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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혜 Jun 29. 2024

[고르고 고른 곳] 군더더기 없는 미장센

03. 영화관 라이카시네마

[고르고 고른 곳 03]

연희동 라이카시네마 @laikacinema



군더더기 없는 미장센 


가끔 평소와는 다른 선택지에 끌릴 때가 있다. 입에 잘 대지 않는 단 아이스크림을 제 돈 주고 사 먹는다거나 혼술에 도전해 본다거나 늘 달리던 코스 말고 새로운 길을 내 달릴 때처럼 말이다. 영화관 가서 영화를 보는 일이 손에 꼽는 사람으로서 독립 영화도 분명 평소와는 다른 선택지로 분류되는 일 중 하나다. 그렇게 낯선 것으로부터 느껴지는 생경함에 유독 끌렸던 날, 연희동에 위치한 라이카시네마를 찾았다. 작년 이맘때쯤 처음 방문했었기에 초면은 아니지만 여전히 익숙한 곳은 아니다. 집 주변에 독립 영화관이 없는 것도 아닌데, 먼 연희동까지 걸음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럴 때면 언제나 라이카시네마의 다홍빛 입간판이 기분 좋게 떠오르곤 한다.

 


라이카시네마는 1957년 세계 최초로 우주에 보내진 개의 이름인 '라이카'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그 개의 별명이 '스페이스독'이었는데 라이카시네마가 속해 있는 복합문화공간의 이름이 바로 스페이스독이다. 우주를 떠돌다 불시착한 우주선처럼 연희동 주택가 한가운데 지어진 이 공간은 올해로 개관 4년 차를 맞이했다고 한다. 


총 네 개의 층으로 올려진 스페이스독 건물의 외관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잘 짜인 미장센 같은 느낌이 든다. 반듯한 선의 배열과 연그레이 톤의 차분함, 녹색 수풀로 둘러 쌓인 장면은 멜로, 코미디, 느와르처럼 색깔이 뚜렷한 장르라기보다 슴슴하게 흘러가는 다큐 같은 독립 영화와 닮아있다. 계절로 따지자면 분명 이곳은 초여름의 잔잔하고도 싱그러운 분위기가 훨씬 어울릴 곳이다. 


라이카시네마에서 상영하는 영화 특성상 나와 같은 1인 관람객이 이 곳의 문을 주로 열었다. 그래서인지 독립 영화라는 평소와는 다른 선택지에 연희동까지 가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하지만 오히려 마음만큼은 차분해지는 곳이다. 사색을 자처하려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모종의 안정감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단 10분도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없는, 시선을 뺏고 뺏기는 환경 속에서 잠시나마 모든 것을 꺼 버리고 어둠 속으로,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때로는 절실하게 필요하니 말이다. 


입구에서 티켓을 끊고 난 후에는 건물 이름과 같은 스페이스독 카페로 들어선다. 음료를 주문할 수도 있고, 가만히 앉아 다가올 영화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색조합이 검정과 하양인데, 아이보리 톤의 우둘투둘한 시멘트 벽과 그와 대조를 이루는 새까만 의자와 테이블의 합이 좋았다. 특히 편집샵에 자주 보이는, 그보다 조금 더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 철제 선반이 영화 포스터를 더욱 그럴싸한 전시품처럼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자칫 심심해 보일 수 있는 벽을 깔끔하게 잘 활용한 부분이라 생각했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영화를 기다리기엔 더없이 안락했던 곳이다. 바깥 풍경에 잠시 멍을 때리고 있다 보면 이미 영화를 다 본 관람객들이 약간은 상기된 표정을 짓고 천천히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과 영화 관람이 끝난 사람이 마주칠 수 있도록 통창으로 훤히 보이는 구조를 만든 것이 의도한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이곳까지 영화를 보러 온 다른 사람들은 어떤 영화를 선택했을지, 영화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다양한 표정을 지닌 얼굴들을 보고서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기다리고 있는 영화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고, 또 다음에 이곳에서 다른 영화를 가늠해 보기도 했다. 복잡다단한 마음에 쉽게 휩쓸릴 때, 잠시 생각에 빠지고 싶어질 때, 나는 분명 이곳의 평안함과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느낄 수 있는 무언의 동질감에 기대기 위해 또 한번 기꺼이 먼 걸음을 할 테니 말이다. 






라이카시네마 @laikacinema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8길 18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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