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의 나는 어중간했다. 나이는 19세였지만 20세처럼 지내야 했다. 신분 또한 학생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일을 해야만 했다. 당시 내 주 수입원은 행사장 의자 설치였다. 그 일에서도 내 위치는 뭔가 어중간했다. 상시 멤버라고 하기엔 내가 빠지는 일이 많았고, 아르바이트라고 하기엔 꽤 자주 불렸다. 한번은 의자를 쌓아놓던 창고를 정리해야 하는 일에 불려 갔다. 창고는 고양시 구석 어딘가에 있었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의자를 이리저리 정리했다. 지금의 키보드만큼이나 의자를 다룰 수 있었기에 어려운 것은 없었다. 다만 평소와는 다르게 숨 고를 시간이 없어서 몸이 더 빨리 피로를 호소했었다.
인솔하던 형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담배 피자고 말하는 텀이 잦아지더니, 아무리 봐도 마무리가 안 된 듯한 모습인데 그냥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책임감도 뭣도 없던 나와 내 동년배이던 아르바이트 하나는 잠자코 따라갔다. 따라간 곳은 신기한 중국집이었다. 간판에 '한·중식'이라고 적혀있었다. 간혹 중국집에서 제육 덮밥, 육개장을 파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대놓고 저렇게 쓰다니. 인솔하던 형은 들어가자마자 우리 의사는 묻지 않고 볶음밥 3개를 시켰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형은 변명하듯이 뒷말을 붙였다. 여기는 볶음밥을 먹어야 한다고.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았던 포인트는 메뉴가 아니었다. 난 곱빼기를 먹고 싶었다. 형, 저 곱빼기 먹어도 되죠? 야. 너 못 먹어. 아이고, 그냥 보통 먹어요. 갑자기 사장님까지 대화에 난입했다. 난 얌전히 그러겠노라 답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러할 만했다. 볶음밥은 산처럼 나왔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전통적인 볶음밥이었다. 짜장 소스와 짬뽕 국물도 넉넉하게 나왔다. 만족스러웠다. 올라간 계란 프라이도 좋았다. 특별할 것이 없었다. 기본에 너무나 충실했다. 그래서 좋았다. 볶음밥 접시를 비우자, 그제야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신기하게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너무 게걸스럽게 먹었던 것 같다. 곱빼기 시켜도 먹었겠는데? 아니에요. 배부르네요. 나와서 피우는 담배 한 개비는 유난히 더 맛있었다.
갓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는 한창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난 넉넉하게 이해찬 세대를 비켜났지만, 그 세대가 가진 문제점을 오롯이 갖고 있었다. 전형적인 스페셜리스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난 부단히 노력했다. 나는 T자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끊임없이 나에게 하고 있었다.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일 개월간 휴직하게 되었다. 일주일은 입원을 했고, 일주일은 집에서 꼼짝없이 쉬었다. 남은 이 주일은 내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때 처음으로, 난 내 과거를 복기했다.
재밌게도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이 그때 그 중국집이었다. 그 중국집을 찾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고양시의 중국집이 얼마 없을 리 없었다. '한·중식'이라고 적혀 있던 간판을 단서로 두 시간 남짓 걸려 결국 찾고야 말았다. 안양에서 네비로 45km 거리라고 나왔다. 멀다. 그래도 가고 싶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가겠는가. 대중교통으로 찾아보니 강매역을 거치라고 나왔다. 밥값보다 왕복 차비가 더 많이 나올 이 불합리한 상황에 딱 어울리는 역명이었다. 두 시간 정도 걸려 결국 그 중국집에 도착했다.
간판은 그대로였다. 물끄러미 가게 전경을 바라보며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이상하리만큼 별 감흥 없이 들어가서 볶음밥을 시켰다. 그때와 다르게 산처럼 나오진 않았다. 그냥 다른 중국집보다는 좀 많이 나오는 정도였다. 내용물은 비슷해 보였다. 음식 맛은 그때랑 비교할 순 없었다. 내가 기억하던 것은 그때의 느낌이지 맛이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기본에 충실해 보이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냥저냥 괜찮았다. 그뿐이었다. 집 앞에 있었다면 주말에 가끔 갈만한 맛이었다.
원래 계획은 간만에 홍대를 들러 카페에서 시간을 좀 보내는 것이었지만, 마음을 바꿔서 집으로 그대로 와버렸다. 기분이 꿀꿀했다. 내가 기억하든 그 느낌이 아닌 탓이었다. 맛이 바뀌진 않았을 텐데. 양이 적어서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렇지. 집에 와서야 대충 느낌이 왔다. 그 중국집은 노포였다. 위생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노포였다. 맛도 그저 기본에 충실할 뿐, 특출나지는 않았다. 난 10년이 넘는 기간에 참 많은 맛집을 다녔다. 와중에는 당연히 중국집도 있었다. 그곳보다 더 깔끔하고 더 가까우며 맛도 얼추 따라오는 다른 중국집을 다섯 개는 댈 수 있다. 이쯤 되면 그 중국집을 다시 마주칠 이유가 없다. 이렇게 글을 통해 추억이나 하면 다행이다.
아. 그 중국집이 나였구나. 내가 그랬었다. 난 특기가 명확하다. 내 주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계속 안주하고 있었다. 내 특기가 명확하니까. 가끔 그 특기를 다듬을 뿐, 확장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그 중국집의 음식처럼. 내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졌어야 했는데, 내가 잘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잘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잘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게 정체되고 있었다. 그렇게 난 휴식차 가진 추억여행에서, 나를 다시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휴식이라기보다는 갱신, 환기 등의 느낌이었다.
그 중국집이 그렇게 오래 살아남은 것처럼, 어쩌면 나 또한 지금 내 수준으로 버티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난 성장해야만 한다. 그때 그 중국집과 과거의 나는 기억 깊은 곳으로 묻어두고, 더 앞으로 걸어갈 거다. 가는 길에 내가 자주 가는 중국집에서 유린기 한 접시도 먹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