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있다가 없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없었다. 차가 없다는 것에는 다들 별 반응이 없지만, 운전면허가 아직도 없다는 것에는 간혹 놀라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내 나이가 적지는 않다. 부사관으로 복무 중인 동창은 이번에 상사 진급을 했다. 시험에 떨어졌던 것도 아니다. 아예 응시를 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나조차도 내가 궁금하다. 난 왜 운전면허가 없는가?
사실 답은 간단했다. 필요가 없었다. 갓 성인이 되어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그럴 만한 겨를이 없었다. 직장과 집이 모두 서울인 상황에서, 자차로 출퇴근은 쉽사리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평일 아침과 저녁마다 송파구와 강남구를 자차로 왕복한다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안양으로 옮긴 이후는 더더욱 그렇다. 도보 2분 거리의 출퇴근 길을 차로 갈 이유가 없다.
주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 발과 다리는 유별나게도 튼튼하다. 안양에서 동작대교까지 아무런 무리 없이 내 가볍지 않은 몸뚱이를 이고 갈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대중교통도 정말 잘 되어있다. 혼자서 훌쩍 제주도로 놀러 갔을 때도, 버스로 충분했다.
이러니 마음이 갈 수가 없다. 차가 있으면 주말에 조금 더 활동 범위가 늘어나기야 하겠지만, 고정적인 유지비를 생각하면 아무리 봐도 손해 같다. 어느 새 내 마음은 그것이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 행동 방식은 내 모든 결여된 것에 대한 원인이기도 했다. 나에게 없는 것은 운전면허만이 아니다.
나는 독신이다. 반려자는커녕, 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던 적도 어언 5년 남짓 되어간다. 셀털을 조금만 더 하자면, 30대에 접어들고는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자기들만큼이나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다양한 경로에서 만난 다양한 좋은 사람들은 아쉽게도 나와는 연이 닿지 않았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마음이 가지 않았다. 만남을 위한 만남이라 그런지, 나에겐 불편함이 더 컸다. 만나는 중에 은은히 이어지는 긴장감과 쌓여만 가는 피로감은 내 정신력을 갉아먹기만 했다. 만남이 끝나고 집에 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쉴 수밖에 없었다. 다들 그렇다고 했다. 사람 처음 만나는 게 어찌 편하기만 하겠냐고, 그게 당연하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불편함이 문제가 아니다. 그 불편함을 상회할 정도로 내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간절하지 않은 것이다. '남자가 집안일을 좋아하면 결혼 못한다.' 주변 어른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집안일을 싫어해야 그 귀찮은 것을 누군가가 해주길 바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결혼하고 싶어진다고 했다. 이 무슨 구시대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저 문장 자체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난 집안일을 참 좋아한다. 뜨거운 물로 설거지가 끝난 그릇의 뽀득거림이 좋다. 볕에 말려 바삭거릴 정도로 뽀송한 빨래도 좋다. 바닥을 깨끗이 닦은 걸레를 손빨래할 때, 걸레질의 성과를 보여주듯 뽀얗게 물드는 걸레 빤 물도 참 좋다. 음식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만든 음식은 참 맛있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해서, 샤워하는 동안 자작하게 졸여지는 떡볶이는 비할 것이 없다. 그야말로 '맵고 짜고 단거'다. 나는 혼자서 참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결혼한 후의 일이다. 만남을 위한 만남에서 오는 불편함은 일시적이다. 하지만 결혼을 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이후의 안정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변수가 추가로 생성된다. 그 불안정성은 영구적으로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 변수가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상황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봤다. 이 또한 나의 마음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6년 전쯤인가, 굉장히 몰두했던 취미가 있었다. 그 취미 활동을 모두가 더 재밌게 즐기기 위해서 데이터를 쌓아온 것이 있었고, 다행히도 주변에서 좋은 반응을 보내주어 그 데이터를 잘 관리하고 운용했었다. 다만 내 지식이 일천한지라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었고, Google Apps Script라는 것을 이용하면 해결할 수도 있다는 정보를 찾았다. 하지만 그것을 공부하지는 않았다. 굳이 공부까지야,라고 생각했던 듯싶다.
그로부터 2년 후, 나에겐 다른 취미가 생겼다. 암호화폐였다. 아직 관련 정보가 정형화되어있지 않은 시기였다. KOSPI처럼 암호화폐 시장에도 주가 지수가 있었으면 했다. 기축통화와 비교하여 시장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암호화폐 지수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또다시 기술적인 한계에 걸렸다. 이번에도 Google Apps Script라는 것을 이용하면 해결할 수도 있다는 정보를 찾았다. 이번에는 공부했다. 활용하는 데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자바스크립트도 대충은 알고, MS Office에서 VBA, 웹 쿼리를 써봤으니 어려워할 만한 기능이 아니었다. 얼마 걸리지 않아 하고자 하는 것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아주 만족스럽게 환산되었다.
조금은 후회가 되었다. Google Apps Script를 좀 더 일찍 공부했다면, 6년 전의 취미에 좀 더 좋게 활용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 후회는 금방 희미해졌다. 어차피 난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에 자원을 소모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건 어쩔 수가 없었다. 시간을 돌린다 해도, 나는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 어쩔 수가 없다. 숙달되지 못한 운전 실력이나, 온전히 내야 하는 자동차 보험료를 보고 후회할 수도 있다. 그 후회는 미래의 내가 할 것이다. 그래도 당장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행동을 난 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너는 왜 결혼 안 하니?
아니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입니다.
왜 노력도 안 하니?
노력 또한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