 환자(의료법 제 24조의 2 제4항: 의료기관 내에서 신체적 폭력으로 인해 환자가 사망하거나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입은 경우).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가족조차도... 노인은 원래 쉽게 골절된다는 이유였다.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서 엄마의 뼈가 붙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엄마의 신음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지 못한 내 탓으로 돌렸다.
나의 전공은 영어교육(English Education)이다. 영어교육을 위해 내 인생의 전반전을 할애했다면 후반전에는 죽음교육(Death Education)으로 전공을 바꿔보고자 한다. 죽음교육은 웰다잉 상담사 자격과정에 하나라고 한다. 한 마디로,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으로 죽음을 바르게 배움으로써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영위하도록 이끈다. 교육과정을 소개한 글이다. '흔히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 사랑하는 삶의 죽음이나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 크게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평소에 죽음을 배우고 죽음을 준비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갑자기 죽음에 직면하게 되더라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웰다잉상담사 자격과정은 이론과 기법을 기초로 하여 내담자의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 문제를 상담함으로써 치료 및 재활을 돕는 전문가 양성에 그 목적이 있다. 사회복지기관(노인복지관 포함) 건강가정지원센터, 다문화지원센터, 노인전문병원 및 노인요양원, 암 병동 등 다양한 호스피스활동 및 재활치료센터, 자원봉사센터, 노인맞춤 돌봄 서비스 종교단체, 학교 등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에게 필요한 맞춤식 교육이다.'
엄마의 부고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엄마의 나이를 먼저 묻곤 한다. 요즘 선진국민의 평균 수명이 대략 80~85세 정도라고 하니 엄마의 성적표는 평균이상이다. 7년 전 딸아이 친구의 엄마가 췌장암으로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세 아이의 엄마로 자신을 전혀 가꾸지 못하고 커피 값도 낸 적이 없는 40대 엄마였다. 그런데 암 판정을 받고 시부모로부터 유산을 받고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멋있게 꾸미고 나온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암 진단 후, 바로 성당에 등록한 것을 보면 천국여행 티켓팅을 미리 하고자 했던 것일 게다. 끝까지 커피는 사지 않은채, 암 진단을 받은 후 딱 6개월 만에 납골당으로 이사했다. 그곳에는 잘 정돈된 서랍처럼 주인의 이름과 나이가 새겨져 있다. 그들의 나이를 보고는 무척 놀랐다. 100세 시대가 과연 맞는 말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나이가 어리고 다양했다. 평균 수명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한참이나 못 미치는 나이다. 그들의 병명이나 사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본인들이 그리 일찍 죽을 것임을 예측하지 못한 채 황망하게 죽었을 것이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대학 후배의 아내 부고 소식을 들었다. 선교사의 아내이자 3명의 자녀의 엄마인 그녀의 나이는 53세다. 암으로 진단받은 지 2개월 만에 갑자기 발생한 죽음이다. 부의금를 보낸 후, 장례식장에 가려고 옷까지 차려입었지만,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이 가시지 않은 상태여서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요즘에도 신문과 매스컴 그리고 주위 지인을 통해 전해지는 부고의 소식때마다 나이를 확인해 보면, 100세 시대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의 지위나 명예, 혹은 재산의 많고 적음 그리고 그들의 종교와는 상관없이 죽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의 나이는너무나 어리다. 한 마디로 억울할 정도로 퍙균이하다. 특히나 실제 본인의 죽음을 전혀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그들, 아니 우리 모두의 죽음은 너무나 무섭고 두렵고 억울하고 괴로운 죽음이 될 것이다. 난 아직 이러한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거나 경험하지 못한채 이러한 글을 쓸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언젠가 닥칠 나의 죽음을 대비하기 위해서 육체적 심리적 그리고 영적인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글을 쓰고 있는것이다. 인명은 재천, 인간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있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육체적으로는 몸을 튼튼하고 건강하게 관리하고, 심리적으로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고, 영적으로는 창조주이자 내 아버지인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이 나에겐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기본적인 대비책이다.
예레미야( Jer ) 22장
10.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
10. Do not weep for the dead king or mourn his loss; rather, weep bitterly for him who is exiled, because he will never return nor see his native land again.
엄마와의 이별로 인한 슬픔이 생각보다 쉽게 가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육체의 멍에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천국에 들어갔을 것이기에 더 이상 슬퍼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어본다. 사망의 고통에서 탈출하였으니, 오히려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다. 인생이 겪어야만 할 육체적인 한계, 곧 죽음에서 벗어날 유일한 출구(EXIT)는 사망(Death)의 문 하나뿐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감사하게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죽음을 맞이하자. 어서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