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지와 공단, 농촌이 혼재된 직산읍은 조선시대 국립교육기관인 직산향교와 온조왕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직산읍은 백제의 첫 도읍지인 위례성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며 삼한시대 목지국의 중심 근거지인 직산은 고구려와 신라때 사산현 이라고 불렸다.
서원이 사립교육 기관이라면 향교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지방의 관학교육기관으로 조선시대에는 고을마다 유교 사상을 근본으로 향교를 설치했다.
천안은 조선시대 교육과 교화를 담당했던 시설로 목천향교와 직산향교, 천안향교가 남아있으며 충남기념물 제109호로 지정된 직산향교가 처음세워진 때는 1413년(태종 13)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향교가 세워진 위치는 현재 건물 자리에서 200m 떨어진 구 향교골 이었으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숙종대에 이르러 현재 위치로 옮겨졌고 그 후로도 여러 번 개축했다.
향교의 출입문인 외삼문은 향교를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도 쉽게 알 수 있도록 동쪽(오른쪽)으로 들어가고 서쪽(왼쪽)으로 나올 수 있도록 안내표시가 되어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유학생들이 학습하던 명륜당이 자리잡고 있다.
옛날에는 명륜당이 유학생들의 강학공간 이었으나 지금은 청소년들의 충효교육과 인성교육, 체험학습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직산향교는 홍살문, 하마비, 명륜당 이외에 유학생들이 기숙했던 동‧서재가 남아 있으며 서쪽에는 향교의 제사업무를 맡아 수행하던 전사청, 가장 상위에 맞지배풍 건물인 대성전을 배치했다.
직산향교 옆에 온조왕 사당도 자리잡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던 직산읍은 백제의 초기도읍지 위례성이 있는 곳인데 온조왕은 백제의 시조로 아버지는 고구려 왕인 주몽이고 어머니는 소서노였다.
온조왕 사당은 온조왕을 숭모하는 곳으로 동네 산기슭 아래 조성되었으며 세종11년(1429)에 직산읍 판정리 산직촌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춘주(2월, 8월)에 향과 축문을 내려 온조왕의 제사를 지냇지만, 정유재란(1597)때 소실되 제사가 중단됐다.
이에 418년만인 2015년 세종실록지리지 등 문헌상의 기록을 바탕으로 현 위치에 온조왕 사당을 재건해 승모제를 지내고 있다.
글·사진 빈픽쳐스 박원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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