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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xley Jul 17. 2023

다섯 살일 적 머리에 생겨난 뿔을 기억한다.

  미성년일 적 터져버린 왼 고막을 기억한다. 다섯 살일 적 머리에 생겨난 뿔을 기억한다. 여섯 살일 적 허벅지에 물든 멍울을 기억한다. 열 살일 적 허벅지에 새겨진 파리채 자국을 기억한다. 이건 붉은색, 저건 살구색, 그건 푸른색. 어릴 적 시간을 뒤덮은 가지 각각의 빛깔들. 나는 이리저리 도망치다 가로막힌 벽 앞에 서서 발광한다. 다가오는 생의 공포. 그건 목숨이 달린 공포였다. 원초적인 공포. 살기 어린 눈빛에 무너진다. 다시 밟고 싶지 않은 어린 날 여름과 겨울, 가을과 봄의 기억.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어. 어느 집이나 다 그랬어. 모두가 다 힘들지. 그러니 억울해하지 마. 너 병신이야? 바보니? 그런 생각은 남은 삶을 갉아먹을 뿐이야. 예, 지랄하지 마세요.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달려드는 거짓말에 위선을 담는다. 그 또한 발광한다. 빛나고 미치는. 눈이 부시지. 부서져 버리지.     

  아빠의 담배 냄새, 엄마의 설거지 소리. 밥솥의 김새는 소리. 동생의 눈물 자국. 나의 멍울. 피해자 코스프레하고 있네. 예, 지랄하지 마세요.          

-

  도망치려면 돈이 필요했다. 이곳에 있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죽으려면 돈이 필요했다. 살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했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사랑다운 사랑을 하기 위해서도, 성장을 하기 위해서도, 공부, 시, 커피, 사색, 잠다운 잠을 위해서도. 모두 돈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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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떠나자. 여름의 땡볕이 모두 흘러가면, 제주로 가자. 코트를 여며 입고서, 한 손에는 커피를,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서 떠나자. 아무도 나를 모르는 그곳으로 도망치자. 오름이든 해변으로든 가서 시간을 죽이자. 눈이 내리고 우박이 내리고 선선한 볕이 내리든 상관없어. 그냥, 그냥. 그냥 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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