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인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단축키다. 대중적인 프로그램의 예시는 오피스 군이 있겠다.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전문가처럼 쓸 수는 없다. 그 프로그램을 사용할 때 마우스를 주로 사용하는지, 키보드 단축키를 주로 사용하는지가 작업 퍼포먼스를 결정한다. 프로그램 기능에 대한 파악은 초반에 금방 끝난다. 기능을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하다.
나도 마이크로소프트 엑셀만큼은 조금 일가견이 있다. 아니, 상당히 잘한다고 해야겠다. 예전에 연봉이 높지 않은 회사에 재직 중일 때는, 연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당시 재직 중인 회사 연봉보다 엑셀 외주 수입이 더 컸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한 업무는 마우스 없이 숫제 키보드로만 진행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겠다. 평소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누가 업무를 배운답시고 옆에 앉아있으면 서로 당혹스러워진다. 마우스로 기능을 실행하게 되면 움직이는 마우스 커서가 보인다. 하지만 단축키로 기능을 실행하면 부지불식간에 이미 기능이 실행되어 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은 왜 그렇게 됐는지 알 수가 없다. 나도 설명하려니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단축키는 머리가 아니라 손이 기억한다. 저장해야지, Ctrl(Command) + S를 눌러야지, 엄지와 약지로 눌러야지. 이렇게 머리가 흘러가지 않는다. 저장해야지. 얍! 뭘 눌렀는지, 어떤 손가락으로 눌렀는지도 머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업무 하는 모습을 보고 마치 마법을 쓰는 것 같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엑셀 단축키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30분가량 계속 다른 기능을 다른 단축키로 쓰는 모습을 보면 알더라도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다른 직군의 업무 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느낄 때가 있으니까.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SF 작가 아서 C. 클라크가 고안한 법칙 중 하나다. 다른 매체에서도 직간접적으로 많이 차용되기도 했다. 이영도 작가의 판타지 소설 <퓨쳐 워커>의 등장인물 '챙'의 별명은 '마나를 쓰지 않는 마법사'다. 몸을 쓰는 호위무사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은 그만큼 '챙'의 신체가 고도로 발달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했음이라.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나 노을의 명곡 <붙잡고도>의 예를 봐도, 과거부터 사람들이 고도로 발달하기 위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 우리가 편하게 쓰는 모든 전자제품, 사실 최첨단 과학 기술의 집약체가 아니던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꼭 이해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 수도 있다. 과학 기술은 그래도 된다. 근데 업무에 쓰이는 기술도 그래야 하는 걸까? 난 여기서 의문이 들었다. 아서 C. 클라크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마법'으로 비유했다. 마법은 범인들이 이해할 수 없다. 나의 업무 하는 모습을 보고 마법으로 표현했다면, 이해가 안 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결국, 극히 일부의 '마법사'들 외에는 동일한 조건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법사들로 인해 유연성이 사라진다.
물론 나만의 무기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무기를 독점해서는 안 된다. 그 무기를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보급하고, 설명서를 작성하여 안내하는 것 또한 강력한 무기다. 나의 두세 걸음을 모두의 한 걸음으로 만들 수 있는 무기는,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멍청했던 거다. 머글들 사이의 얼마 되지 않는 마법사였으니까, 잔기술이라는 무기를 손에 꼭 쥐고 있던 거지.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경쟁 사회이니만큼 내 경쟁자가 나를 앞서가는 것이라고 섣불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난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서로를 마법사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마법이 아니라 허술한 잔기술로 보일 수 있게,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열어놓고 퍼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괜찮다. 그만큼 또 앞서 나가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