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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신 애플워치를 산 날, 내 독서가 달라졌다

책과 애플워치.

by 게팅베터

2021년 11월, 책을 좋아하던 나에게 예상치 못한 전환점이 찾아왔다.


2018년 4월부터 시작된, 책을 읽은 후 기록하는 독서는 주로 독서 기록장에 볼펜을 사용하여 이루어졌다.
책을 읽은 후 나의 느낌이나 감상, 책의 좋은 문구들을 기록하는 공간이었다.

독서를 시작하면서 본 독서법 관련 책을 50권 정도 읽고 나니,
독서 후 기록을 남겨야 오롯이 독서가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021년 11월, 평소와 같이 애플워치를 낀 채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그만 애플워치가 욕실 타일에 부딪혔다.

굳이 샤워하면서 애플워치를 왜 가지고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나를 새로운 세계로 전환시키려는 전환점을 주기 위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애플워치 액정은 화면이 안 보일 만큼 수많은 파편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때는 새로운 애플워치를 사고 싶었다.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던 애플워치였지만, 습관이 무서운 법.
습관적으로 새 모델을 사고 싶었다.

깨진 액정의 애플워치를 바닥에 두고 머리를 말리다가 문득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말했다.

"야. 1년간 책을 사지 않을 테니 새 애플워치를 사줘"


1년에 150권 내외로 읽는 나에게, 1년 책값보다는 애플워치가 쌌기 때문에
아내에게 그런 제안을 했었다.

그때는 단순히 ‘책을 사는 대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로 ‘서평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록하는 독서를 한 지 3년 반이 지난 시점에 알았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했다.
나보다 책을 읽은 기간이 짧은 사람도, 서평의 퀄리티가 낮은 사람도
서평단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서평’이란,
내가 항상 책을 읽고 기록하던 그 자체였기 때문에
나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이후 온라인에서 서평단 모집글을 보고 신청하기 시작했고,
몇몇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손글씨로만 남아 있던 서평들은
네이버 블로그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옮겨갔다.


변화는 두 가지였다.

책을 직접 사는 대신 무료로 받아보는 것

서평 하는 플랫폼의 변화


출판사 서평단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출판계 흐름을 파악하게 되었고,
출판사마다 지닌 색깔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단발성 서평단뿐 아니라,
3~6개월 동안 활동하는 장기 서포터즈 활동도 하게 되었다.


기억에 의존해 떠올려보면,
더난콘텐츠, 딥 앤 와이드, 웅진, 특별한 서재, 소미미디어, 그래플, 국일미디어, 국일아이, 상상출판, 한솔수북, 스노폭스북스 등의 장기 서평단 활동과, 수많은 출판사의 단기 서평단 활동이 있었다.

많이 활동할 때는 동시에 7개의 출판사에서 서포터즈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4개의 출판사에서 활동 중이다.

그 외에도 단기성 서평단 활동을 계속하고 있어,
나의 생활 대부분은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애플워치와 서평단 활동 사이에
나에겐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었다.

서평단 활동을 통해,
이전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들만 읽어왔다면,
지금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책들까지도 함께 읽게 되었다.


물론 장단점은 있다.

출판사의 출간 일정에 따라 도착하는 책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된 경험도 많았다.

반면, 이미 독서 초기에 읽었으면 좋았을 수준의 책이나
나의 관심 밖의 주제를 다룬 책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많은 책들을 집에 앉아서 받아본다.

애플워치 덕분에.


누가 이런 조합을 상상이나 했을까.
책과 애플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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