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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블랙 Jun 19. 2021

꿈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사람이 아직 있나요?

하근찬 <간이주점 주인>

오랜만에 본가에 놀러 왔다. 저번에 사놓은 영양제도 드릴 겸, 보고 싶은 책이 있어서 가져올 겸. 남자들이 대개 그렇게 쇼핑하듯이, 어렵지 않게 책을 바로 찾아서 꺼냈다. <우리 시대의 한국 문학> 40권. 정말 오래된 책이다. 그 아래 칸에는 다소 조악한 꾸밈새의 책이 있었다. 어머니의 지인분이 예전에 책을 내셨다고 했었는데, 그 책이었다. 아마 자비출판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돈지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글쓰기를 달리 보게 된 이후에 그 책을 보니, 불현듯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분은 꿈을 이루신 걸 수도 있겠구나. 갑자기 그 책에서 경이로움마저 느껴졌다.


계몽사에서 나온 <우리 시대의 한국 문학>은 정말 알찬 구성이었다. 고전문학부터 현대문학까지 70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었다. 불가사리가 쇠붙이를 해치우듯이, 한창 책을 마구잡이로 해치웠던 나는 어렵지 않게 그 한 질을 독파했었다. 사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읽었었다. 끽해야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거니까. 덕분에 난 교과서에서나 만나게 될 문학 작품을 미리 만날 수 있었다. 해설 없이, 작품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또한 귀중한 경험이었다. 학교에서는 이러이러한 작품이 있었다- 정도로 언급이나 되고 넘어가는 작품들을 읽어봤다는 것 또한 참으로 행운이었다.


와중에 뇌리에 깊이 남은 소설이 하나 있다. 하근찬의 <간이주점 주인>이라는 작품이다. 하근찬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가 망가뜨린 일상이 묻어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들 알만한 <수난이대>, <흰 종이 수염>만 봐도 그렇다. <간이주점 주인> 또한 마찬가지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학교에서 만나 글을 나누다 고초를 함께 겪던 친구를 시간이 많이 흘러서야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격하지만 부드럽고, 먹먹하지만 담담하게 흘러간다. <간이주점 주인>에서 화자인 '나'는 등단한 지 오래인 기성 작가가 되었다. 같이 글을 나누며 고생한 '친구'는 '간이주점 주인'이 되어있다. 그 '간이주점 주인'은 술이 얼큰해져서야 그간 자신 또한 지하에서 글을 써왔음을 토로한다. 비록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잊지 않고 있었다고 울부짖는다.


세상엔, 어릴 적 꿈을 결국 이루고야 만 '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꿈을 잊지 않고 조금씩 행동하는 '간이주점 주인'도 많이 없다. 대다수는 그저 어릴 적 꿈은 어딘가에 묻어둔 채 살아갈 뿐이다. 나 또한 대다수에 속한다. 내 주변도 거의 그렇다. 사실 '어릴 적 꿈'이라는 것이 있는 사람조차 요즈음은 흔치 않다. 그렇게 보면 내가 좀 나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내 꿈은 '수학자'였다.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꿈이었지만, 어쨌건 대학교 전공까지 수학을 택했었다. 내 한계를 금방 느끼고 이탈하긴 했었다. 그래도 한 발자국은 나갔었던 거로 생각한다.


몇 년 전부터 '간이주점 주인'이 보고 싶었다. 어릴 적 꿈을 이룬 '나'는 환상 속의 사람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하지만 어딘가에 '간이주점 주인'은 있을 것이다. 삶의 해가 뉘엿거릴지언정,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유지하는 사람들이 꼭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결국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그 꿈들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싶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내가 아닌 누군가였으면 좋겠다. 그래.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어릴 적 꿈이 있었다면, 그걸 잊지 않고 점진했으면 좋겠다. 아니, 내가 하겠다는 게 아니라니까. 분명 고되고 지루한 길일 게 당연하잖아. 나 말고 여러분이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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