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랑 Jul 04. 2021

3화. 먼저 묻는‘라떼는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이 말은 일명 이미 경험해본 자(일명, 꼰대)라는 사람들이 영웅담을 늘어놓기 위한 시작 문장이지 않은가.    

  

아이를 키우면서는 이 말이 듣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부모 된 사람으로서 이미 지나온 사람의 지혜는 매우 필요하다. 

옛 육아 방식이 다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나에겐 성장과정의 다양한 사례를 수집하는 것이라도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고향 집에만 가면 자꾸만 엄마에게 엄마의 시절을 묻게 된다.   

   

“엄마, 나 어렸을 때는 어땠어?”     

“엄마는 어떨 때 힘들었어?”     

“나도 잘 때 많이 보챘어?”     

“엄마, 나 어렸을 때는 기저귀는 어떻게 뗐어?”     

“엄마는 누가 알려줬어? 어떻게 그렇게 잘했을까? 난 도저히 겁이나.”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 아이의 특성 혹은 기질은 누굴 닮았을까? 궁금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만 다 우리의 과거를 다 알고 있는 사람,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혹은 시어머니에게도 은근슬쩍 물어본다. 부모님들의 ‘라떼는 말이야~’ 듣고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게 된다. 우리의 어렸을 적 모습과 우리를 키웠던 시절의 있는 부모님의 모습이 궁금하다. 아이를 대할 때 나온 지혜도 함께 배운다.      

엄마와의 대화에서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도 하나 키우기도 쉽지 않은데 엄마는 어떻게 셋을 키울 생각을 했어?

그땐 잘 몰랐는데 지금은 엄마가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어.”

나의 말에 돌아오는 엄마의 말이 내 마음을 울린다. 

“그래? 근데 나는 하나도 안 힘들었어. 너희들 보는 게 즐거웠어. 재미있었어.”

“우릴 키우는 게 즐거웠다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엔 내 기억엔… 엄마는 화를 내며 소리 지르거나 힘들다고 푸념한 적이 없다.      

늘 새로운 놀이를 시도해보길 좋아한 나에게 “그래, 해봐~”라고 미소 지어주면서 응원해주시던 엄마의 모습만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왜 안 힘들었겠는가... 그만큼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엄마의 모습이 멋진 것이다.      

 

‘엄만, 나에게 완벽했어.’          


엄마를 보고 나서 나를 보면 나의 엄마 됨은 좌충우돌일 뿐인데 나의 엄마라는 타이틀은 아직도 부족해 보인다. 나도 아이에게 좋은 기억이 되어주고 싶다. 

따스했던 나의 유년 시절처럼 우리 아이도 먼 훗날 나를 떠올리면서 지금의 시절들이 따스했으면 좋겠다.

나에게 나의 유년시절을 물어볼 수 있는 엄마가 있어서 좋다. 나도 내 아이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좋은 기억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었으면.           


나에게 엄마의 라떼는 선물이다.  


작가의 이전글 2화. 기저귀를 뗀다는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